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가 들려주는 이토록 아름다운 권정생 이야기
정지아 지음, 박정은 그림 / 마이디어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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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똥> <몽실언니> 등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을 쓰고,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 병으로 돌아가신 권정생 작가님의 이야기. 정지아 작가의 글로 권정생작가의 일생이 재탄생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 정지아 작가님의 목소리가 음성지원이 되었다. 몇 달 전, 정지아작가님의 강연을 들으러 갔을 때, 빨치산과 아버님의 장례식 이야기를 직접 들었던 나는 그 때 들러주었던 목소리와 내용이 오버랩되면서 이 책이 더 잘 와 닿았다. 정지아 작가님이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정지아 작가가 에필로그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권정생의 유언장을 읽고 나는 울었다. 나는 본디 좀체 울지 않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도 울지 않았다. 그런데 권정생 유언장의 첫 대목을 읽고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중략) 이 유언장을 쓸 때 권정생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유언장을 쓸 정도였다. (중략) 권정생의 삶은 가장 널리 알려진 그의 동화책 <강아지똥>의 강아지 똥과 똑같다.

권정생 작가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다. 사진을 봤을 때 왠지 모르게 측은지심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봐서 그런지 '참 외롭고 쓸쓸하고 아파보인다'라는 생각도 든다. 작품들로 상도 받고 기자들이 인터뷰도 하러 왔을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평생을 옷 하나 안 사입고, 늘 죽으로 하루를 떼우고 달라진게 없었다. 오히려 5000만원이라는 큰 돈을 기부하였다. 폐병으로 평생을 괴로워했지만 이 폐병으로 인해 낮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도 했다. 아픈 와중에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만 살다가 갔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려오고 슬펐다. 참 비운한 인생을 사신 권정생 작가.
늘 가난하게 살고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 일본에서 5남 2녀중 여섯째로 태어났지만, 제일 큰 형은 사망하고 다른 두 형도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생존여부도 모른다.

한국전쟁(6.25)이 배경인 이 책. 만약에 가난하지 않았더라면, 전쟁통에 살지 않았더라면 (시대를 잘 타고 나셨더라면) 더 많은 작품들을 쓰셨을 것인데 안타까운 마음이 든 작가이다. 권정생작가에 대해서 심도 있게 알 수 있었다. 몽실언니 와 강아지똥 다시 읽어봐야지.

본문 중에서

정생은 그날 밤, 꿈속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슬픈 눈으로 정생을 바라보았다. 정생은 울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보다 못한 누나가 정생을 어머니 방에 데려다주었다. (p35)

정생이 한달음에 아버지 곁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곁에 서서 나란히 걸으며 정생은 리어카 안을 기웃거렸다. 오늘도 헌책들이 수북했다. 정생이 손꼽아 기다린 것은 바로 그 책들이었다. 아버지는 헌책들을 주워다 뒤란 추녀 밑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렇게 헌책들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헌책방에 넘기는 것이다. 그때까지 이 책들은 정생의 것이었다. (p47)

고막을 찢을 듯 요란한 굉음이 겨우 멈췄다. 공습이 멈춘 지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 귀가 먹먹했다. 혼마치 사람들이 공습을 피해 방공호로 대피한 것은 엊저녁이었다. 불도 없이 어두컴컴한 방에서 막 밥을 먹으려는 찰나 숨이 넘어갈 듯 사이렌이 울렸다. 곧 폭격이 시작된다는 의미였다. (p49)

아프다가 죽는 것. 오직 그것이 정생의 삶에 주어진 것이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정생에게 주신 삶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삶이라면 자유롭게, 더 철저하게 아프고 싶었다. (p153)

유명 작가가 된 뒤에도 정생은 맛있는 음식 한 번 사 먹은 적이 없고, 비싼 옷 한 벌 사 입은 적이 없었다. 종지기로 살던 때처럼 무릎 툭 튀어나온 시장 옷에 고무신이 전부였다. 그렇게 모은 돈을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위해 기꺼이 내놓은 것이다. 정생은 북한에 관심이 많았다. 북한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소식에 펑펑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렇게 정생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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