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온다고 했던 그날 시작시인선 401
박찬호 지음 / 천년의시작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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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면서도 담담하게 써내려간 시집.
30년 동안 광고회사에서 일하면서 살아온 시인이 암에 걸렸다.
방사선 치료, 항암제 링거를 맞으며 병원과 회사를 오가며 투병의 날을 보냈다. 회사 사무실, 비행기 안, 집에서 줄기차게 시를 썼다. 닥치는 대로 시집을 읽고 썼다. 눈에 띄는 대로 투고를 했더니 두 군데에서 당선이 되었다. 생사를 넘나들면서 유언 쓰듯이 시를 쓴 50대 시인의 투병기이자 생존일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가 다르게 읽혀졌다.


인연이란 내가 정한 것도 네가 정한 것도,
그 누구의 의도도 아니지만
결국 절실한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인지도 모른다
잊히지 않을 권리와 잊지 말아야 할 의무
인연이란 어찌 보면 그 권리와 의무가
무한 반복되면서 얻어지는
의도적인 노력의 결과이다. (또다시 가을에 중에서)

시간은 기억만큼이나 진실한 것 같지만
그 길이만큼이나 크기와 내용도
실제로는 이율배반적이다
시간은 공간 때문에 다르게 흐르는 게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미처 몰랐던 한 가지
시간은 네가 내가 아니기 때문에 다르게 흐르는 것이다 (시간은 사람들에게 다르게 흐른다 중에서)

피더라도 수줍게 살며시
지더라도 때를 안 듯 조용히
색깔과 모양의 문제가 아니다
열매를 위한 작은 희생
나를 잊지 말고 관심을 가져 달라는 속삭임
소리도 없이 예고도 없이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있다
향기로 보이고 바람으로 남는다
하늘하늘 조용히 남는다
꽃은 언제나 일시적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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