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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선, 면 다음은 마음 - 사물에 깃든 당신에 관하여
이현호 지음 / 도마뱀출판사 / 2023년 1월
평점 :
글을 쓰고 있는 요즘, 나는 사물을 소재로 다양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사물들은 떠오르는데 어떤 방식으로 글을 전개해나갈지 고민중에 있었다.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작가님은 우리 일상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로 글을 재미있게 유쾌하게 쓰고 계셔서 많이 배웠다.
제목 : 점, 선, 면 다음은 마음
작가 : 이현호
출판사 : 도마뱀
작가 소개
시인.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비물질>과 산문집 <방밖에 없는 사람, 방 밖에 없는 사람>을 펴냈다.
본문 중에서
<옷>
옷에 붙은 태그를 하나하나 살펴본다. 옷마다 세탁법과 건조법과 주의할 점이 천차만별하다. 물건인 옷도 이렇게 섬세하게 다루어야 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야. 가슴속에서 온갖 마음을 꺼내 볼 수 있다면, 거기에는 이런 태그들이 붙어 있지는 않을까. 슬픔은 구김이 잘 생깁니다. 구김이 가지 않게 모양을 잡은 다음 평평한 데 눕혀서 건조하십시오. 천천히 오래 그늘에 말리는 것이 좋습니다. 고온에 유의하십시오. 사랑은 모양이 잘 변합니다. 형태를 바로잡으려면 뜨겁게 다림질해주시기 바랍니다. 욕심은 이염되기 쉽습니다. 즉시 세탁, 단독 세탁하십시오. 귀찮음은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말리십시오. 분노는 찬물이나 미지근한 물로 가볍게 손세탁하십시오. (p19)
<선풍기>
불교에 '시절인연'이라는 용어가 있다. 사람의 인연이나 사물의 현상은 모두 인과율에 따라 제때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이다. 애인과 함께했던 그 여름밤의 열기를 기억하는 선풍기. 다시 창고로 긴 휴가를 떠나는 선풍기는 내게 모든 것이 시절인연임을 알려준다. (p32)
<책>
읽을 책을 고르는 것과 새로 사람을 사귀는 일은 비슷하다. 일단 첫인상이 중요하다. 책의 첫인상을 사람의 그것에 비유하자면, 한눈에 들어오는 표지는 얼굴이다. 크기도 두께도 저마다인 판형은 체격이고, 제목은 눈빛이나 목소리, 말투쯤이다. 유광,무광,에폭시 따위의 후가공은 옷차림이다. 책의 겉모습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과 마찬가지로 외양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대화로써 사람을 알아가듯이 표지를 넘기고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보아야 한다. (p55)
<침대>
한없이 늘어지고, 평화롭고, 적요한 시간. 이때 침대는 나를 싣고 한가로이 시간의 강물을 떠도는 뗏목이다. 밤사이에는 잠든 내 머릿속을 날아다니는 꿈들의 활주로다. 침대는 내가 숱한 공상을 부리는 하역장이자 그리운 얼굴들이 오가는 대합실이기도 하다. (p69)
<커튼>
아침에 커튼을 열면, 새로운 오늘이라는 무대의 막이 오른다. 커튼이 열리며 한꺼번에 쏟아지는 햇빛이 스포트라이트처럼 나를 감싼다. 그러면 나는 나야말로 내 인생의 주인공임을 실감한다. 하루 공연은 만족스러운 날도 있고, 실망스러운 날도 있다. 평가는 오직 내 몫이다. 이 공연의 준비 과정부터 피날레까지 빠짐없이 제대로 본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공연을 망친 것 같아도 괜찮다. (p125)
어쩜 사물을 가지고 이렇게 재미있게 표현을 해낼수가 있는지
시인이라서 표현을 잘하는 것인지 표현을 잘해서 시인이 되신건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나에게 글쓰기에 대한 영감을 준 책이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