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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터 에드워드의 일기 1990~1990
미리엄 엘리아.에즈라 엘리아 지음, 박준영 옮김 / 그린비 / 2023년 12월
평점 :
아... 햄스터는 괴롭다. 챗바퀴나 굴리고, 나가려 해도 나갈 수 없는 삶이라는 혹은 죽음이라는 케이지에 갇혀 일생 먹고 자고 싸는 일만 할 뿐이니. 아니 그런데 이 삶은 인간의 삶과 정확히 같지 않은가? 뿌리칠 수 없는 삶에 대한 허무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면서 예술과 문학이 우리 삶을 다른 차원으로 고양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에드워드는 그렇다면, 우리에게 자신의 짧은 삶의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어떻게든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씩>가 '세관'에서 찾아낸 원고더미로 시작하듯이 이 책 역시 햄스터언어 박사가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에드워드의 일기에서 시작한다. 픽션에 또 한겹의 픽션이 더해지면서 독자는 '쓴다'는 행위를, '내러티브'라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고 그를 통해 단순히 에드워드가 남긴 일기의 내용뿐 아니라 그의 '행위로서의 글쓰기'의 의미까지 우리는 포착하게 된다. 삶에 있어서 이야기하기가 갖는 의미는 단순히 허구의 이야기를 꾸며낸다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를 통해 삶을 이해하게 해준다는 데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글을 쓰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의미가 씀으로써 비로소 발생하고, 그렇게 쓰는 존재는 이해하는 존재가 된다. 자기 삶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곧 이야기의 작가(author)가 된다는 것이며, 그 이야기의 책임을 지는 권한(authority)을 갖는다는 말. 내러티브의 윤리적 공간은 여기에서 열리기 시작한다.
<햄스터 에드워드의 일기 1990-1990>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철학책이지만 동시에 가장 무겁고 크다. 우리집 강아지도 좋아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