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차를 타는 당신에게 - 마음을 다잡는 특별한 이야기들
서주희 지음 / 샘터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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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봐도, 신문을 봐도 한숨부터 나온다. 여기저기서 못 살겠다라는 아우성이 들린다. 새해 첫 날 가졌던 마음가짐은 이제 없다. 계속 힐링, 희망에 대한 책이 나오지만, 나한테 와 닿지는 않는다. 첫차를 타는 당신에게를 읽어야 할 때이다. 저자 서주희 씨는 이렇게 말한다.

 

희망을 가지라는 말을 함부로 꺼내기에는 너무 아픈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위로나 공감, 따끔한 충고나 독설도 좋지만, 저는 무엇보다 열렬한 응원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 온전히 만족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힘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모았습니다.” (5)

 

 

노란 손수건, TV동화 행복한 세상같은 책들이 있었다. 실의에 빠진 독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었던 책이다. 그 책들처럼 이 50편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새로 다잡게 한다. 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일본의 한 직장인 이야기. 그는 사회 초년생 시절, 매일 실천할 수 있는 소박한 목표 하나를 정했다. 그것은 매일 첫차로 출근한다라는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그는 약속대로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했다. 아무도 없는 전철에서 그는 책을 읽었다. 6시에 사무실에 도착해 간단한 아침을 먹고, 업무가 시작하는 9시까지 매일 번역 작업을 했다.

 

그렇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매일 첫 차로 출근한 그는 30년 후, 회사의 중역이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공부해오며 쌓은 실력을 인정받아, 국립대학 교수직을 제안받기도 했다.

 

그가 최고의 지성이라는 교수의 실력을 갖출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아닌 자기와의 약속을 매일매일 꾸준히 지켜왔었기 때문일 것이다. 매년 새롭게 결심하고, 지키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작지만 소중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큰 변화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런 한 사람의 변화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29)

이 책은 6장으로 구성되었다. 각 장의 제목은 이렇다. <인생에는 지름길이 없다>, <백 년을 살더라도 천 년을 계획하라>, <올라갈 것인가, 멀리 갈 것인가>, <희망은 아프다>, <세상에 멋진 일은 없다. 멋진 내가 있을 뿐이다>, <흐르던 물은 가장 낮은 곳에서 멈춘다>.

 

꼭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다. 읽고 싶은 부분을 펴서 읽는다면, 큰 용기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새해의 첫 마음과 결단을 잃어버린 사람은 첫차를 타는 당신에게와 함께 자신과의 작지만 소중한 약속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과 함께 마음을 다잡으라.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이 있다면 커다란 동기부여가 되겠지요. 그러나 언제 그 곳에 닿을까 조바심을 낸다면 발걸음이 흐트러질지도 모릅니다. 그저 나아가는 과정 자체에 집중한 채 온 힘을 쏟아보세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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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5.2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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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있는 이야기와 유익한 정보로 독자를 찾아가는 <샘터>. 2월 호에도 따뜻함을 주는 기사들로 가득 차 있다.

 


먼저 내 눈을 끈 것은 국립중앙도서관 임원선 관장과의 인터뷰였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저작권을 담당했던 임 관장은 그의 전공을 살려 도서관을 운영했다. 그는 국내 서비스 중인 366만 건의 전문 학술논문 전량을 디지털 자료로 확보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도 국가 도서관 중에서는 처음이라고 하니 임 관장의 혜안이 돋보였다. 국내에서 쏟아져 나오는 중요 자료는 빠짐없이 수집하는 게 목표, 90% 이상을 수집해 이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데 집중할 것”(16)이라는 임관장의 포부를 들으며, 더욱 발전하여 도서관의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할 국립중앙도서관을 기대한다.

 

청소년을 위한 <십대들의 쪽지>의 뒷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쪽지는 작년 12월로 30주년을 맞이했는데, 쪽지 부수만 해도 5,6803,367, 제작비용은 65억 정도가 들어갔다. 놀랍게도 쪽지는 무료간행물이고 정부 후원금이나 광고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면에는 발행인 고() 김형모 씨와 그의 뒤를 이어 쪽지를 발행하고 있는 아내 강금주 씨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강금주 씨의 고백이 참 아름답다.

 

단 한 사람이라도 쪽지를 통해 삶을 돌이켜본다면 그걸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작지만 핵심적인 변화는 사람의 진심이 통해야만 일어나니까요.”(19)

 

현경 신학자의 글도 의미 있었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모든 방송과 매체가 시끄러운 이때, 그녀는 용기 있게 진실을 밝히고 있는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을 주목하고 있다. 그녀는 박창진 사무장에 의해 연약함의 힘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감사를 전한다.

 

을은 힘없는 자가 아닙니다. 을 하나하나가 자존감을 지키며 진실을 말하고 행동할 때, 슈퍼 갑이 돈과 권력으로 완성한 피라미드는 무너집니다. 지배와 종속만이 존재하는 억압적인 피라미드에 온몸과 마음을 던져 작은 구멍을 내주신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응원합니다. 힘내셔서 다시 일어나세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있어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합니다. (116)

 

나도 이 글을 통해 박창진 사무장을 응원하게 되었고, 아파하는 모두가 힘을 내고, 일어서는 사회를 꿈꿔 본다.

이밖에도 샘터 2월호에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촬영지인 경남 통영 장사도, 게스트하우스 목포 1935, 목조각장 김규석 씨의 떡살, 재활용품으로 예쁜 화분 만들기 등 알찬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아직 쌀쌀한 2, 샘터와 함께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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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국가 - 무능한 국가와 그 희생자들
게리 하우겐 외 지음, 최요한 옮김 / 옐로브릭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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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가난한 사람들은 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 채 살고 있다. (43)

 

유엔이 발표한 보고서의 한 구절이다. 이 문장은 무슨 뜻일까? 풀어보자면, 세계 빈민 인구는 25억에 달하므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그로 인해 큰 위험에 처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곧바로 다른 바쁘고 급한 일에 밀려 문장은 쉽게 잊힐 것이다. 이 문장의 참 의미는 무엇일까?


페루의 한 지방으로 날아가 보자. 우아노코. 구글 어스로도 검색이 잘 되지 않는 벽지이다. 이 곳에서 한 소녀가 잔인하게 살인당했다. ‘유리라는 8살 소녀가 연회장에서 열린 파티 이후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많은 돈을 버는 교활한 페드로와 그의 열아홉살 아들 게리의 짓이었다. 그들이 어린 유리를 강간하고 살해한 것이다. 다행히 증거가 있었다. 그녀의 핏자국과 얼룩으로 더럽혀진 매트리스가 있었고, 게리의 피 묻은 셔츠도 있었다.

 

하지만, 페드로 부자는 법의 집행을 받지 않았다. 명백한 증거와 목격자가 있었음에도. 대신 다른 상관없는 사람이 범인으로 잡혀 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경찰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왜 진짜 범인은 법의 그물망을 피해 간 것일까?

 

또 다른 곳으로 가보자. 이번엔 인도. ‘마리암마라는 노동자는 새로운 공장으로 옮긴다. 그런데 공장주 V와 아들은 마리암마를 비롯한 노동자들에게 악랄한 짓을 하기 시작한다. 그곳에서는 매일 폭언과 폭력이 끊이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품삯을 거의 받지 못했다. 폭행을 견디지 못해 도망친 사람들은 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폭력배에게 밤새 맞아야 했다. 성폭행도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도 V 부자는 2년 동안 고소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이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듯했다. 경찰은 왜 그랬을까? V 부자가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억울한 피해자가 있는 사건들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이 둘에는 공통점이 있다. 경찰과 사법기관이 가해자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눈을 감았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가 가난하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폭력국가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책에서는 인권의 최소한의 제도조차 작동하지 않는 국가의 현실을 명백히 밝힌다. 수십억 빈민의 삶과 꿈을 폐허로 만들고 있는(15) 일상적 폭력범죄를 전면으로 고발하는 것이다. 특히 국제인권단체인 IJM(International Justice Mission) 활동과 경험을 바탕으로 피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 책은 가난에 대해 쉽게 가질 수 있는 전형적인 이미지의 수정도 요구한다.

 

우리는 세계 빈민이란 말을 들으면 기아, 질병, 노숙, 오염된 식수, 문맹, 실업 따위를 쉽게 떠올린다. 하지만 호세와 리처드가 곧장 떠올리는 것은 빈민을 빈곤에 옭아매는 폭력이다. (43)

 

실로 가난의 공포라 할 수 있을까. 저자 게리 하우겐과 빅터 부트로스는 세상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던 가난의 폭력적인 면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여러 실제적인 통계도 담고 있다. 해마다 폭력에 의해 강제로 집을 빼앗기는 사람이 5백만 명, 불법적인 노예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은 3천만 명이다. 또한, 전 세계 여성 인구의 5분의 1이 성폭력을 받고 있고, 제대로 재판 받지 않고, 기약 없이 투옥된 사람도 무려 1천만 명이라고 한다.

 

그 원인을 살펴보자. 저개발국가에서 폭력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은 기본적인 사법 제도와 경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장 난 경보기라는 실감나는 표현으로 이들을 고발한다. 더욱이 인신매매단, 악덕 기업주들이 지역 경찰과 결탁해 있기에 가난한 자들은 사면초가의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불편한 진실과도 마주친다. 그런 불합리한 상황이 극빈한 나라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다음 보고서를 보자.

 

가난한 사람의 문제는 전 세계에 편재한다. 최빈국이든 중소득국이든 지역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대륙에서 빈민은 폭력의 피해자다. (77)

 

가끔 TV 다큐멘터리에서 비추는 내전 지역이나 NGO가 구호를 펼치는 극빈국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니... 남의 나라의 일이 아니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아니 일어나고 있는 폭력이었다. 나의 이웃의 일, 어쩌면 내 일도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Locust Effect(메뚜기 효과)이다.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는 메뚜기 떼의 습격 앞에 농부들의 노고와 희생, 노력은 아무 소용도 없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가난한 자에 대한 무분별한 폭력이 마치 그와 같음을 잘 보여주는 제목이라 하겠다.

 

완벽한 해답은 아니겠지만,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말하라’. 세계 빈곤을 말할 때, 빈곤 뒤에 숨어 있는 폭력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폭력과 관련된 전문 지식, 특히 형사사법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고... 혹여나 전문 지식이 없어도 괜찮다. 저녁 식탁의 대화에서도,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개인 블로그에서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맨 처음 문장을 다시 한 번 읽어보자. 폭력 국가를 제대로 읽은 독자라면, 이 문장을 허투루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장 이면에 있는 수많은 가난한 자의 비명과 눈물이 들리고 보일 것이고, 습격을 받은 것처럼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독자에겐 숙제가 생긴다. 지금도 고통당하고 있는 가난한 자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나부터 말해야겠다. ‘수많은 빈민들은 이런 보호를 받지 못해서 공포에 떨고 있다는 사실’(346). ‘개도국에는 폭력에서 빈민을 보호하는 유의미한 법집행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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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 스미레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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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건, 늘 타인을 향해서잖아? 우선 타인을 웃게 하기 위해 내 웃음이 존재하고, 그래서 타인이 웃어주면 그 웃음이 내게도 돌아온다는 거야.” (130)

 

여기, 웃음이 매력적인 싱글녀가 있다. 이름 자체가 웃음(smile)을 일본 발음으로 읽은 스미레. 그녀는 거대 음반사를 박차고 나와 1인 인디 레코드 회사 스마일뮤직을 이끈다. 아직 자리가 완전히 잡히지 않았지만, 그녀가 관리하는 밴드는 점점 성장해 객석의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그녀에게 어려움이 닥친다. 조금씩 웃음을 잃어버린다.

 

그녀가 공들여서 키워 갔던 그 밴드, 돌연 다른 큰 기획사로 자리를 옮긴다. 설상가상으로 애인과도 연락이 안 되고, 앞으로의 관계가 불투명해진다. 웃음은커녕, 앞으로의 일을 심각히 걱정해야 하는, 이런 눈물 짓는 상황에서 스미레는 어떻게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 소설 스마일, 스미레는 일본 소설가 모리사와 아키오의 신작이다. 작가는 그동안 무지개 곶의 찻집, 쓰가루 백년 식당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담히 그려냈다. 그가 이번에 주목한 것은 대도시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직장여성이다. 작가는 대도시를 이렇게 묘사한다.

 

도쿄는 밀도가 높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농밀하다. 흥겹고 늘 자유롭지만, 이따금 나 자신의 호흡과 리듬에 위화감을 느낄 때도 있다.

주위에 사람이 만아서 즐거울 텐데도 문득 마음 안쪽을 들여다보면, 어두컴컴한 곳에 외톨이가 된 내가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116)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지만, 실제로는 외로운 이 시대 사람들을 소설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 또한, 인디 밴드의 노래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아티스트들은 어떻게 성장하는지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작가는 실제로 레코드 회사의 여사장을 밀착 취재했다고 한다.

 

어쩌면 심각하고, 우울하게 흘러갈 수 있는 내용이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유쾌했다. 마치 청춘영화를 보는 듯 인물들이 생생하고, 입체적이었다.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거기에 톡톡 튀는 신선함을 덧입힌 작가의 역량이리라.

 

좌충우돌, 일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고, 도시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스미레. 어쩌면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과 겹쳐 온다. 작가는 치열히 살고 있는 모든 스미레를 응원한다. 웃음을 잃지 말자. 웃자!

 

하늘은 어두워도, 인생은 밝아요. 다 잘될 겁니다.”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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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들의 세계사 - 2014년 제4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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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들의 세계사. 제목 한번 독특한 소설이다. 차남들이라니... 게다가 그들의 세계사라니... 얼마나 웅장하고, 글로벌한가... 하지만, 제목과는 달리(상관이 아예 없진 않다) 한 사람과 그가 존재했던 세계에 대한 글이다.

 

주인공 나복만. 왠지 코믹 드라마 주인공 이름일 것 같은 나복만. 택시 기사, 고아,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 그를 설명하는 단어. 하나 더 추가하자.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 허나, 그 법이 그를 넘어뜨린다. 평생 그를 옥죄어온다. 평생 그를 쫓아다닌다. 그의 모든 것-일자리, , 직업, 준법정신-을 앗아간다.

 

이것이 간단한 이 소설의 플롯이다. 작가 이기호. 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김 박사는 누구인가. 그의 전작 제목만 봐도 그가 어떤 작가인지 간파할 수 있다. 한마디로 웃기다. 재미있다. 단편소설의 정수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깔깔 웃음 뒤에 짙은 여운을 남긴다. 이 세상에 대한 풍자 역시 있다.

 

이 소설 역시 그랬다. 아니, 플러스 알파가 있다. 처음엔 그냥 독특한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겠거니, 하면서 책장을 폈다. 근데, 조금씩 조금씩 웃음의 강도는 유지되면서(때로는 고조되면서) 가슴 한편은 아려온다. 과거 우리가 겪어온, 살아온 이 시대에 대한 분노가 치민다. (이 소설은 지금 역시 통용되는 스토리이기에 더 가슴 아프다)

 

마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국 버전을 보는 것 같다. 세상은 그토록 우울하고, 어두운데 주인공만큼은 웃음을 잃지 않는. 나복만이 그랬다. 그의 주위의 모든 인물은 심각하고, 사태의 엄정함을 백분 알고 있는데, 나복만만큼은 몰랐다. 순수함 이상으로 알지 못했다. 마치 몰래카메라의 주인공처럼 만 당했다. 다른 인물들은, 그리고 독자들은, 그리고 나는 안타깝게, 때로는 바보같다 손가락질하며, 고군분투하는 나복만만 바라볼 뿐. (고문받는 장면은 영화 <남영동 1985>보다 <효자동 이발사>에서 소년이 고문받은 장면이 더 생각난다.)

 

작가의 서술 역시 전지적 작가시점이다. (“들어 보아라로 시작, “, 이것을 굿바이, 연인과 헤어지는 심정으로 들어 보아라.”로 끝난다) 다 알고 있다. 나복만은 여기서 가 아니다. 그냥 나복만이다. 불쌍한 나복만은 자기가 주인공인 작품에서도 라고 자기를 알리지 못했다. 그냥 나복만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주위 인물이다. 주인공에게 피해를 주었던 인물들을 보자. 나쁜놈들이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들이 한편으로는 착한 사람이다. 악의 축인 그 인물은 소설 <데미안>을 암송하듯 읽고, 거기 나오는 대사를 사람들에게 읽어주는 사람이다. 심지어는 나복만에게까지... 어떤 사람은 가족들을 열심히 봉양하는 효자이다. 그들에게 있어 죄가 없는 나복만을 고문하고, 유린하는 것은 그저 이었다. 그냥 일.... 소설속의 최선을 다한다는 표현처럼 그냥 일이었다.

 

... 암튼 이 소설은 그냥 웃고 넘기기엔 뭔가 걸린다. 마음에 무언가 걸린다. 나복만. 주인공의 이름이 오래 생각 날 것 같다. 나복만은 한 사람이지만, 어쩌면 역사의 잘못에 송두리째 자기의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 유린당한 사람을 대표하는지도 모른다. 그 나복만은 어쩌면 우리 주위에서 말없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계속되는 갑의 횡포에 아파하는 을의 모습도 겹쳐 온다.

 

이기호의 소설에서는 많이 웃은 만큼 결국 더 아파지기 때문에 희극조차 이미 비극의 한 부분이다.”라고 평론가 신형철은 말했다. 공감한다.

 

한편의 영화를 본 듯하다. 부조리극.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냥 소설의 한 부분을 옮겨 적는다. 이 시대에 대한, 이 소설에 대한 객관적 서술인 듯.

 

그러니, 보아라. 바로 이 지점에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 이야기의 핵심을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세계. 눈앞에 있는 것도 외면하고 다른 것을 말해 버리는 세계, 그것을 조장하는 세계(전문 용어로 '눈먼 상태'되시겠다.), 그것이 어쩌면 '차남들의 세계'라고 말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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