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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 날 이야기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3월
평점 :
이전에도 데미안을 2번인가 3번 읽었었다. 한 명의 작가를 좋아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은 후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를 좋아하게 됐다. 난 내가 무척 싱클레어 같다고 느꼈고, 데미안처럼 되고 싶었다.
<데미안>에는 수수께끼가 쓰여있고 그 얼굴을 바라보아도 어떻게 생긴 건지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있다. 고 처음 읽을 때 생각했다. 데미안에 쓰인 문장은 분명 나의 세계를 흔들고 나에게 질문을 했지만 나는 나의 세계가 무엇인지도, 질문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이번에 읽었을 땐 전보다 많은 것이 이해됐다. 더 많이 볼 수 있었고 좀 더 답을 할 수 있었다. 더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처음 읽고 수년의 시간이 흘러서 그랬을까. 조금은 더 나를 알았고 나를 많이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일까.
프란츠 크로머의 마수에서 싱클레어를 구한 것도, 싱클레어를 처음으로 그 자신의 세계 밖으로 끄집어낸 것도 데미안이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이끌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넓은 세계로 나간다. 인위적으로 나뉘어 공인된 절반의 세계가 아닌 금기시되는 악의 세계도 인정하는 것을 알게 된다. 후에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헤어지게 되고 방랑하고 방황하며 고통스러워한다.
그 과정에서 싱클레어는 점점 강해졌고 동시에 더 연약해졌으며 선과 악을 모두 배운다. 그는 자기보다 나이가 좀 더 많은 또래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되기도 했고, 자살하려는 사람을 살리기도 했다. 또 그는 아브락사스를 깊이 아는 친구를 사귀었지만, 나중엔 그를 은근히 깔보게 되고 부딪히기도 하여 모호한 관계가 된다. 그는 성장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혼자로 만들었지만, 그를 지지해 주는 친구들이 필요했음도 사실이다.
'''그리고 나 자신만의 개인적인 생활과 생각이 영원히 흐르는 위대한 이념의 조류에 얼마나 깊이 가담하고 있는가를 갑자기 실감했을 때 불안함과 경건함이 나를 덮쳤다. 그러한 인식은 무엇인가를 확증해주고 또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기도 했지만 기쁜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가혹했고 거친 맛이 났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운이,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될 수 없으며 홀로 서야 한다는 여운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86페이지
자기 자신을 이끄는 건 고통스럽고 외로운 일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의지하고 그들이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난 후에도 부모님의 세계와 유년 시절을 그리워하며 참회를 통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었다. 그는 성장하며 선과 악을 경험하고 두 개로 나뉜 세계를 조화시켰고, 자기 자신을 이끌어 나가게 된다. 책의 마지막 부분인 전쟁터에서 그는 자기 자신 안에서 데미안을 발견한다.
내면의 혼돈을 바라보는 건 쉽지 않지만 바라볼 수 있는 것도, 그것을 조화시킬 수 있는 것도 나 자신뿐이다. 이번에 읽으며 가장 많이 느껴진 메시지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한 수단으로 데미안을 읽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친구들을 만나 홀로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어둡고 금기시되는 모습들도 받아들이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내 연약하고 초라한 부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은 쉽지 않고 때때로 무너질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내가 날아가기 위해선 내 자신을 깨부수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