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여년 : 오래된 신세계 - 상1 - 시간을 넘어온 손님
묘니 지음, 이기용 옮김 / 이연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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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근무력증을 앓고 있는 청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제 몸을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채로 죽어가던 그는 어느 순간 밖의 상황이 보이고 손이 움직이고 혀도 움직이는 자신을 느낀다. 그는 갓 태어난 아기였으나 생의 기억이 다 있는 채였고, 이 세상은 자신이 살던 곳과는 다른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경국 스남백작 판씨 집안의 사생아 '판시엔'이 그의 신분이었다. 판시엔은 아버지가 있는 경국 수도 징두가 아닌, 황제의 유모였던 판씨 집안의 노마님이 있는 딴저우에서 자란다. 태어났을 때부터 판시엔을 호위하며 곁에 머무는 우쥬가 넣어준 진기에 관한 책을 읽고 수련하며, 요양차 머물게 된 판가 첫째 부인의 딸 뤄뤄와 놀기도 하며, 징두에 있는 아버지 부탁으로 온 스승 페이지에에게 독과 인체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우쥬와 수련하면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배우며 커 간다. 어느 날, 판시엔을 징두에 데려가려는 사람이 온다. 판시엔은 종종 있었던 암살의 배후를 알아내기 위해, 엄마가 남긴 상자의 열쇠를 찾기 위해 징두길에 오른다.



징두로 돌아간 뤄뤄와는 계속 편지를 주고받아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조금의 공백도 느껴지지 않았다. 난생처음 보는 아버지는 혼인 때문에 판시엔을 불렀다며, 혼인을 하면 황실의 내고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내고는 판시엔의 어머니 예칭메이가 일궈놓은 사업과 재산으로 그녀가 죽은 후 황실에 귀속되어 황제의 친동생이자 판시엔의 정략결혼 상대의 어머니 장공주가 맡아 관리하던 황실의 돈 줄이다. 암암리에 둘의 결혼이 정해지면서 판시엔은 위협받는다. 군주와의 결혼을 고사하려고 했지만, 하필이면 첫눈에 반한 닭다리 낭자가 결혼 상대라 결혼을 무를 수도 없다. 결론적으로 내고가 판시엔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재상 임씨의 후계자였던 둘째 아들이 사망하면서 재상의 기대와 지지를 한 몸에 받게 되었고, 조정 관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황제 직속 기관 감사원의 원장 천핑핑이 다음 감사원 원장으로 점 찍어놓았으니 다음 대 권력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저 평안하게 살고 싶었던 판시엔은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그를 포섭하려는 태자와 2황자 사이에서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고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판시엔은 경국에서 너무나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내고의 재력, 감사원의 정보, 재상의 권력, 줄곧 무인이 강세였던 나라에 등장한 시의 신. 자기 사람이 되면 상대편에서 위협을 가할 것이고, 되지 않아도 상대 쪽으로 가지 못하게 조치를 취할 것이고, 본인뿐 아니라 가족과 그와 관련 있는 사람들도 말려들 것이다. 판시엔을 아끼고 지켜주려는 사람들만큼 판시엔이 죽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얽힌 이해관계는 배후를 짐작하기도, 미리 대처하기도 어렵다. 뻔한 배후라면 나보다 훨씬 머리 좋을 판시엔이 모르지 않았을 테니, 누가 꾸민 일인지 다음에는 어떻게 나올지 생각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을 것이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는 전제가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경여년에 대한 이야기에 드라마가 빠지면 섭섭하다. 아직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면 그저 궁금해하고 봐 볼까 정도로 끝나겠지만, 드라마 때문에 책까지 관심이 간 경우라면 더욱. 볼까 말까 망설인 시간이 아까웠을 정도로 드라마는 재미있었다. 처음에만 재미있고 갈수록 내용이 산으로 가는 드라마가 많기에 처음에는 걱정되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결말을 빼면, 매화 재치 있는 대사에 소소한 웃음, 궁금증을 일으키는 사건의 배후, 등장인물 간의 조합 등 끊이지 않는 긴장감, 깨알재미와 감동을 주면서 앞섰던 걱정을 없애주었다. 심지어 그 결말조차도 '판시엔은 다 계획이 있겠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를 끝까지 보다 보면 내가 아닌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매력이 있었다. 책도 기대되었다. 다만, 익숙해진 드라마 이름과 다르게 표기된 책 속 이름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책 내용과 같으면 같은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떠오르는 머릿속 영상들을 지우고 새로 만드느라 책에 오롯이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재미있었고, 둘 다 보기를 추천한다.



불평등의 시대에서 평등을 주장했던 판시엔의 엄마와 판시엔이, 만들고 앞으로 만들어 갈 경국의 모습과 사람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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