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정과 신비 을유세계문학전집 128
르네 샤르 지음, 심재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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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문학의 장르 중에서 주로 소설을 읽고 있는데, 이번에 ‘르네 샤르’의 시를 읽게 된 것은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르네 샤르’는 초현실주의 운동과 레지스탕스 활동에도 가담했다고 한다. 적극적 사회 운동 경력이 시인의 내적 사유를 더 단단하게 했을 것 같고, 시어에는 인간의 실존과 자유를 포함하는 힘이 느껴졌다. 


시인은 나치즘과 전쟁이 들이닥친 현실에서 이에 꿋꿋하게 저항하고 시와 사랑을 표현했다. 독자가 시를 천천히 음미하여 읽다보면, 외부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협하는 많은 공격들에 대항해서 인간이 지켜내야 할 가치와 의미를 시어들을 통해서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 시들은 보편적인 상황에도 적용이 되며, 인상적인 구절들이 많았다. 아래의 권태, 열정, 고독에 대한 시인의 개성이 담긴 함축된 언어가 공감과 울림을 주었다.


때로 권태의 방수막이 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면 심장은 박동을 멈출 것이다. (히포노스 단장 41)


세월의 무게를 들어 올리는 것은 열정이다. 기만은 시대의 피로에 대해 늘어놓는다. (히포노스 단장 139)


가장 올곧은 시간은 아몬드 씨가 그 완강한 단단함에서 터져 나와, 너의 고독을 조바꿈할 때다. (히포노스 단장 191)



책의 뒷표지의 추천사가 그의 시의 독특한 개성과 본질을 잘 말해주는 것 같다. 가장 집요하고도 가장 억제된 진실을 발화하는 시인(미셸 푸코), 그의 시는 프랑스 문학이 낳은 최고의 작품이다(알베르 카뮈) 등이다. 이 책의 제목인 ‘격정과 신비’도 시집 전체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전쟁의 잔혹함을 보고 분노와 격정을 품었던 시인이 시와 사랑과 삶을 응축된 시어로 표현을 해서 생명력, 슬픔, 운명 등의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엄청난 변주의 언어를 구사한다. ‘엄격한 분할’ 13번에서 ‘격정과 신비’라는 말을 찾았다. ‘격정과 신비가 차례차례 그를 유혹하고 그를 소진시킨다. 이윽고 범의귀(식물 이름이라고 함)같은 그의 단말마를 끝장내는 해가 왔다.’ 단말마는 죽음의 고통이라는 뜻인데 시들의 주제와 관련있는 구절일 것이다. 내적, 외적으로 치열한 삶을 사는 인간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가 쉽지는 않지만, 시 속의 언어의 바다를 유영하며 명징한 사유와 의지를 시인과 공유하는 것에서 의의를 둔다. 가슴에 남는 구절들을 골라 적어보면서 글을 마무리하겠다. 


명매기를 담을 수 있는 눈은 없다. 울음소리, 그게 명매기의 존재 전체다. 대단치 않은 소총 한 자루면 명매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 마음도 그렇다. (‘명매기’ 중에서)


삶의 서로 다른 그 두 가지의 상태를 무차별적으로 오가면서, 시인은 각성과 잠이라는 인식의 분할선 위에 시의 예민한 몸을 눕힌다. (‘엄격한 분할’ 07 중에서)


이 미친 감옥 같은 세상에서 절대로 부식하지 않는 마음을 지닌 강이여, 우리를 항상 격렬하게, 지평선 위를 나는 꿀벌들의 친구로 남게 해 다오. (‘소르그강’ 중에서)


햇빛보다 오래 가는 물방울이 항상 있겠지만, 햇빛의 지배력은 흔들리지 않는다. (‘뱀의 건강을 위해서’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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