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고양이의 세레나데 LL 시리즈
지넨 미키토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고양이가 등장한다. 윤기나는 까만 털을 가진 고양이. 이 고양이는 아니,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는 사람이 죽은 후 성불하지 못하고 떠도는 영혼들을 '우리 주인님'에게 인도하는 '길잡이'다. 멀쩡한 길잡이였던 그는 어떤 이의 추천을 받아 하루 아침에 동물의 모습으로 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고양이가 되어 지상에 내려온 직후, 까마귀의 공격을 받아 도망치는 도중에 영적인 존재들이 나누는 말인 '언령'에 뛰어난 혼을 만나게 된다. 기억을 잃었다는 그 혼은 고양이의 거처를 마련하고, 혼들의 미련을 풀어주는 일을 돕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하며 병원에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여자의 몸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꽤나 매력적으로 들리는 제안에 넘어간 그는 털이 까맣다는 이유로 '까망'이란 이름을 강제로 부여받고 몸의 주인 마야와 함께 살며 그녀의 집을 본거지 삼아 활동한다. 


까망이는 혼으로 있었을 적, 정보통이었다 주장하는 마야의 정보를 토대로 그녀가 봤다는 지박령을 찾아간다. 혼은 언령을 사용할 줄 몰라 대화가 불가능해 까망이의 물음에 따라 달라지는 혼의 상태로 예측하여 그의 미련을 알게된다. 바로 40년간 과묵한 남편 옆에서 살뜰하게 챙겨준 부인이었다. 밥 먹었냐는 전화를 한 후, 집에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사망소식을 알게 된 부인은 경찰로부터 남편이 자살을 했고, 그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유서에 의하면 부인을 원망했다고 듣는다. 까망이는 혼의 미련인 부인의 꿈에 들어가 자살이 아니고 사고사했음을, 그 후에는 남편의 가방 안에 있던 부인에게 보내는 진짜 편지를 보게한다. 그렇게 남편의 미련을 해결해 준 까망이는 생전에 형사였다는 두 번째 혼을 만난다. 


단편의 모임이라고 생각되었던 책은 하나의 이야기로 가기 위해 잠시 떨어져있었음을 읽다보면 알게된다. 처음부터 누군가로부터 의도된 행보였고, 누군가의 정체는 마지막에 밝혀진다. 직업적으로만 인간을 대했던 까망이는 인간들의 미련에 깊이 관여하면서 한정된 시간안에서 나름대로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에, 그리고 함께했던 마야에게 정을 느낀다. 자신보다 앞서 개의 모습으로 파견된 레오가 그러했듯. 


고양이의 모습, 시선이었기에 특별하다. 영적인 존재로 행동에 제한이 없던 그가 또렷한 실체를 갖게되고, 하필이면 고양이라서 담장에 뛰어오르고, 유연한 몸으로 좁은 곳을 통과하고, 발바닥 젤리의 폭신함을 느끼는 모습들이 무척 귀엽다. 니 미션 내가 도와줄테니 나랑 놀자고 하고 싶을 정도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까만 고양이라니 그와 함께할 일상이 얼마나 멋질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책에 나오는 사건은 무척 무겁다. 어지간한 스릴러 미스터리와 견주어도 좋을만큼. 하지만 고양이 특유의 느긋함과 경쾌함으로 무거운 사건을 가볍게 느껴지도록 한다. 앞으로는 볼 수 없을 마야와 까망이의 유쾌하고 짠하고 무섭고 눈물나고 귀여운 모험이 두고두고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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