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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후작 ㅣ 에놀라 홈즈 시리즈 1
낸시 스프링어 지음, 김진희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만화 '명탐정 코난'의 주인공 코난에게는 못미치지만 어느 정도 홈즈의 팬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한 명의 인물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이번 서평의 주인공 '에놀라 홈즈' 때문이다. 이제껏 홈즈의 가족관계를 굳이 따져보지 않았고, 있다고 해도 고위 관리직 형 마이크로프트 뿐인줄 알았는데 여동생이 있을 줄이야. 게다가 엄마도 알고 계셨단다.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보셨다고. 셜록 홈즈 드라마, 영화를 보고 책은 엄마보다 많이 본 내가 여동생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니. 홈즈팬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해지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어찌 되었건 셜록과 마이크로프트의 여동생 에놀라는 자신에게 일어난 큰 사건 때문에 런던에 있는 오빠들에게 연락을 하게 되고, 그 일로 에놀라가 탐정으로 가는 첫 발을 내딛는다. 에놀라에게 생긴 사건은 바로 엄마의 실종이었다. 남겨진 생일 선물만이 엄마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증표였다. 엄마가 평소에 들리던 곳에 탐문도 해봤지만 엄마의 행방은 알지 못했고, 기껏 집까지 온 오빠들은 엄마의 험담을 하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유명한 잘나신 탐정 셜록 홈즈와 영국정부의 숨은 실세 마이크로프트 홈즈께서 말이다. 큰 오빠는 찾아 달라는 엄마는 뒷전이고 에놀라를 기숙학교에 보낼 생각만 하니 엄마를 닮아 자유로운 영혼인 에놀라는 얌전히 오빠 말을 따르는 대신 가출을 감행한다. 생일선물의 단서를 토대로 엄마가 집안 곳곳에 숨겨놓은 돈을 찾고, 수색에 혼란을 주려 엄마의 옷장에서 미망인의 옷인 검은색을 꺼내 입고, 자신보다 나이 든 여성으로 변장하고 일부로 오빠들이 사는 런던으로 향하던 중,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귀족 남자아이가 납치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셜록과 에놀라는 문제 해결 방식이 다르다. 셜록 홈즈는 방대한 지식을 토대로 관찰한 것을 추리한다면, 에놀라 홈즈는 체험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활용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그것도 지극히 여성적인 방법으로. 같은 시대라도 신사복을 입는 남성과 여러 보정기구를 옷 안에 입는 여성은 다르다. 에놀라는 이 보정기구를 이용해 여러 위기를 넘긴다. 요즘으로 예를 들자면, 엉덩이나 가슴에 볼륨을 주기 위해 입는 보정 속옷 사이에 틈을 내어 그 안에 귀중품을 숨기고 스키니진같이 몸매가 잘 드러나는 옷이 아니라 배기바지 혹은 와이드 팬츠를 입는다던지. 헐렁한 핏의 티의 입는다던지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예전이고 더구나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예의를 차렸다. 함부로 여자의 옷을 들추지 않기에 사용할 수 있는 에놀라 최선의 방법이었다.
에놀라 홈즈 시리즈는 그 당시 여성들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장기뿐 아니라 목숨마저 위협받으며 감수해야 하는 몸매 교정을 여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그 안에서 자유롭고자 했던 에놀라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정신을 이어받아 자유를 찾아 오빠에게서 도망친 에놀라. 잘난 오빠들의 여동생이 아닌 당당한 한 명의 사람으로, 여성으로 나날이 성장하고 고민하며 엄마를 이해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넓은 의미로는 추리소설이긴 하지만 셜록 홈즈 같이 논리와 지식으로 사건 자체를 해결하기보다는 엄마를 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총명함과 자유로의 갈망이 한데 어우러진 소녀의 성장 모험 소설 같았다. 물론, 중간중간 나오는 암호해독은 마치 탈출게임 책의 그것과 닮아 재미있었다. 이번권 첫 번째 사건은 에놀라의 탐정 데뷔 전이다. 총 6권으로 앞으로 몇 개의 사건을 맡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탐정 같아지는 에놀라의 앞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