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일곱째를 낳았어요 샘터어린이문고 41
김여운 지음, 이수진 그림 / 샘터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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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제목만 볼 때는 너무 비현실적인 동화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곱이라고? 요즘은 자식 세 명도 많은 때에 일곱째를 설정했다는 자체가 의아했다. 하지만, 읽어가다보니, 오히려 작가의 그런 설정 자체가 이 동화를 더 사랑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이 동화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딸부자 인쇄소집 이야기다. 무려 여섯 명의 딸들이 있었다(동희, 서희, 남희, 복희, 가희, 나희). 자연히 부모님들은 오매불망 아들을 기다린다. 마침내, 임신. 산모의 배 모양이나 걸음걸이를 보고 이번에는 보나마다 아들이라고 동네 사람들은 말한다. 태몽으로 용꿈까지 꾸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딸이었다.

 

 

 

이 막내딸은 다른 집으로 보내질 위기에 처한다. 아들 많은 집의 막 태어난 사내아이와 바꾸려 한다든지, 자식이 없는 선생님 집으로 보낸다는 말이 들려오는 것이다. 막내를 지키기 위해 여섯 언니들은 고군분투 노력하는 줄거리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점차 늘어가고 있는 추세에 이 동화는 한 생명의 소중함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자녀 수가 줄어들뿐 아니라, 점차 가족들 사이에 대화가 사라져 가는 요즘 사회 풍토 속에서 <엄마가 일곱째를 낳았어요>속의 가족들의 훈훈하고 정감 있는 대화는 더욱 그리운 풍경인 듯 하다.따뜻하게 표현된 곳곳의 삽화들은 글의 내용을 조금 더 풍성히 전달해 주기도 한다.

 

 

이 동화의 맨 마지막 부분, 여섯 자매가 함께 크리스마스 공연을 하는 것은 정말 감동스러웠다. 끝까지 일곱 째, 자신들의 동생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 오롯이 담겨 있는 이 공연이 참 따뜻했다. 어린이들 뿐 아니라,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이 보아도 따뜻함과 과거의 향수를 얻을 수 있는 좋은 동화 한 편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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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3.12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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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이 아쉬운 요즘, 한 해의 일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조용히 마무리할 때이다. 그 마무리의 동반자로 들썩한 TV보다도 양서 한 권이 바람직하다. 따뜻한 소식과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는 <샘터 맺음달(12월)>, 이 책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해보면 어떨까?

 

 

아무래도 마지막 달이니만큼, 이번 호에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아쉬움과 시간에 대한 중요한 관점곳곳에 보인다. 특히 김용규씨의 여우숲 일기 <삶을 건너는 세 가지 지혜>는 올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생각해 봄직한 통찰력을 주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삶을 건너는 데 있어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세 가지 자세에 대해. 첫째, 삶은 지금에 머물러야 하고, 둘째, 모든 상황에는 두 가지 측면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p.48~49).

 

그는 "다가오는 겨울을 밀어내지 말자. 겨울 또한 내 삶을 키우는 시간이며, 길흉은 언제나 섞이고 교차하며 다가오고 멀어지는 것이다. 차가운 겨울 너머에는 햇볕 따스해지는 시간이 반드시 있다.(p.49)"고 덧붙인다. 그의 조언이 괜시리 따스함을 가져다준다.

 

이밖에도 주옥같은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다. 기독교 신학자인 현경 교수는 "달력의 날짜들은 인간이 임의로 정해놓은 환상 같은 시간의 틀이지만, 이처럼 가끔씩 끝맺음이 있다는 것은 우리 삶을 정리하고 돌아볼 수 있게 하기에 고맙습니다. <올해의 씨앗, p.114>"라며 끝맺음의 유익을 설명한다.

 

이번 호 특집 역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도 끝맺음의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특히 우리 이웃의 소탈하고 솔직한 고백들이 더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한편, <그 시절 유행품>을 쭉 나열한 송년특집은 "맞아! 과거에 저랬지! 저런 것도 있었지."라며 추억에 잠깐이나마 빠질 수 있었다. 다마고치, 보물섬, 마이마이...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떠올려볼 수 있는 좋은 콘텐츠가 아닐까.

 

이처럼 이번 호에는 지나간 한 해를 아쉬워하기보다, 다가올 새해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새로운 희망과 다짐을 가져다준다. 자, 새해의 벅찬 계획을 이제 짜 보자. 샘터 12월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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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왜 이러는 걸까요? - 남자가 알아주길 바라는 여자들의 비밀 왜 이러는 걸까요?
아르민 피셔 지음, 정유연 옮김 / 샘터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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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한없이 먼 존재, 남자와 여자. 이 둘은 원시 시대부터 지금까지 서로 돕고 협력하고 사랑했지만, 한편으로는 제일 큰 적이 되어 서로에게 해를 끼치기도 했다. 아마도 적이 되는 이유는 서로의 다름에 있을 것이다. 남녀 관계의 고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같은 책들이 범람하지만, 여전히 남자와 여자의 간격은 멀다. 이 간극을 좁혀줄 수 있는 책이 나와 반갑다. <여자, 왜 이러는 걸까요?>.

 

하루에 약 22000단어를 사용하며, 이에 반해 남성은 사용하는 단어가 그 절반도 되지 않는다. 여성의 전화통화 시간의 3분의 2가량은 30분 이상이며(남성의 경우 80퍼센트가 5분 안에 전화 통화를 마친다) ‘로또하면 남성의 경우 럭셔리한 자동차를 떠올리는 데 반해 여성들은 가사 도우미를 먼저 떠올린다. (p.16~17)

 

 

 

독일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인 아르민 피셔는 여자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소개해 준다. 이런 정보는 여자가 틀린존재가 아닌, 단지 다른존재임을 남자들에게 일깨운다. 그 정보를 알기 쉽게 선별하여 전달해 주는 역할을 1<여자에 대해 알기>서 하고 있다. 여자의 기본 정보뿐 아니라 교육, 나이, 문화적 배경 등의 변수들도 소개한다. 다양한 유형의 여자들도 설명해 놓아 남자가 지금 만나는 여자가 어떤 유형인지 살펴볼 수도 있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2, 3부는 좀 더 실질적인 내용을 다룬다. 2<여자 다루기>에선 여자들과 어떻게 마찰을 줄여 나갈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여자들은 남편의 약속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와 감정적인 확신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당신의 여자 친구는 당신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알지 못하고 항상 재차 느끼고 다시 확신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p.118)

 

남자에게 재차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 여자들, 그들이 이럴 수밖에 없게 된 이유뿐 아니라, 다양한 여자의 심리 상태를 2부에선 보여 주고 있다.

 

마지막 3<여성과의 문제 해결>에선 남자들이 흔히 여자에 대해 갖을 수 있는 오류를 제거한다. ‘전화를 오래 한다’, ‘상습적으로 늦게 온다등의 오류 말이다.

 

이 책 한 권만으로 여성에 대해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자와 다른 여자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여자와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단초는 확실히 제공한다. 여자를 가감 없이 보여 주는 가이드북이라 할 수 있겠다. 남자들이여, 일단 읽어 보라.

 

ps. 자신의 약점(?)이 모두 노출되었다고 투정대는 여자들은 안심해도 된다. 남자들을 낱낱이 파헤친 책도 여기 있다! <남자, 왜 이러는 걸까요? (베아트리체 바그너 /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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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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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는 지금 여기 있다>

-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서영은/문학동네)를 읽고

 

 

 

나는 소설가로서 적지 않은 소설들을 발표해왔다. 하지만, 이 책은 이전에 내가 출간한 어떤 책하고도 같지 아니하다. <p.400 작가의 말>

 

이 책은 작가 서영은의 산티아고 순례기이다. 이상문학상까지 탔을 정도로,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라 할 수 있는 서영은. 우리 문단의 거장 김동리의 세 번째 아내이기도 한 그녀가 홀연히 문단을 떠나, 생의 자리를 떠나 순례길에 오르게 된다. 이 책은 순례길을 떠나는 작가의 마음과 순례길의 고된 여정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처음에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작가를 따라갔다. 아니, 부러운 시선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산티아고라고? . 스페인! 좋은 곳이지. 역시 소설가는 뭔가 달라!’ 부러움과 동경의 눈빛으로 산티아고를 뒤쫓아 갔다. 하지만, 순례길에 접어들 때부터 유명한 소설가인 서영은의 모습은 거기 없었다. 단지, 지팡이를 짚은 남루한 이의 모습뿐이었다. 끼니와 날씨를 걱정하고, 좀 괜찮은 알베르게(숙소)를 찾고, 어떤 짐을 버려야 할지 숙고하는 순례자.

 

무엇을 버릴까.... 마치 인생의 중요한 결단을 내릴 때만큼 진지해진다. p.124

 

이런 고민은 현대 문명의 촉수가 뻗치는 평소의 생활에선 여간해선 하기 힘든 것이다. 이런 고민들을 양식 삼아, 주위의 자연을 벗 삼아 순례자는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어떤 곁눈질도, 사치, 호사도 여기엔 끼어들 틈 없다.

 

조금씩 책을 읽으며, 나도 순례의 길에 동참하는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 관찰자에서 참여자의 시선으로 순례자를 따라 갔다. 순례자가 힘든 상황에 처하면, 나 역시 동일한 상황에 맞닥트린 듯 주저하였고, 어려움 이후 회복의 노래를 부를 때면,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가 동반자(치타)와 심하게 다툴 때면, 마치 치타가 옆에 있는 듯 치를 떨었으며, 화해했을 때는 치타를 이해하는 듯한 동정의 눈빛도 건넸다. 한편, 그가 경험한 분명한 영적 현현(顯現) 앞에선 지금 내가 책을 읽는 이 곳’-전철, 사무실-이 거룩한 곳이 될 수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순례자는, 그리고 나는 순례지의 끝, 산티아고에 도착한다. ‘그곳엔 어떤 신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호흡을 가다듬고, 책장을 넘겼다. 그 곳의 모습은 이러했다.

 

산티아고라는 도시는 가까워질수록 길이 소란스러워지고 세속화되는 느낌을 준다. (p.345)

 

심지어는 자기 팀을 뒤쫓던 사람이 서로 반대 방향에서 오는 다른 사람과 몸을 부딪치고 나서 미안합니다하면서도 자기 가는 방향만 볼 뿐 상대를 쳐다보지 않고 지나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가 되는 것조차 관심을 두지 않는다.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p.363)

 

참 아이러니하다. 아니, 그 힘들었던 순례의 열매는 달콤해야지 않나? 보물섬은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한 가지 보물은 발견해야 옳지 않은가? 하지만, 순례자는 이 글로 순례를 마무리한다.

 

산티아고는 내게 순례의 종착지가 아니다. 산티아고는 내게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문이자 또 다른 화살표이다. p.367

 

어쩌면 작가의 이 말 속에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보이는 듯했다. 순례자에게 있어 종착지 산티아고는 더 이상 성지(聖地)가 아니었다. 오히려 산티아고를 찾아가는 길 그 자체가 성지였다. 더 확장하자면,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이 성지인 것이다.

 

그 순간, 순례자에게 향했던 시선은 이제 나를 돌아본다. 그동안 아름다운 산티아고를 동경하며, 얼마나 많은 작은 산티아고들을 지나쳐 왔을까? ‘내일은 새로운 해가 뜰 거야’, ‘내년엔 분명 새로운 길이 열릴 거야라는 주문을 외우며, 지금 만나는 사람들에겐 얼마나 각박했었나? 막연한 이상향을 꿈꾸며, 나태함과 불평을 옷 입고 살아가고 있었다. 문득 한 시인의 시어도 떠오른다. ‘더 열심히 그 순간을 / 사랑할 것을... // 모든 순간이 다아 / 꽃봉오리인 것을. /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 꽃봉오리인 것을!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그러고 보니, 순례 내내 순례자와 삐걱 대며, 어디로 튈지 가늠치 못할 치타의 모습도 낯설지 않았다. ‘저 사람은 왜 저래? 나 같으면 아예 혼자 다니겠다며 혀를 쯧쯧 차며, 내가 마구 손가락질해댔던 치타. 그런데, 치타의 그런 모습이 어쩌면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맞아! 나도 저런 적이 있었지. 혼자 편하려 했던 적도 많았었지.’ 그의 모습이 나와 겹쳐졌다.

 

순례자는 그런 치타와 함께 끝까지 순례를 한다. 순례를 거의 마칠 무렵, 순례자는 치타를 향한 눈빛을 바꾼다.

 

내 안에서 치타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던 것도 나의 도그마였다. 그 도그마는 겸손과 부끄러움으로 위장한 나의 교만이었다. (p.374)

 

순례자의 이 말이 내게 위로를 준다. 순례자와 치타는 결국 같은 순례자였고, 나 역시 같은 길을 걸어가는 순례자라는 사실, 그 사실이 위로와 함께 인생 여정의 동반자를 만난 듯한 반가움을 주었다.

 

걷거나 탈것을 타고 어느 곳으로 가는 노정(路程).’ 이것은 의 여러 정의중 하나이다. 그동안 길 너머에서 화살표를 찾기에 급급했었다. 그렇기에 잘 보이지 않았고, 찾았어도 이건 아닐 꺼야하며 무시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순례자와 함께 순례의 여정을마친 지금, 화살표가 갑자기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한다. 뒤늦게 핀 길가의 코스모스, 늦가을의 따스한 햇살,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했던 가족, 부담으로만 다가왔던 업무.... 오늘은 또 어떤 화살표가 나를 인도할까? 화살표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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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청년 논객 한윤형의 잉여 탐구생활
한윤형 지음 / 어크로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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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패러디한 제목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제목처럼, 이 시대 청춘의 이야기를 담담히, 가감 없이 그려내고 있다. 아니, 때로는 고발하고 있는 느낌도 받았다.  

 

무엇보다도 감탄했던 것은 작가인 한윤형의 글쓰기다. 자신이 경험해 온 삶의 궤적들 속에서 청년들의 공통적인 문제를 발견해가고, 그 문제들을 통해 현 시대의 청년 키워드를 말하고 있다. , 풍부한 독서 편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가히 과거의 키보드 워리어라 불릴 만하다.

 

책에게 초점을 맞추어 보자.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기존의 청년들을 위한 책과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대변되는 청년 대상 책들은 너무 뻔했다. ‘아프지만 견디어야 한다, 청춘은 청춘 자체로 아름답다는 류의 위로는 청년들이 순간적으로나마 현실을 이겨 낼 수 있는 각성제가 되었다. 하지만 깨어났을 때는 어떤가? 익히 잘 알고 있듯이 더 아파하고, 힘들어 한다. 계속 몰아치는 세상의 바람앞에서 자신의 존재는 바람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미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각성제류의 책이나 자기계발서들은 현실을 잠깐 잊게 해주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다시 훑어보지만, 이 책에는 그런 위로가 담겨 있지 않다. 꼰대의 어떻게 살아라!”는 최소한의 지침도 없다. 오히려 냉혹하게 이 시대 청춘의 위치와 청춘이 견디어야 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사회의 차가운 온도를 보여 준다. 여기에 이 책이 갖는 따스한 장점이 살아난다. 청춘들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참고서가 되는 것이다. 물론, 적합한 위로와 지침이 있으면 안성맞춤이겠지만, 없다 하더라도 괜찮다. 이 시대 청춘들은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문제를 안고 살기 때문에 대처 방안과 실천 방안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청춘들에게 획일적으로 이렇게 살아라!”라고 충고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냥 읽고 내가 사는 세상이, 우리 청춘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이런 세상이구나. 이 시대 청춘의 모습이 이렇구나.”라고 자신이 인지하면 그만이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옷깃을 여미고, 세상에 뛰어들면 되는 것이다. 예전과는 다른 청춘의 모습으로.

 

한편,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이 심상치 않았다. 영화 <관상>에 이런 대사가 있다. “그 사람의 관상만 보았지 시대를 보지 못했네. 파도만 보고 바람은 보지 못했네.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이건만...” 이제 서른에 접어든 작가는 마치 바람을 보는듯하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장년도 마찬가지이지만) 바로 앞의 파도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데 말이다. 단순히 청춘의 현상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속에서의 청춘의 위치를 제대로 짚어 주니 이 책이 더 설득력을 갖는 이유가 된다. 게다가 작가도 청춘 아닌가.

 

만물(萬物)이 푸른 봄철이라는 의미의 청춘(靑春), 이 아름다운 청춘들이 푸름을 잃고, 스러져 가고 있다. 기성세대는 각종 이름을 이들에게 붙여 왔다. X세대, N세대, P세대, 88만원 세대. 이제 이름은 그만 붙여도 된다. 청춘은 청춘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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