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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혼전계약서 1~2 세트 - 전2권
플아다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미스터리에 살짝 가미된 로맨스, 사극에 살포시 얹혀가는 로맨스만 보다가 대놓고 로맨스를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형사 퇴직 후 흥신소를 운영하는 아빠 남수와 남동생을 둔, 스타트업 회사 대표 여 주인공 우승희와 재벌 금왕그룹의 회장 아들 한무결의 로맨스다. 겉으로 보기에는 흔한 신데렐라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승희의 능력치가 너무 쎄다. 인재를 영입하고 회사를 세우고 밤에도 고객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회사 발전을 위한 투자금 획득을 위해서도 애쓴다. 그에 비해 한무결은 대강 전공 맞춰 만든 게임회사의 실질적인 일은 능력있는 친구가 다하고 정작 회사일에 관심없는 대표다.
회사 키울 생각 밖에 없는 비혼주의자 승희에게 어느 날, 아빠 남수는 네가 어렸을 적 돈을 빌렸고 갚지 않아도 되는 조건은 빌려준 사람의 손주와 결혼하는 것이라고 한다. 잊고 살았는데 기한이 다가왔다고. 결혼 안 할시 갚아야 할 돈은 50억. 절대 결혼 할 수 없었던 승희는 금왕그룹 저택에 침입해 계약서를 가져오려다 무결에게 들킨다. 하필이면 그 때 일하던 직원의 사망사실이 발견되고 현장에 있었던 승희는 무결의 도움으로 무사히 저택을 빠져나온다. 생각 외로 자신과의 결혼에 관심있는 무결을 떼어놓고, 50억을 갚을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승희는 누가 봐도 결혼 안 하고 말지 생각들만한 '혼전 계약서'를 내놓는다. 당연히 납득 할 수 없었던 무결은 계약서 조율을 위해 지속적인 만남을 청했고, 어쩔 수 없이 승희도 이를 받아들이며 만남을 가질수록 아주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된다.
이렇게 서로 끌리고 하기 싫었던 결혼도 하고 싶어지는 건가 싶었는데, 한 인물의 지속적인 등장으로 졸지에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약간 섞여버렸다. 승희의 대학동창이자 비혼주의를 결심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고백했다가 호되게 차인 후 승희를 괴롭힌, 악연이라고 밖에 설명 할 수 없는, 무결의 누나 무빈의 정혼자 명중우다. 졸업과 함께 끝났다 생각했던 끔찍한 그 인간은 예비가족이라는 더 무서운 끈으로 승희를 조여온다. 무결의 가족 앞에서 자연스럽게 험담하기, 승희에게 대놓고 협박하기, 없는 일을 사실처럼 만들어 퍼뜨리기. 그리고 승희로 감춰놨던 자신의 추악한 과거를 들키지 않기 위해 바닥까지 추락하기 등. 범죄소설에서나 볼 법한 사건들을 벌이며 무결과 승희 사이를 벌려놓으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할 뿐 아니라 애정을 더 깊게 만들어주는 의도치 않은 큐피드 역할을 한다.
무결이 좋아진 승희는 무결의 본가로부터 연락을 받고 함께 갔다가 혼인 계약서를 쓴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무결의 아버지 규원은 다른 쪽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결은 처음부터 2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승희는 무결에게 이별을 고하고 5개월의 시간을 바쁘게 보냈다. 회사는 전보다 커졌고 그에 따른 보안 기술도 필요해졌다. 스타트업 기업에게만 기술을 제공한다는 프리지어를 찾아간 승희는 그곳에서 무결을 만난다. 승희에게 꼭 필요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무결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갈지의 여지를 남기고 1권은 끝난다.
2권은 1권 보다 당찬 승희의 모습과 변해가는 무결 가족을 볼 수 있다. 승희는 무결의 본가에 가서 규원에게 "그쪽같은 시아버지를 두기 싫어서라도 절대 결혼 안 한다. 곁에 있는 사람 건강이나 신경써라."며 조목조목 제 할 말 다하고 속 시원히 나온다. 물론, 50억을 2억으로 파격적 할인가에 탕감해준 것에 대한 감사인사도 잊지 않는다. 15년 전, 사랑 하나 보고 무결의 아버지와 결혼한 혜리는 어린 남의 자식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랐고 지금도 남 처럼 서먹하기만 했다. 무결이 승희와 만난 후 간간이 연애 상담 비스무리한 것을 하면서 말을 섞기 시작했고 좋은 쪽으로 달라지는 것을 보고 승희가 시집와서 저처럼 빛이 바랠까 걱정 되면서도 며느리로 탐나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다. 집안과 가족병력으로 승희를 반대했던 규원은 명중우 사건 이후 딸을 도와줘서 고맙고 지난 일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러 승희의 회사에 갔다가 한 그녀와의 대화로 회사에 스카웃 못할 거라면 며느리로라도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버린다.
사랑으로 좋게 변하는 사람들이 많아 기분좋게 읽었다. 결혼이 최종 목표라 가족의 이야기가 필수적인 것은 사실이나 끝내 타협하지 못한 채 끝이나거나 악습이 반복되어 사람을 지치게 하지 않았다. 각 권당 두께가 얇지 않았지만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가 진행되어 술술 넘어갔다. 답답한 부분도 거의 없었다.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하면 그만이었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빨리 퇴장했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달달함이 당길 때 꺼내보게 될 것 같아 간만에 괜찮은 로맨스를 발견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