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미야지 나오코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책은 서평이벤트로 제공받은 책입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남에게 말할 수 있는 상처가 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쓸쓸히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상처도 있다. 어떤 정신과 의사(상처 전문가)이자 의학 박사가 그런 인간의 ‘내면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상처받은 영혼을 가진 자 누구든 그녀의 말에 귀를 쫑긋 하리라. 무언가 특별한 말을 하지 않을까, 내 어릴적 고통이 드디어 치유받을까, 내가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등등 기대를 안고. 그러나 우리는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 의사에게 어떤 말을 듣던, 결국 회복은 ‘일시적’이고 나의 상처는 ‘영원’할 것임을.

상처 = 치유의 대상. 우리의 어떤 흔적이 상처로 진단되는 순간 그 흔적은 바로 치유의 대상이 된다. 원망의 대상을 계속해서 떠올리며 나쁜 기억을 중화하고, 과거의 약함은 현재의 강함으로, 개에게 물렸던 기억을 귀여운 강아지와의 추억으로 극복하려 한다. 상처는 이처럼 치유의 대상이다. 뻘건 피가 뚝뚝 흐르는 상황을 자칭 ‘전문가’들은 절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건 인간의 존재는 존엄해야 한다. 그러므로 고통받는 인간은 치유받아야 한다. 그런데 치유받아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치유할 능력이 부족할 때가 많다. 그래서 치유는 어떤 면에서 강제성을 띈다. ‘정상 상태’로 회복하기 위해 환자로 진단받은 사람은 전문가가 처방한 약을 먹고 누군가에게 적절한 조언을 듣고 상처를 극복한(또는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대화시간을 갖는다. 타인이 타인에게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들이다. 

작가는 이런 치유의 강제성을 의식한다. ‘폭력적’으로 생긴 상처를 어쩌면 ‘강제적’으로 회복시키는 이런 모순된 상황을 인식하고 책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때, 나는 뭔가를 깨달았다. 보고만 있어도 괜찮다고. 함께 지켜봐주기만 해도 괜찮다고,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괜찮다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보고만 있어야 하는’ 운명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해도, 함께 보고 있기만 해도 괜찮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해도, 그 자리에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로 변했다.>

사람마다 회복의 속도가 다르다. 누군가에겐 ‘백마디의 조언’보다 ‘그저 옆에 있어주기’로 충분할 때가 있다. 배려는 어쩔땐 침묵과 동의어다. 어떤 최신 의학 기술보다도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상처를 ‘조용히 응시’하고,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적절한 시간’을 갖고, 그동안 참을성 있게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상처받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상처받은 누군가의 옆에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상처를 떠올리며 그저 가만히 옆에 있어줌으로서 우리는 누구에게든 힘이 되어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