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인간
알도 팔라체스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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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협찬받아 쓴 서평입니다)


‘최혜진’ 디자이너는 dalle-2라는 인공지능 툴로 이 책 표지를 디자인 했다고 한다. 작가인 ‘알도 팔라체스키’가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문학사조인 ‘미래파(futurism)’에 속한다고 하는 걸 보면 과연 잘 어울리는 표지 디자인이다. 다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은, 미래파란 미래에 대한 사상이라기보단 과거엔 없었던 글의 형태 또는 현재의 수많은 글들과 다른 어떤 무언가에 가까운 듯 하다. 어쩌면 미래에 도래할지도 모르는 글의 스타일이여서 ‘미래파’라고 이름 지어진 걸까? 소설 <연기 인간>에 미래라는 소재를 대입해본다면, 주인공인 ‘페레라’는 미래에서 온 인간이라고 해도 그럴싸하다. 흔히 너무 발전된 과학은 마술처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연기로 이루어진 인간인 ‘페레라’는 대중에겐 기적과도 같은 존재이고, 자신과는 다른 영웅이다. 사람들의 반응이 재밌는게 그가 ‘연기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의심없이 바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중책인 ‘새 법전의 편찬’을 맡긴다. 사람이 어떻게 연기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의 출생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대중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의심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인다. 주인공의 그런 원인모를 이질감은 그를 바로 인기스타로 만들고, 모든 이가 그의 곁에 몰려든다. 이는 결말에서 그가 불분명한 이유로 자택구금 처형을 받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세상사가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을 인기인으로 만든 원인은 바로 그를 추락시키는 이유로 작용할 때가 있다. 연예인, 영웅과 같은 사람은 유명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토록 그 자신의 존재가 끊임없이 위협받기 때문에, 종종 불안감에 휩싸이고 불면에 시달리고 마약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는 ‘실존의 위협’은 영웅의 숙명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 연기 인간 ‘페레라’에겐 그런 실존의 위협은 없다. 그는 너무 가볍기 때문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인 재판에서 그는 자신을 <나는 가볍습니다> 라는 말 하나로 변호한다. 어쩌면 그에겐 변호따윈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세상의 질서에 얽메이기엔 너무 가볍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무겁다. 살면서 맺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관계들이 너무 많다. 살면서 필요한 물건이 너무나 많다. 하루를 보람차게 보내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우리는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외로움을 느끼고, 밥을 먹지 않으면 허기짐을 느낀다. 연기 인간에겐 그런게 없다. 그래서 그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이고, 새로운 법전을 편찬하기에 알맞은 존재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모함을 받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았기에 대중은 그를 외면하기 시작한다. 오히려 역설적인 부분이다. 진짜로 무거운 대중들은 ‘너무 가볍다’. 진짜로 가벼운 페레라는 ‘너무 무겁다’. 모함에 대한 변호조차 하지 않는다. 대중은 자신의 의견을 바뀌는데는 아주 순식간이다. 생각이라는게 별로 없는 것처럼도 보인다. 이 책의 특징이기도 한 익명성 - 누구의 대사인지 도대체 몇명이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글의 전개 방식 - 은 그런 대중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들에겐 찬양할 존재가 필요하고, 비난할 존재가 필요하다. 그게 누구이든 상관없다. 심지아 둘이 동일한 사람이여도 상관없다. 어제 찬양했지만 오늘 비난해도 상관없다. 그들에게 필요한건 그저 쏟아냄(무거운 자신을 덜어내려는 듯한?)이다. 폭식 후에 바로 구토하듯이 아무 의미없는 입력과 출력이 반복된다. 대중은 ‘페레라’는 벌써 잊었을 것이다. 페레라를 사랑하던 한 여인만이 자신의 존재가 연기처럼 소멸하기 전까지 그를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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