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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학로 - 성균관 유생과 반촌 사람들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2월
평점 :

"대학로" 젊음의 상징이며 자유의 표현인곳! 조선시대에는 유일한 대학인 성균관대학교 주변을 말했지만 21세기의 서울에서 말하는 대학로는 그래도 역시가 역시인 종로에서 혜화동까지 이어지는 거리다. 예나 지금이나 혜화동 일대는 젊은 사람들이 모이고 학문과 문화가 함께 숨 쉬는 공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_대대로 뿌리깊은 노비출신인 내가 이런 양반들이 걸었던 곳을 걸었다니.. 참 출세가 아닐수 없네)
대학교 시절 데이트하러 혜화역 4번 출구로 올라와 창경궁을 지나 성균관으로 이어지는 길을 아주 줄기차게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냥 대학가의 평범한 거리라고만 생각했는데 몇세기전에도 공부하는 공부를 하려는 공부하는걸 도울려는 사람들이 같은 길을 걸었을 생각을 하니 뭔가 뿌듯했다. 지금은 바뀐 건물과 거리 속에서도 시간이 겹쳐 있는 듯한 느낌이 있다. 특히 성균관 명륜당 앞을 지키고 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진다. 천연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된 이 은행나무는 약 500년이 넘는 시간을 버티며 서 있다고 한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행단"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그때 성균관 학생들도 바라보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공간의 역사 속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라 너무 기대가 되었다. 책을 펼치기 전에는 단순히 성균관 이야기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성균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주변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세계까지 함께 보여주는 책이었다.


책의 이야기가 전개 되는곳은 "반촌"이다. 반촌이라는 단어는 사실 낯설지 않다. 예전에 꽤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도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냥 드라마 속 설정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 보니 실제로 조선 시대에 존재했던 매우 독특한 마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_지금은 반촌위치에 양갱이랑 에그타르트파는 집이 않은데 정말 분위기 좋은 카페가 너무 많다)
반촌은 성균관에 속한 공노비인 "반인"들이 살던 마을이다. 이들은 성균관 유생들을 뒷바라지하는 역할을 맡았고 성균관의 운영에도 깊이 관여했다. 그런데 이 마을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성균관 주변의 생활 공간이 아니라 법적으로도 꽤 특별한 지위를 가진 공간이었다는 점이다.
드라마에서도 묘사되었지만 반촌은 일종의 치외법권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성균관 문묘를 관리하는 특수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포졸이나 형리가 함부로 들어와 수사를 하거나 체포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범죄자가 반촌 안으로 도망치면 쉽게 잡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드라마를 보면서 "왜 저런 설정이 나왔지?" 하고 생각했던 부분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책의 초반부에서는 성균관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주변에 반촌이라는 마을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설명한다. 조선이 개국하면서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 국가 운영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성균관을 세웠는데, 그 과정에서 고려 시대 교육기관에서 일하던 노비들이 함께 옮겨 오면서 자연스럽게 반촌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공동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성균관과 밀접하게 연결된 독특한 마을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반촌사람들은 그냥 잡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균관을 운영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생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숙식과 생활을 도와주기도 했고, 지방에서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올라온 유생들의 하숙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금으로 치면 대학가 하숙집 같은 느낌이지만 그 관계는 단순한 숙박업이 아니었다. 반촌 사람들은 유생이 과거에 급제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지원을 해주었고, 만약 그 유생이 실제로 관직에 나아가게 되면 그동안의 도움에 대한 보상을 받기도 했다. 일종의 투자이자 후원 같은 관계였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반촌 사람들은 경제 감각도 꽤 뛰어났고 상업 활동도 활발하게 했다고 한다.(_중간에 갑자기 나온 송시열 아저씨 디스랩 장난아니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반촌 사람들이 생각보다 높은 문화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 천민이고 백정이고 해서 양반앞에 머리를 조아리거나 흙발로 짚으로 만든 집에 살줄알았는데 성균관 바로 옆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문과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실제로 시를 짓고 글을 남긴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반촌 사람들의 작품을 모은 "반림영화"라는 시집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신분의 한계가 있었을 뿐 지적 수준 자체는 결코 낮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사회인거 같다. 유생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지원하는 사람들, 장사를 하는 사람들, 학문과 문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던 복합적인 공간이었다. 지금 대학가 주변에 형성된 상권이나 문화 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 이미 조선 시대에도 존재했던 셈이다.
다만 읽는 과정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저자가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있어서 인지 반촌의 위치나 한양의 지명, 그리고 인물들의 가계와 관계가 자세하게 설명되다 보니 한자어와 옛 지명이 꽤 많이 등장한다. 족보나 가문 이야기가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약간 전문적인 역사서 느낌도 있었다. 그래서 처음 기대했던 가벼운 역사 에세이보다는 조금 더 깊이 있는 연구서에 가까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재미있게 읽었다. 지금도 대학생들에게 익숙한 공간을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대학로 거리 아래에는 조선 시대 유생들의 고민과 토론, 그리고 반촌 사람들의 생활이 함께 쌓여 있었던 것이다.
밖에 3월인데도 눈이 내리고 있다. 혜화동 거리를 걸으며 초코에 듬뿍담겨져 올린 와플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예전처럼 그냥 공연 보러 가는 거리로만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성균관 담장 옆을 걸을 때면 "이 길을 수백 년 전 유생들도 걸었겠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 같다.
조선 시대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과거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도 꽤 흥미로운 책이다. 특히 대학로와 혜화동을 자주 오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익숙한 거리 위에 겹쳐 있는 또 하나의 시간을 발견하게 해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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