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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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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비포 아이 고. 참신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요즘 이런 게 유행인가 싶었던 건, 얼마 전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 "내 아내와 결혼해 주세요"와 흡사했기 때문이다. 2012년 일본에서 발매된 히구치 타쿠지의 소설 "ボクの妻と結婚してください"이 원작으로 6개월의 시한부를 선고받은 남편이 아내와 아들을 위해 새로운 가족을 구하려는 내용이다. 가볍고 유쾌한 소재는 아닌 것 같아 책이나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남. 여가 뒤바뀐 것 외에 뭐가 다를까 대강의 줄거리를 알기에 궁금했다.
데이지는 유방암이 재발한다. 4년 전 완치 판정을 받은 후, 암 재발을 막기 위해 고기를 끊고 요가를 하고, 기름진 것, 각종 첨가물이 함유된 가공식품을 배제하고 유기농 채소를 먹는 등 관리에 힘썼다. 하지만 의사는 몸 여기저기에 암이 전이되어 손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며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법 밖에 없다고 한다. 4개월. 길면 6개월. 그녀에게 남은 그 시간 동안 데이지는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생각한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남편 잭이다. 머리는 좋지만 기본적인 생활능력이 없는 잭을 자기 대신 챙겨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데이지는 잭에게 맞는 여성을 직접 고르기로 한다.
데이지는 절친 케일리와 함께 잭과 잘 맞아야 하고, 착한 사람이어야 하고,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 등등 조건을 적어놓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모임,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최선의 여자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운명처럼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이 나타난다. 잭과 같은 곳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말도 잘 통하는 패멀라. 잭의 다음 부인으로 적합한 여성이라고 생각한 데이지는 잭과 멀어질 준비를 하며 두 사람이 가까워지길 바라지만, 막상 잭의 입에서 패멀라의 이름이 나오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기분이 이상해진다. 잭과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통화를 하던 데이지는 수술방에 들어가려는 순간에도 패멀라와 함께 있는 잭에게 강한 배신감을 느낀다.
누군가를 남겨놓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내가 세상에 없음에서 오는 두려움보다 남겨진 사람에 대한 걱정이 큰 걸까.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을 지켜봐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걸까. 내가 기혼자라면 같은 생각을 했을까 몰라도 결혼은커녕 사랑하는 사람조차 없는 나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부모님께 딸 한 명 구해드릴 수도 없으니. 책은 무엇보다 데이지의 감정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잭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음에도 자신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 같자 배신감이 든다. 죽은 후에 만나라고 좋은 여자를 골라준 거였지 죽기 전에 좋아하라고 한건 아니었다. 둘이 잘 되기를 바랬지만 불쾌하다. 패멀라와 잭은 미래가 있지만, 데이지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이런 감정들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내가 데이지가 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비포 아이 고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친구 케일리에게 데이지가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넌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느냐며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진심이 담긴 충고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뜨끔했다. 지금도 할 수 있는 일을 내일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미루며, 언젠가와 나중에를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내일이 있다는 당연한 생각에 지금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미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를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는 하루를 살고, 그런 삶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싶다. 지금도 누군가는 불확실한 내일을 절실하게 바라고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