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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살인사건 - 약이 독이 되는 위험한 화학의 역사
백승만 지음 / 해나무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완전 속았다.
제목만 봤을 때 "애거서 크리스티"의 "카리브해의 비밀" 같은 추리소설이나,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범죄스릴러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펼쳐보니 소설이 아니라 그냥 리얼 현실이었다. 현실이라서 더 더 소름 끼쳤다. 첫 시작부터 한때 엄청난 사회적 이슈였던 "우유주사" 프로포폴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제 다시는 수면내시경 하러가서 못할꺼 같은 트라우마를 심어줬다. 괜히 우유주사가 아니라 사용하는 하얀 약물이 잘 녹지 않아 우유색처럼 보여 우유주사라고 불렀다고 한다는것부터가 너무 흥미로웠다. 거기에 온갖 추문과 음모로 얼룩진 우리 마이클 잭슨의 죽음, 햄릿 왕 독살 이야기, 부부 의사가 우연히 보톡스의 주름 개선 효과를 발견하게 된 과정까지 읽다 보면 정말 "독과 약은 종이 한 장 차이구나"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제목처럼 단순히 "위험하고 무서운 약 이야기"만 하는 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약학, 화학, 범죄학, 법의학, 역사까지 굉장히 다양한 분야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프로포폴, 케타민, 사린가스, 보톡스, 엑스터시 같은 이름들은 뉴스나 헐리우드 영화에서 한 번쯤 들어봤지만 정확히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저자인 백승만 교수는 어려운 화학 구조나 약리학 설명을 억지로 들이미는 대신 실제 사건과 연결해서 엄청 리얼하게 설명한다. 그래서 읽다 보면 마치 범죄 다큐멘터리나 넷플릭스 범죄 시리즈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몰입감이 좋았다.


"약은 원래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동시에 사람을 죽이는 가장 완벽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책 전체에 깔려있다.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보면 의사나 연구자처럼 약물의 특성을 잘 아는 사람들이 범죄에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_역시 배운놈들이 더 무서운것인가? 하지만 더 배운놈들이 잡아네지) 일반적인 흉악 범죄처럼 칼이나 총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약물과 주사제, 심지어 비타민까지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지함이 독이 될수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든다. 안약이나 멀미 패치처럼 평범하게 사용하는 약조차 사람의 몸 상태에 따라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부분은 꽤 충격적이었다. (_어릴때 귀밑에 붙이는 멀미약 만지고 눈만지면 실명한다는 우언비어를 듣고 진짜 엄청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중간중간 화학무기 개발 역사나 임상시험의 어두운 면, 제약회사들의 돈과 관련된 문제, 복제약 시장 같은 현실적인 이야기들도 등장한다. 그래서 읽다 보면 인간이 과학을 얼마나 위대한 방향으로도, 또 얼마나 위험한 방향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존재인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특히 "이게 다 돈 때문이다" 챕터는 씁쓸하면서도 굉장히 현실적이었다. 결국 약이라는 것도 사람을 살리는 순수한 목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난다. (_우연히 발견된것도 특허에 특허에 특허를 걸어서 비싸게 팔려고 하는거는 좀 아쉽지만 자본주의에서 어쩔수 없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는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보통 약학이나 화학 이야기가 들어가면 갑자기 전공서적처럼 딱딱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사건 하나하나가 워낙 흥미롭다 보니 페이지가 굉장히 빨리 넘어간다. 실제 사건과 역사적 사례들을 엮어 설명하다 보니 교양과학서라기보다는 잘 만든 범죄 실용서??실화집?? 같은 느낌도 강하다.


그래도 다 읽고 나면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방식으로 남을 죽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특히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약물이 사용된 사건들을 읽다 보면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먹는 것들조차 완전히 안전하다고만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뉴스에서 락스를 몇년 먹여서 남편을 살해하거나 모텔에서 약물을 먹여서 몇명을 죽였는지도 모르는 사건이 계속 나오는거 보면 너무 섬뜩하다. 물론 그렇다고 약 자체를 무조건 두려워할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 "약은 무조건 몸에 좋다"는 단순한 생각은 버리게 된다.
"모든 것은 독이다. 다만 독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은 용량뿐이다."
사람을 살리는 약과 사람을 죽이는 독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굉장히 흥미롭고도 섬뜩하게 보여준 책이었다. 수사반장, CSI같은 범죄 실화나 법의학, 약학, 화학 교양 분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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