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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화살표는
지금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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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서영은/문학동네)를
읽고
나는
소설가로서 적지 않은 소설들을 발표해왔다.
하지만,
이
책은 이전에 내가 출간한 어떤 책하고도 같지 아니하다.
<p.400 작가의
말>
이
책은 작가 서영은의 산티아고 순례기이다.
이상문학상까지
탔을 정도로,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라 할 수 있는 서영은.
우리
문단의 거장 김동리의 세 번째 아내이기도 한 그녀가 홀연히 문단을 떠나,
생의
자리를 떠나 순례길에 오르게 된다.
이
책은 순례길을 떠나는 작가의 마음과 순례길의 고된 여정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처음에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작가를 따라갔다.
아니,
부러운
시선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산티아고라고?
음.
스페인!
좋은
곳이지.
역시
소설가는 뭔가 달라!’
부러움과
동경의 눈빛으로 산티아고를 뒤쫓아 갔다.
하지만,
순례길에
접어들 때부터 유명한 소설가인 서영은의 모습은 거기 없었다.
단지,
지팡이를
짚은 남루한 이의 모습뿐이었다.
끼니와
날씨를 걱정하고,
좀
괜찮은 알베르게(숙소)를
찾고,
어떤
짐을 버려야 할지 숙고하는 순례자.
무엇을
버릴까....
마치
인생의 중요한 결단을 내릴 때만큼 진지해진다.
p.124
이런
고민은 현대 문명의 촉수가 뻗치는 평소의 생활에선 여간해선 하기 힘든 것이다.
이런
고민들을 양식 삼아,
주위의
자연을 벗 삼아 순례자는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어떤
곁눈질도,
사치,
호사도
여기엔 끼어들 틈 없다.
조금씩
책을 읽으며,
나도
순례의 길에 동참하는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
관찰자에서
참여자의 시선으로 순례자를 따라 갔다.
순례자가
힘든 상황에 처하면,
나
역시 동일한 상황에 맞닥트린 듯 주저하였고,
어려움
이후 회복의 노래를 부를 때면,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가
동반자(치타)와
심하게 다툴 때면,
마치
치타가 옆에 있는 듯 치를 떨었으며,
화해했을
때는 치타를 이해하는 듯한 동정의 눈빛도 건넸다.
한편,
그가
경험한 분명한 영적 현현(顯現)
앞에선
지금 내가 책을 읽는 ‘이
곳’-전철,
사무실-이
거룩한 곳이 될 수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순례자는,
그리고
나는 순례지의 끝,
산티아고에
도착한다.
‘그곳엔
어떤 신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호흡을
가다듬고,
책장을
넘겼다.
그
곳의 모습은 이러했다.
산티아고라는
도시는 가까워질수록 길이 소란스러워지고 세속화되는 느낌을 준다.
(p.345)
심지어는
자기 팀을 뒤쫓던 사람이 서로 반대 방향에서 오는 다른 사람과 몸을 부딪치고 나서 ‘미안합니다’
하면서도
자기 가는 방향만 볼 뿐 상대를 쳐다보지 않고 지나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가 되는 것조차 관심을 두지 않는다.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p.363)
참
아이러니하다.
아니,
그
힘들었던 순례의 열매는 달콤해야지 않나?
보물섬은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한 가지 보물은 발견해야 옳지 않은가?
하지만,
순례자는
이 글로 순례를 마무리한다.
산티아고는
내게 순례의 종착지가 아니다.
산티아고는
내게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문이자 또 다른 화살표이다.
p.367
어쩌면
작가의 이 말 속에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보이는 듯했다.
순례자에게
있어 종착지 산티아고는 더 이상 성지(聖地)가
아니었다.
오히려
산티아고를 찾아가는 길 그 자체가 성지였다.
더
확장하자면,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이
성지인 것이다.
그
순간,
순례자에게
향했던 시선은 이제 나를 돌아본다.
그동안
아름다운 산티아고를 동경하며,
얼마나
많은 작은 산티아고들을 지나쳐 왔을까?
‘내일은
새로운 해가 뜰 거야’,
‘내년엔
분명 새로운 길이 열릴 거야’라는
주문을 외우며,
지금
만나는 사람들에겐 얼마나 각박했었나?
막연한
이상향을 꿈꾸며,
나태함과
불평을 옷 입고 살아가고 있었다.
문득
한 시인의 시어도 떠오른다.
‘더
열심히 그 순간을 /
사랑할
것을...
// 모든
순간이 다아 /
꽃봉오리인
것을.
/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
꽃봉오리인
것을!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그러고
보니,
순례
내내 순례자와 삐걱 대며,
어디로
튈지 가늠치 못할 치타의 모습도 낯설지 않았다.
‘저
사람은 왜 저래?
나
같으면 아예 혼자 다니겠다’며
혀를 쯧쯧 차며,
내가
마구 손가락질해댔던 치타.
그런데,
치타의
그런 모습이 어쩌면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맞아!
나도
저런 적이 있었지.
혼자
편하려 했던 적도 많았었지.’
그의
모습이 나와 겹쳐졌다.
순례자는
그런 치타와 함께 끝까지 순례를 한다.
순례를
거의 마칠 무렵,
순례자는
치타를 향한 눈빛을 바꾼다.
내
안에서 치타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던 것도 나의 도그마였다.
그
도그마는 겸손과 부끄러움으로 위장한 나의 교만이었다.
(p.374)
순례자의
이 말이 내게 위로를 준다.
순례자와
치타는 결국 같은 ‘순례자’였고,
나
역시 같은 길을 걸어가는 순례자라는 사실,
그
사실이 위로와 함께 인생 여정의 동반자를 만난 듯한 반가움을 주었다.
‘걷거나
탈것을 타고 어느 곳으로 가는 노정(路程).’
이것은
‘길’의
여러 정의중 하나이다.
그동안
길 너머에서 화살표를 찾기에 급급했었다.
그렇기에
잘 보이지 않았고,
찾았어도
‘이건
아닐 꺼야’
하며
무시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순례자와
함께 순례의 여정을마친 지금,
화살표가
갑자기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한다.
뒤늦게
핀 길가의 코스모스,
늦가을의
따스한 햇살,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했던 가족,
부담으로만
다가왔던 업무....
오늘은
또 어떤 화살표가 나를 인도할까?
화살표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