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
화바이룽 지음, 김소희 옮김 / 서사원 / 202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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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캣책곳간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와~ 이게 뭐야? 뭐지??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부부 이야기인 줄 알았다.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아내, 어딘가 멀어진 관계, 서로의 마음이 이미 엇갈려 버린 결혼 생활. 그런데 읽다 보니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진다. 현실적인 이야기 같다가도 묘하게 붕 떠 있는 느낌이 있고, 분명 미스터리인데 문장은 잔잔하고, 심리소설인데 어딘가 시트콤처럼 블랙코미디의 기운도 흐른다. 읽는 내내 “이게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싶은데 이상하게 손에서 책이 안 떨어진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감싸고 있는 분홍색? 핏빛 느낌의 띠지는 정말 스포일러 그 자체다. 이게 없었다면 진짜 100배는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이미 남편이 살인자가 되고 자살까지 한다는 걸 알고 시작하니까 읽으면서 계속 “언제 죽이지?”, “언제 자살하지?”만 기다리게 된다. 너무 아쉬웠다. 그냥 평범한 부부의 균열과 이상한 분위기만 보여줬어도 훨씬 몰입감 있었을 텐데 시작부터 너무 많은 걸 알려준다. 정말 현실적인 부부 이야기처럼 흘러가다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지는 그 맛이 좋은 소설인데 말이다.


책 전체를 감싸는 분위기는 굉장히 독특하다. 대만 특유의 눅눅하면서도 화려한 도시의 공기, 어딘가 덥고 습한 느낌, 사람 사이의 거리감 같은 것들이 문장 전체에 배어 있다. 처음 읽는 작가였는데 찾아보니 화바이룽은 연합문학 소설 신인상, 연합보 문학상, 린룽싼 문학상 등을 받은 신예 작가라고 한다. 대만 친구에게도 물어봤는데 책을 좋아하는 친구임에도 아직은 잘 모른다고 했다. 아무래도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 듯하다. 대신 찾아보니 2017년에 개봉한 영화 <림북소무> 제작에도 참여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장면을 끌고 가는 방식이 굉장히 영상적이다. 머릿속에서 카메라가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이야기의 중심은 결국 정팡과 밍런이라는 부부다. 항상 해맑고 낙관적으로 살아온 아내와, 일에 파묻혀 마음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남편. 처음에는 그냥 권태기 부부 같았다. 그런데 남편의 행동은 점점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코끼리”라는 단어 하나가 이상하게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차라리 외도였다면 이해하기 쉬웠을 텐데, 이 소설은 계속 설명하기 힘든 불쾌함과 불안함을 쌓아간다.


특히 재미있는 건 인물들이 하나같이 정상적인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또 완전히 비현실적이지는 않다. 현실에서도 어디선가 한번쯤 본 사람들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개인의 외로움과 자존심, 그리고 말하지 못한 욕망이 어디까지 사람을 몰아갈 수 있는지를 굉장히 묘하게 보여준다. 아내의 단순한 행동 하나가 계속 사건을 굴러가게 만들고, 남편은 끝내 자기 안의 무언가를 설명하지 못한 채 무너져 버린다.


책 제목인 “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 역시 읽기 전과 읽고 난 뒤의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처음에는 무슨 동화 같은 제목인가 싶었는데 마지막쯤 가면 그 무겁고 거대한 존재를 억지로 씻기고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관계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게 결국 상대의 심연까지 받아들이는 일인가 싶다가도, 또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워진다.



무엇보다 문체가 참 좋았다. 사건 자체는 꽤 자극적이고 위험한데 이상할 정도로 차분하다. 그래서 더 기괴하다. 조용한데 불안하고, 담담한데 서늘하다. 페이지는 술술 넘어가는데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찝찝하다.


처음 시작에서도 썼다시피 다 읽고 난 기분은 솔직히 조금 맥빠진다. 왜냐하면 이미 결말 방향을 알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야기 자체가 주는 흡입력은 상당했다. 대만 특유의 정서와 인간 심리를 끌고 가는 방식, 그리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는 관계의 균열을 보여주는 과정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미스터리 같기도 하고 심리극 같기도 하고 가족소설 같기도 한데 결국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불안함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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