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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제인의 모험
호프 자런 지음, 허진 옮김 / 김영사 / 2025년 10월
평점 :
《메리 제인의 모험》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오래된 고전의 그림자 속에서 흐릿하게만 기억되던 한 인물을 다시 또렷하게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살다 보면, 삶이 크게 흔들릴 때보다 작고 조용한 순간에서 방향을 다시 잡게 되는 때가 많다. 두 마리 고양이가 새벽에 창가를 바라보는 모습을 볼 때처럼, 사소한 것들이 묘하게 마음을 데운다. 이 소설 속 메리 제인의 여정도 그런 종류의 ‘조용한 울림’을 준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스쳐 지나갔던 소녀 메리 제인은, 호프 자런의 손을 거치며 중심으로 걸어 나온다. 과학자 특유의 절제된 관찰과 작가의 치밀한 서술이 더해져, 19세기 미시시피강을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재현해낸다. 그 속에서 자라는 소녀의 감각과 생각이 담백하게 드러나 독자로 하여금 동행하는 느낌을 준다.
메리 제인의 모험은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이들과 부딪히고, 불의를 보고, 때로는 도움을 받고, 우정을 쌓아가며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미시시피강은 그 변화의 상징처럼 흐른다. 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는 일처럼, 느리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도 시간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마음의 방향이 바뀌는 것처럼, 소녀의 성장은 그렇게 조용히 진행된다.
메리 제인의 모험은 탄탄한 조사와 현장의 촉감에서 나온다. 노예제, 인종차별, 종교 갈등, 여성 억압이 일상이던 시대, 강가의 생활, 제재소의 냄새, 선박의 구조, 종교 공동체의 분위기 같은 디테일은 소설을 ‘재현된 과거’가 아니라 ‘살았던 시간’처럼 느끼게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여성 성장 서사이면서 동시에 사회사 기록처럼 읽힌다.
메리 제인은 영리하고 단단하지만 여전히 성장 중인 아이로 그려진다. 옳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 언제나 편안함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현실적이다. 속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하고, 결국 자기 안에서 용기를 다시 꺼내어 든다. 이 여정은 고전적 모험 구조와 닿아 있지만, 시선은 완전히 다르다.
원작을 읽지 않아도 괜찮다. 이 소설은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다. 다만 원작을 알고 있다면, 주변부에 머물렀던 인물이 중심에 설 때 생기는 문학적 재미가 더한다. 잊혔던 목소리를 다시 불러오고, 새롭게 재구성하는 과정이 의미 있다.
《메리 제인의 모험》은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는 이야기다. 큰 힘을 과시하지 않고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끈기 때문에 더 오래 남는다. 흔들린 만큼 넓어지는 마음처럼, 메리 제인은 결국 자기 발로 다시 움직이는 사람으로 완성된다.
책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는 애초부터 그녀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