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국가 - 무능한 국가와 그 희생자들
게리 하우겐 외 지음, 최요한 옮김 / 옐로브릭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대다수 가난한 사람들은 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 채 살고 있다. (43)

 

유엔이 발표한 보고서의 한 구절이다. 이 문장은 무슨 뜻일까? 풀어보자면, 세계 빈민 인구는 25억에 달하므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그로 인해 큰 위험에 처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곧바로 다른 바쁘고 급한 일에 밀려 문장은 쉽게 잊힐 것이다. 이 문장의 참 의미는 무엇일까?


페루의 한 지방으로 날아가 보자. 우아노코. 구글 어스로도 검색이 잘 되지 않는 벽지이다. 이 곳에서 한 소녀가 잔인하게 살인당했다. ‘유리라는 8살 소녀가 연회장에서 열린 파티 이후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많은 돈을 버는 교활한 페드로와 그의 열아홉살 아들 게리의 짓이었다. 그들이 어린 유리를 강간하고 살해한 것이다. 다행히 증거가 있었다. 그녀의 핏자국과 얼룩으로 더럽혀진 매트리스가 있었고, 게리의 피 묻은 셔츠도 있었다.

 

하지만, 페드로 부자는 법의 집행을 받지 않았다. 명백한 증거와 목격자가 있었음에도. 대신 다른 상관없는 사람이 범인으로 잡혀 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경찰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왜 진짜 범인은 법의 그물망을 피해 간 것일까?

 

또 다른 곳으로 가보자. 이번엔 인도. ‘마리암마라는 노동자는 새로운 공장으로 옮긴다. 그런데 공장주 V와 아들은 마리암마를 비롯한 노동자들에게 악랄한 짓을 하기 시작한다. 그곳에서는 매일 폭언과 폭력이 끊이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품삯을 거의 받지 못했다. 폭행을 견디지 못해 도망친 사람들은 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폭력배에게 밤새 맞아야 했다. 성폭행도 끊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도 V 부자는 2년 동안 고소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이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듯했다. 경찰은 왜 그랬을까? V 부자가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억울한 피해자가 있는 사건들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이 둘에는 공통점이 있다. 경찰과 사법기관이 가해자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눈을 감았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가 가난하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폭력국가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책에서는 인권의 최소한의 제도조차 작동하지 않는 국가의 현실을 명백히 밝힌다. 수십억 빈민의 삶과 꿈을 폐허로 만들고 있는(15) 일상적 폭력범죄를 전면으로 고발하는 것이다. 특히 국제인권단체인 IJM(International Justice Mission) 활동과 경험을 바탕으로 피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 책은 가난에 대해 쉽게 가질 수 있는 전형적인 이미지의 수정도 요구한다.

 

우리는 세계 빈민이란 말을 들으면 기아, 질병, 노숙, 오염된 식수, 문맹, 실업 따위를 쉽게 떠올린다. 하지만 호세와 리처드가 곧장 떠올리는 것은 빈민을 빈곤에 옭아매는 폭력이다. (43)

 

실로 가난의 공포라 할 수 있을까. 저자 게리 하우겐과 빅터 부트로스는 세상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던 가난의 폭력적인 면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여러 실제적인 통계도 담고 있다. 해마다 폭력에 의해 강제로 집을 빼앗기는 사람이 5백만 명, 불법적인 노예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은 3천만 명이다. 또한, 전 세계 여성 인구의 5분의 1이 성폭력을 받고 있고, 제대로 재판 받지 않고, 기약 없이 투옥된 사람도 무려 1천만 명이라고 한다.

 

그 원인을 살펴보자. 저개발국가에서 폭력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은 기본적인 사법 제도와 경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장 난 경보기라는 실감나는 표현으로 이들을 고발한다. 더욱이 인신매매단, 악덕 기업주들이 지역 경찰과 결탁해 있기에 가난한 자들은 사면초가의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불편한 진실과도 마주친다. 그런 불합리한 상황이 극빈한 나라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다음 보고서를 보자.

 

가난한 사람의 문제는 전 세계에 편재한다. 최빈국이든 중소득국이든 지역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대륙에서 빈민은 폭력의 피해자다. (77)

 

가끔 TV 다큐멘터리에서 비추는 내전 지역이나 NGO가 구호를 펼치는 극빈국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니... 남의 나라의 일이 아니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아니 일어나고 있는 폭력이었다. 나의 이웃의 일, 어쩌면 내 일도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Locust Effect(메뚜기 효과)이다.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는 메뚜기 떼의 습격 앞에 농부들의 노고와 희생, 노력은 아무 소용도 없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가난한 자에 대한 무분별한 폭력이 마치 그와 같음을 잘 보여주는 제목이라 하겠다.

 

완벽한 해답은 아니겠지만,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말하라’. 세계 빈곤을 말할 때, 빈곤 뒤에 숨어 있는 폭력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폭력과 관련된 전문 지식, 특히 형사사법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고... 혹여나 전문 지식이 없어도 괜찮다. 저녁 식탁의 대화에서도,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개인 블로그에서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맨 처음 문장을 다시 한 번 읽어보자. 폭력 국가를 제대로 읽은 독자라면, 이 문장을 허투루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장 이면에 있는 수많은 가난한 자의 비명과 눈물이 들리고 보일 것이고, 습격을 받은 것처럼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독자에겐 숙제가 생긴다. 지금도 고통당하고 있는 가난한 자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나부터 말해야겠다. ‘수많은 빈민들은 이런 보호를 받지 못해서 공포에 떨고 있다는 사실’(346). ‘개도국에는 폭력에서 빈민을 보호하는 유의미한 법집행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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