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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엄쉬엄 미술산책 1 - 역사에 무늬를 입히다 ㅣ 쉬엄쉬엄 미술산책 1
고지수 지음 / 휴앤스토리 / 2026년 1월
평점 :
인디캣책곳간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고교입시때 유명 고미술, 명화를 많이 봤던 기억이 있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과 매력 때문인지 여기저기 그림과 구조물을 보러다니는걸 유달리 좋아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미술 가이드북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술 작품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작품이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구조를 설명한 책이다. 미술이라는 결과보다, 그 결과를 만들어낸 사상과 규범, 인간의 욕망과 권력, 그리고 문명이 작동하던 방식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래서 쉬엄쉬엄 미술산책 1은 미술을 보며 느긋하게 하는 산책같은 책이라기보다 전 세계 역사를 미술이라는 재료로 압축한 두쫀쿠처럼 풍성한 맛이 느껴진다.

저자인 고지수의 이력은 이 책의 성격을 단번에 설명해준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메가스터디교육 부사장, 삼표그룹 CFO. 이력만 보면 미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막상 책을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책이 다루는 것은 감상적이거나 느낌같은 색과 구도가 아니라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경제학과 경영의 시선으로 문명과 미술을 바라보기에, 작품 하나하나가 아름답다에서 끝나지 않고 왜 이 시대에는 이 방식이 필요했는가로 원인과 결과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이과생의 전개방식으로 확장된다.
책의 출발은 선사시대다. 손으로 찍어 만든 동굴벽화는 단순한 원시적 표현이 아니라, 인간이 처음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기록하려 했던 흔적이다. 사냥 장면, 동물의 형상, 반복되는 손자국은 미적 판단 이전에 생존과 주술, 공동체의 언어였다. 이 책은 동굴벽화를 미술의 시작이 아니라 인류의 자서전? 일기? 같은 기록서로서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해준다. 그래도 사슴과 사자는 3만년이 지난 지금봐도 너무 잘그린거 아닌가 역시 그림은 재능이 크구나하며 나 혼자 한번 생각해본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독자는 이미 그림을 감상하는 입장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 구조를 따라가고 그림감상이라기보다 역사서를 읽어가고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집트 문명이 나왔다. 상술과 사기가 판치는 이집트라지만 여행 당시를 생각하면 그크기와 이질적인 형상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집트 미술은 영원을 향해가는 거 같다. 피라미드와 조각, 벽화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 죽은 자와 영혼을 위한 집이었다. 비례가 고정되고 형식이 반복되는 이유는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본질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설명은 인상 깊다. 미술이 현실을 재현하기보다, 영속성을 확보하는 도구였다는 관점은 이집트 미술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든다.(피라미드가 원래 매르라고 부르는것, 스핑크스의 원래 이름은 지평선의 호루스라는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갑자기 "기형조차 보입니다"라고 어조가 바껴서 당황하기도 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전쟁과 권력이 전면에 등장한다. 지구라트와 수호신, 부조와 장식은 신을 위한 동시에 인간을 통제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 장을 읽으며 미술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권력과 결탁해왔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아름다움보다 메시지가 우선이었던 시대, 미술은 이미 정치였다.
에게 문명과 그리스 문명은 그 흐름을 뒤집는다. 크레타의 자유로운 벽화와 미케네의 장중함을 거쳐, 그리스에 이르면 미술은 본격적으로 인간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조각은 이상적인 육체를 향해 나아가고, 민주주의와 철학은 미술에 균형과 비례라는 언어를 부여한다. 파르테논 신전은 건축물이 아니라, 인간 이성이 도달한 하나의 선언처럼 다가온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그 균형이 다시 무너진다. 감정은 과장되고, 움직임은 격렬해진다. 이는 퇴보가 아니라 세계가 넓어지며 생긴 불안의 반영이다. 로마는 이 모든 것을 흡수한다. 그리스의 미학, 기술 중심의 건축, 사실적인 초상조각. 로마 미술은 창조보다 집대성이지만, 그 집대성은 이후 서양 문명의 기반이 된다. 지중해의 크레타섬 그때는 왜 몰랐을까 이렇게 신비롭고 영혼이 넘친다는 것을... 그림이 많이 없어서 아쉽다. 미술이라 하지만 시대상 조각과 왕권강화를 위한 거대한 건축물이 주를 이루어서 작은 사진으로 보는 맛이 덜하긴하지만 그래도 그시대로 가있는것 같은 느낌을 들게한다.


초기 기독교 미술과 비잔티움, 수도원의 출현은 미술이 다시 사상과 규범의 그물망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성상 논쟁과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의 재등장은 미술이 신앙과 권력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해왔음을 보여준다.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돌과 빛을 통해 신에게 다가가려 했던 인간의 기술적·정신적 도전이었다.
뭔가 깊고 신랄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왠지 종교이야기가 나오면 머뭇거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터키에 갔을때도 아야소피아를 보면서 이슬람,성당,모스크 예술로서 느끼는것이 맞는가 종교의 융합으로 보는것인가, 고민을 압도하는 크기와 색채, 아름다움이었지만 전쟁과 돈, 권력을 보여주는것 같아서 혼란스러웠다.

쉬엄쉬엄 미술산책 1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인류가 몇만년전부터 느낀 감정을 여유롭게 미술로 늘어 놓고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옛이야기를 나누듯, 오랜 친구와 천천히 산책하는 기분을 기대했다.
숨을 고르고, 가끔 멈춰 서서 동굴벽화를 바라보고, 피라미드 앞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느긋하게 걸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펼치고 나니 이건 산책이 아니었다. 목줄을 단 롯드와일러와 함께 나온 산책이었다.
첫 장을 넘기자마자 속도가 붙고, 문명이 문명을 밀어내듯 이어지며 정신없이 끌려가듯 달리게 된다.
인류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표현해왔는지를 멈출 틈 없이 머리에 넣어버리고 눈 앞에 펼쳐 놓는다.
느긋하게 읽으려던 계획은 애시당초 포기해야한다. 한 장만 더, 한 문명만 더 하다 보니 결국 3일 만에 마지막 페이지를 보고야 말았다. 오히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게 빨리 읽어버릴 책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내용에 끌려 속도를 줄일 수 없었다.
다 읽고 나서야 ‘아껴 읽고 싶었다’는 생각이 드는, 조금은 억울한 독서였다.
쉬엄쉬엄 미술산책 2에서는 건축물보다 그림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문명의 뼈대를 만든 1권 뒤에,
이제는 색과 빛,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폭발하는지를 볼수 있을거 같다. 이번에는 정말, 쉬엄쉬엄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아마 또다시 목줄을 잡고 달리게 되지 않을까, 묘하게 설레는 마음으로 2권을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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