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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썰전 - 세계사를 움직인 사상가들의 격투
모기 마코토 지음, 정은지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8월
평점 :
철학은 책을 좋아하는 내가 읽는 도중에 포기하게 만드는 학문 중 하나다. 쉬운 말을 어렵게 하고, 내가 생각하지 않으려 애써 외면하는 것들. 예를 들어,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죽음 등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기 때문이다. 유명한 철학가의 사상이라도 나와 맞지 않으면 그뿐이고 그 사상 자체를 가치없다 외면하거나 비난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내가 하지 못한 일, 하고 싶지 않은 일, 할 수 없는 일을 한 사람들에게 느끼는 질투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유로 철학은 내 삶과 멀리 있었다. 아니, 멀리 두었다. 이 책은 태양계를 벗어난 철학에 대한 내 관심을 해왕성 근처까지 허락하게 했다.
책의 서술방식이 좋았다.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이라 문체가 부드러웠다. 처음에는 제목이 썰전이라 문답 형식인가 생각했지만, 저자는 일본인이니 썰전이라는 제목을 지었을리 없었다. 궁금증은 후에 풀렸다.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철학서를 본따 강좌형식을 빌렸다고 한다. 강의는 잘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특정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이니만큼 처음 듣는 내용에 낯설긴 했지만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다. 질문하는 학생, 나 그리고 선생님 셋이 수업을 하는 것 같았고, 쉬운 말로 서술해 이해도가 높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어려운 철학책을 접근하기 쉽게 하는데 한몫했다. 이 부분이 명왕성까지는 오게 했다.
나는 무엇인지, 도덕은 무엇인지, 감성은 법은 또 정의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한다. 그들이 살아가던 시대, 태어난 배경, 어떻게 살았는지 그래서 나온 철학가의 사상이 무엇인지. 역사, 경제와 종교를 아우르는 설명은 세계사 강의를 듣는 착각마저 일으켰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계사 강의의 탈을 쓴 철학의 주제는 결국 삶이었다. 살기 위해 법을 만들고, 전쟁을 하고, 종교를 갖고, 종교에 반(反)하며,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저마다의 사상은 다르고 표현도 주장하는 방식도 다르지만 잘 살기 위해, 이렇게 사는 삶이 잘 사는 삶이라고 알려주기 위해 철학은 전달되어 왔다고 책은 말하는 듯했다. 이렇게 말하면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점이 기특해 해왕성에 슬쩍 발끝을 걸쳤다. 비록 스스로를 위함이었을지라도 누군가는 하고 있을, 앞으로 하게 될 고민을 먼저 한 수 많은 이들이 내놓은 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