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기름
단요 지음 / 래빗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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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수천만이 안 보이는 데에서 죽는 건 괜찮은데 100명이 눈앞에서 죽는 건 충격적이란 말이냐?” P. 371

1999년 세상은 가장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 예언으로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7월이 지나가자 세상은 Y2K로 컴퓨터 대란이 발생할 거라고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생각난다. Y2K라는 아름다운 밴드도 활동을 했었는데. 종말을 믿었던 그때 그 사람들은 모두 아무 일 없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을까?

열다섯 살에 신비체험을 한 우혁은 서른넷에 자신을 되살려준 기억 속 모습 그대로의 소년 이도유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이도유는 1999년 세계의 종말을 확언하며 추종자들을 집단 자살로 이끈 '세천년파' 소년 교주였다. 집단 자살 사건의 생존자이자 피해자 모임 '치리회' 대표인 기업가 조강현은 소년 이도유를 쫓는다.

사건을 추적하며 세계의 진상에 다가서는 우혁은 이도유의 정체와 진짜 종말이 다가오는지 고민하며 깊은 신학적, 윤리적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풍요와 기근, 고통과 무관심이 공존하는 세계 속에서 무엇이 정당한 삶인지, 신과 인간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이 문제를 고민한다. 조강현은 신성을 통해 세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라는 김 형의 충고와 대비된다. 우혁 역시 눈앞의 고통에는 민감하면서도 멀리 있는 비극에는 무감각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한국 사회의 익숙한 풍경을 배경으로 자본주의와 탐욕, 그리고 도덕적 무감각을 조명한다. 대치동 학원가, 대기업 상표로 가득한 번화가, 넘쳐나는 상품들로 가득한 대형 마트의 모습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우혁의 여정은 세계의 종말을 예언하는 환각과 탐욕의 풍경 속에서 부조리를 응시하며, 결국 인간적 희망과 사랑을 발견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피와 기름>은 단순히 종말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도덕적 무감각과 인간의 본질을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질문을 멈추지 않는 단요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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