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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이렇게 잘 표현한 책이 또 있을까 싶다. 표지의 해변가를 거닐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쓰고 있는 모자를 보니 단순한 중절모가 아니라 당시 프랑스와 알제리 지역에서 많이 쓰였던 "카노티에" 느낌이 난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요소인데, 이런 디테일까지 시대와 분위기에 맞춰 표현했다는 걸 보면 번역과 편집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가 느껴진다. 소담출판사에서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을 하고 계신 최정수님이 옮겼는데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어본 기억이 있어 아주 많은 믿음을 가지고 읽었다.
실제로 읽어보면 문장이 굉장히 매끄럽고 건조한 카뮈 특유의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읽기 편하다. 고전 번역은 조금만 어색해도 흐름이 끊기는데, 이번 판본은 정말 술술 읽힌다. 역시 신상이 좋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나는 이상하게 이방인을 읽으면 관계도 없고 내용도 다른 1984가 떠오른다. 세상이 무너진 디스토피아와 평범한 한 남자의 일상은 너무 다른 이야기인데도 뭔가 감정의 결이 비슷하게 느껴지는것 같다. 인간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 사회가 개인을 압박하는 분위기,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 같은 것들이 이어져 있는 느낌이다.


"이방인"은 시작부터 굉장히 건조하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라는 첫 문장은 너무 유명하지만 실제로 읽으면 생각보다 더 무심하다. 주인공 뫼르소는 장례식에서도 슬픔을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햇빛이 너무 뜨겁다거나 담배를 피우고 싶다거나, 피곤하다는 감각적인 부분만 계속 이야기한다. 처음 읽을 때는 "이 사람이 이상한 건가?"” 싶다가도, 읽다 보면 오히려 사회가 원하는 감정을 연기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뫼르소의 행동이 절대 가볍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우발적이었다고 해도 총을 네 발 더 쏜 것은 분명 과했다.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피할 수 없다. 그런데도 재판이 사건 자체보다 개인의 태도와 사생활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걸 보면 묘하게 불편하다. 시대와 정치, 사회 분위기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도 느껴진다. 그래서 읽는 내내 "대중과 선동의 힘이 이렇게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남는다.
이야기 자체는 의외로 단순하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뫼르소가 우연과 상황 속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재판을 받는다. 그런데 이 작품의 핵심은 사건보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법정은 살인 자체를 판단하는 공간이라기보다 "이 사람이 정상적인 인간인가"를 평가하는 자리처럼 보인다.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것, 장례 직후 여자친구와 영화를 봤다는 것들이 마치 범죄의 증거처럼 사용되는 장면은 지금 읽어도 꽤 충격적이다. 읽다 보면 "정말 살인죄를 재판하는 건가, 아니면 사회가 요구하는 감정을 보여주지 않은 죄를 심판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_여담이지만 한국 법은 너무 좀 범죄자에게 관대한것같다 사람을 죽여도 몇년 안되고 수천명이 피해를 봐도 집행유예라든지 전관예우라든지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는데 왜 사법기관이 벌금을 받고 용서해주는걸까? MBTI에 역시 N이라서 그런지 한이야기를 읽으면 정말 어디로까지 뻗어나갈지 모르는 상상에 돌아오기가 힘들다..)


카뮈가 태어나고 자란 알제리의 분위기도 작품 전체에 강하게 녹아 있다. 강렬한 햇빛, 건조한 공기, 멍하니 이어지는 일상 같은 것들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작품의 감정을 만든다. 특히 태양과 열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는 듯한 묘사는 굉장히 인상적이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세상의 부조리함을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읽다 보면 오히려 뫼르소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사회가 원하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금세 배척당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모습이 예전의 마녀사냥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오래된 고전인데도 뭔가 늙은 느낌이 안난다. 고리타분하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시대에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있다.
마지막에는 결국 뫼르소는 세상의 부조리를 받아들이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삶에 거창한 의미가 없다는 것, 그럼에도 인간은 살아간다는 것. 카뮈가 말하려던 핵심도 결국 그 지점이 아닐까 싶다. 읽고 나면 감동적이라기보다는 뭔가 불편하고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계속 읽히는 것 같다. 역시 고전은 괜히 고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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