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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빵은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박수진 외 지음 / SISO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처음 본순간 부터 책을 받아서 읽었고 다읽고 난 지금도 제목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표지의 빵들이었다. 반
미, 크루아상, 알록달록한 빵 일러스트들. “아, 이건 빵 이야기구나” 하는 단순한 기대였는데, 읽고 나니 이 책은 빵을 빌려 사람 이야기를 꺼내는 꽤나 고도로 치밀하고 다정한 에세이다. 빵이 주인공인지 작가가 주인공인지 동시에 조연
인지 고민하는 사이에 인생이라는 영화 한가운데에 각자의 삶과 감정을 써놓은 책이다.

각 작가들의 빵의인화??의 일러스트가 점점 두근두근 하게 하는데 읽어보면 에세이인 만큼 9명의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글의 결이 조금씩 다르고, 그 다양함이 꽤 즐겁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아쉬움도 있다. 음.. 아쉬움이 많다. 해외에서 오래 생활한 작가의 글은 표현도, 등장하는 빵도 너무 고급스러워서 공감이 쉽지 않았다. 나같이 파리바게트 세일할때 빵사먹고 큰맘 먹고 빵지순례가는 인간은 “이게 무슨 빵이지?” 싶어서 인터넷을 여러번 찾아봤다. '빠옹 지 께쥬' 찾아보니 먹어본 빵인데 이름을 처음 알았다. 나도 해외에서 15년 이상 살아본 경험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낯설고 세련된 빵들은 마음보다 먼저 거리감을 만들었다. 반면 소보로,
모닝빵, 맘모스처럼 손에 잡히는 빵 이야기는 역시 강력했다.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과거의 내가 튀어나왔다.

첫 에세이인 우유와 소보로를 읽자마자 나는 너무 공감이 되었다. 정말로, 너무 비슷한 기억이 있어서다. 어릴 적 소보로빵을 뜯어 먹다 보면 입안이 점점 사막처럼 메말라 가는데, 우유는 이미 다 마셔버렸고 물은 안 보이고, 결국 냉장고를 뒤지다 물김치를 꺼내 한 모금 들이켰던 기억.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땐 꽤 절박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런 순간을 정확히 건드린다는 데 있다. “어, 이거 내 얘긴데?” 하고 혼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 대부분의 글이 그렇다. 빵을 먹던 순간에 스며 있던 기쁨, 우울, 화, 위로 같은 감정들이 생각보다 또렷하게 살아 있다.

죽음 앞에 한입, 딸기 타르트는 책에서 가장 엉뚱하고도 마음에 딱드는 에세이다. 외계인의 지구 침공으로 종말이 다가오고, 외계인은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묻는다. 그리고 눈앞에 뙇하고 놓아준다니 하하하 그 질문에 진지하게 딸기 타르트를 떠올리는 화자의 상상력은 웃기면서도 묘하다. 거대한 멸망 앞에서 고민을 하지 않고 바로 선택하는 대담함, 그 한입의 달콤함을 고르는 태도가 너무 인간적이다. 이 글을 읽으며 멜랑콜리아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지구가 멸망하는 걸 알면서도 일상의 감정과 사소한 장면들이 더 선명해지는 그 분위기와 닮아 있다. 혹은 돈 룩 업처럼 종말을 앞두고도 인간은 끝까지 인간답게 행동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약간 결이 다르긴 하지만 갑자기 생각이 났다. 딸기 타르트는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살아온 기억과 취향, 누군가와 나눴을지도 모를 순간들을 압축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에세이는 웃으면서 읽히지만, 마지막에는 괜히 입안이 달고 마음이 조금 서늘해진다. 세상의 끝에서도 우리가 붙잡는 건 결국 거창한 의미가 아니라, 가장 사적인 한입이라는 사실이 인상 깊게 남는다.

앞서서 이야기 한 내용이지만 계속해서 가장 크게 느낀 아쉬움은 바로 책의 표지다. 표지는 정말 예쁜데, 그 예쁜 빵들이 정작 책 속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반미도, 몇몇 일러스트 속 빵들도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차라리 책에 등장하는 스콘이나 컵케이크, 소금빵 같은 빵을 표지에 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또 에세이의 시작이나 중간중간에 간단한 빵 일러스트나 사진이 한 컷씩만 들어갔어도 독자가 훨씬 더 깊게 이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20만 독자를 사로잡은 책이라 그런지, 괜히 더 애정이 생겨서 이런 점들이 더 크게 아쉽게 느껴진다.


찾아보니 이 책은 각지의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siso 출판사의 여러 솔루션을 거쳐 만들어진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글은 전반적으로 가볍고, 술술 읽힌다. 무겁지 않아서 좋고, 그렇다고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다. 빵을 매개로 삶의 단면을 슬쩍 보여주고, 읽는 사람에게 “너도 이런 기억 하나쯤 있지?” 하고 장난스럽게 말을 거는 느낌이다.
완벽한 책은 아니다. 표지와 내용의 연결성, 시각적인 요소의 부재는 분명 아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누구나 한 번쯤은 웃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괜히 배가 고파지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요즘 마음이 좀 퍽퍽한 사람, 가볍게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책을 찾는 사람에게도 잘 어울린다. 빵 이야기를 기대했다가 결국 사람 이야기에 마음이 머무는 책. 그래서 다 읽고 나면 괜히 빵집 하나 들르고 싶어지는, 읽는 내내 기분이 들떠 있는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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