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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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생각으로 살아가는 동지를 보면 반가운 법이다. 한빛비즈의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는 말 그대로 자발적 싱글을 감행(!) 한 30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내가 요새 이 저자의 길을 밟고 있는 터라, 이리 반가울 수 없다.

저번 주 토요일, 교회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는데 평소 매우 친하게 지내는 한 집사님께서 나에게 하신 이야기를 풀어야 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인가보다. 그 집사님의 딸 분이 나랑 비슷한 또래라, 날 딸처럼 아끼고 편하게 대해주시는 정말 친한 분이다. 나의 20대를 꼬박 옆에서 지켜봐주신 분이기도 하다. 꼰대라는 단어도 안 어울리고, 나중에 내가 저 나이가 됐을 때 저렇게 깨어있는 사고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나에겐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분이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말미에 하시는 말씀이, "이제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가야지!"

omg, 내가 그 집사님께 그런 소리를 벌써 (!)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깨어있는 사고를 가지신 분이라고 생각하셨는데 결혼에 대해서는 아직인가보다. 내가 스물 아홉 밖에 되지 않았는데 왜 결혼 이야기를 하시는지 모르겠다. 아니 서른이 되어도, 서른 하나가 되어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란 말이다.

그래서 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은 생각이 없어요! 세상엔 재밌는 일이 너무 많아요"

"그치 하고 싶은게 많지~? 재밌는게 참 많지! 근데 하고 싶은거 다 즐기고 다 하면 결혼 못해~ 나중에 누가 너 데려간다고~?"

(발끈) "글쎄요~ 사람은 많아요 ㅋㅋㅋㅋㅋㅋ"

"ㅎㅎㅎ 그래~ 그럼 열심히 즐겨!"

대충 이런 뉘앙스로 대화가 마무리 된 것 같은데, 몇 분 안지나 조금 후회가 되었다.

"누가 절 데려가는 게 아니라 제가 선택하는 건데요" 라고 할걸.


책을 읽다보면 빵빵 터진다. 저자인 이주윤씨의 전작이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인데, 읽진 않았으나 (!) 예전에 책을 접하고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더랬다. 왜 기본적인 맙춤뻡조차 틀리는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지. 친구들아, 맞춤법 좀 틀리지 말자. 오죽하면 정말 '담백한 카톡 말투' 가 호감을 불러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을까. 실제로 내가 그러한 에피소드를 경험한 적이 있어서 (...) 아니 근데 요새 애들은 왜 그렇게 정말 기본적인 맞춤법, 띄어쓰기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걸까? 맞춤법/띄어쓰기가 관계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걸 그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할 말은 많지만 해 봤자 그 누구에게도 좋을 것 없으니, 줄여야겠다.

이번 년도 들어서 유난히 나에게 결혼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진다. '꺾어지는' 스물 다섯살을 넘어 넘어, 30을 코 앞에 둔 스물 아홉이라는 게 분위기로 느껴지는 건가? 그런 나를 위해 빨리 "좋은 남자 만나 시집가야지" 라고 말하시는 분들을 위해 헌정하고 싶은 책이다. 우리 부모님도 나의 결혼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않으시는데 자꾸 결혼은 언제하냐, 좋은 사람 만나야지? 그걸 저한테 왜 말씀하시는 건데요. 저번에도 어떤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길래, "좋은 사람 없는데요? ^^ 있으면 좀 소개시켜 주세요." 하니까 어버버 하시면서 대답을 못하시던데 말이죠. 노처녀란 말도 없어져야 해. 노처녀 히스테리란 말은 더더욱.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아니 솔직히 제가 결혼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신데요!

유쾌한 저자의 말솜씨가 책장을 훌훌 넘거가게 하는 에세이지만 그저 마냥 가볍지만은 않아서 때로는 생각하게 만들었던 책이다. 우리 앞으로도 잘 버텨나 보아요.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제 눈에 차는 사람이 없는걸요. 제가 너무 아깝고, 제 경력이 단절될 것을 생각하니 더 아까워요.

근데 뭐,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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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마지막 경고 - 교회여, 회개하라
존 맥아더 지음, 조계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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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마태복음 24:15

예수 그리스도가 '언제' 오실거냐? 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종말이 표식이 다가오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근데 그래서요? So What? 그래서 우리가 뭘 다르게 행하고 있죠. 종말의 때가 다가오면 우리는 구원 여부와 상관 없이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달라지는 것이 있나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한다고 말하면서, 믿지 않는 자들이 지옥불에 빠진다고 하면서 우리는요. 우리를 돌아보면 우리는 과연 떳떳한가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라고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데도 너무 안일하다.

...

...

...

그렇다. 이상 나에게 하는 이야기이다. 그렇다. 존 맥아더의 《현대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마지막 경고》라는 책을 읽고 더더욱 회개하게 된다. 이 책은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이야기해주고 있으며, 여기서 논의되는 예수님의 말씀들은 때로는 따뜻한 사랑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경고이다. 현대 교회를 향한 경고이며, 한국 교회를 향한 경고이며, 내가 섬기는 공동체를 향한 경고이며, 동시에 그 소속원인 나를 향한 경고이다.


특히 에베소 교회와 같은 교회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외적인 경건과 섬김의 행위에만 관심을 쏟기가 쉽다.

92p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요한계시록 2:5, 93p

모로가든 결론은 처음 마음을 돌이켜 회개해야만 하며, 십자가 앞에서 거듭난 자들이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이 세우신 교회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주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돌이켜 행해야 한다는 거다. 저번주에도 교회의 간사님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이런 말을 했었더랬다. 다른게 바랄게 없다. 오로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만이라도 진정으로 정말 주님을 받아들이고 주 뜻대로 살고자 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건 그저 낙관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복음을 전하는 것? 물론 중요하다. 주님께서 주신 지상 최대의 과제가 기쁜 소식;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바깥으로 전하기 전, 우리 내부에서는 과연 그 복음이 얼마나 살아 움직이고 있나를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적으로 살아있지 않은 복음을 바깥으로 전파해서 무엇 하랴. 그게 외식이 아닐까 싶다.

교회 지도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의 사역이 세상의 모임이나 행사처럼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게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127p

나는 찬양팀을 이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음악의 유혹이 나를 부른다. 찬양이 아닌 음악을 하려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다. 그 순간마다 너무나 무서워서 더욱 더 깨어있으려 한다. 찬양 집회를 앞두고 그런 마인드를 더욱 더 다잡으려 하고 있는데, "세상의 문화를 가능한 한 많이 닮으려고 애쓰고 있다 (127p)" 는 문구가 내 마음을 찔렀다. 요즘 찬양은 예전과 다르다. 누구나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예전의 복음성가가 아니라, 정말 세상의 음악과 닮은 곡들이 많다. EDM은 물론이거니와, 클럽에서 나올법한 찬양들도 굉장히 많다. 문화적 적절성,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최신 유행, 대중문화의 흐름 사이에 찬양이 걸어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요한계시록 3:1, 182p

개인적으로 '사데 교회'에 관한 예수님의 경고를 말해주는 7장을 가장 인상깊게 읽었다. 사데 교회를 향한 말씀을 하시기 전, 주님의 편지는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충실한 신자들에 대한 칭찬에서부터 시작하였지만 사데교회는 달랐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 3:1). 이 말을 듣고 어찌 찔리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예수의 피, 주의 보혈로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간다 말하면서 그 내면이 죽어 있는 자가 많다. 나 조차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말하면서 그 믿음에 합당하지 않은 채로 살아갈 때가 많다. 본성이 불쑥 불쑥 튀어나오고 죄가 나 대신 산다. 나만 알 것 같은 그 죄된 모습을 이미 주님께서는 모두 알고 계신다. 각성해야 한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나를 위한 책이고, 모두를 위한 책이다. 말씀대로, 성경대로만 살아간다면 이 세상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인내는 수동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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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 성도가 지녀야 할 가장 아름다운 신비
박순용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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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또는 본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장 5절 - 11절

크리스찬의 인생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 을 닮아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며 주와 동행하며 그 분을 닮아 가는 삶. 그것이 진정한 크리스찬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진정 무엇일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하늘영광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는 박순용 목사님이 쓰신 빌립보서 2장의 5절 - 11절 강해(설교) 집이다.


빌립보서 말씀을 차근차근 따라가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하나님의 행함' 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계신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7절 분량의 구절이 책 한권에 고스란히 펼쳐져있다. 주석 바이블이나, 때로 궁금하여 더 찾아보는 인터넷 사이트를 제외하고 이렇게 몇 구절만을 가지고 긴 강해를 펼쳐 놓은 책은 처음이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마음에 감동이 커졌고, 역시나 성경은 알면 알수록 더욱 놀랍고 신비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말씀을 잘 이해하며, 말씀 대로 살기 위해서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말한다. (히 4:12) 그러나 이렇게 육신이 말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씀을 등한시 하는 경우가 많다. 오직 말씀 앞에 떳떳해야 하며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는 우리들인데 때로는 수많은 사역들이 말씀을 '못' 읽는다는 핑계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말씀이 어렵게 느껴진다는 건 그 다음 이야기이다. 빌립보서 말씀을 뜯어보면서 느끼는 감동을 다른 이들도 느껴봤으면 좋겠다.



세상은 요즘 우리에게 말한다. '니네 하사장이 그렇게 가르치드나' 유머랍시고 하는 조롱섞인 이 말이 난 정말 듣기 싫다. 우리가 욕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욕을 먹는 세상이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기는 무슨, 때로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욱 무서운것이 소위 '믿는 사람'들이고, 그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안에서는 더더욱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는 빌립보서 말씀이 무색하게- 그렇게 우리는 주님을 등지고 세상과 손잡고 살아간다. 내가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고, 나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용한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움직여 다툼과 허영이 일어나는 것 또한 부지기수다. 늘, 돌이켜보고 따라야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 + 하늘에 올리신 것 +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것. / 빌립보서 8절 말씀은 이 세가지의 내용을 '지극히 높여' 라는 표현으로 요약한다고 말한다. 이는 곳 자신을 비워 낮추는 자는 높이시고, 반대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추신다는 것이다. 교만한 자가 아닌 겸손하고 작은 자를 쓰시는 하나님. 특별히 요새 내가 가지고 있는 기도 제목 중 하나이기도 해서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높일 수 없다; 내 자신은 절대 나를 높일 수 없다. 오직 주님께서만 날 높이시고 사용하신 다는 점을 늘 꼭 기억하길.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내 자신을 버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의 마음을 채우며, 다른 이를 나보다 낫게 여기며 세우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이다.


매번 말로만 고백하고 큐티로만 하지 말고, 정말 내 마음속에 진정한 그리스도의 마음만이 채워졌으면 좋겠다. 시기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듯 나도 내 주변의 지체들을 섬기며, 오로지 사랑과 섬김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가 되길. 그리고 이 모습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 가운데 함께 하여, 그 성도들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빛이 이 세상에 비춰질 수 있기를.


#그리스도예수의마음을품으라 #하늘영광교회 #박순용목사님 #생명의말씀사 #서평 #리뷰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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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빈곤 - 산업 불황의 원인과, 빈부격차에 대한 탐구와 해결책 현대지성 클래식 26
헨리 조지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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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영국 사회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쳐 '조지주의 운동' 이 일어나기도 하였던 헨리 조지의 문제적 역작, 바로 《진보와 빈곤》이다.

나는 경제학 교과서를 쓰려는 게 아니고,

단지 어떤 중대한 사회적 문제를 지배하는 법칙을 찾아내려고 한다

헨리 조지 - 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는 이 책에서 '토지공개념'을 최초로 내세운다.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개인적 소유권은 인정하되 이용은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자는 것으로, 토지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토지시장에 개입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또한 같은 맥락으로, 토지 공유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모든 지대를 조세로 징수하여 사회 복지의 지출에 충당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 그리고 이러한 토지세로 거둬들인 금액은 저체 재정 지출을 충당하고도 남음이 있어 다른 세금은 모두 철폐하자라는 주장까지. (오픈백과 참조) 또한 경제의 3요소인

총 10장 + 결론으로 이루어진 《진보와 빈곤》을 살펴보자면, 딱딱하기 그지 없는 제목에 반해 헨리 조지는 참으로 친절하다. 《야바위 게임》의 마이클 슈월비 처럼, 그는 매우 유연하고 친절하게 본인의 주장을 차근차근 펼쳐나간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한평생을 연구했던 그의 글에서는 진심이 느껴진다. 경제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 서민들을 위해서 쓴 글이라 학자 특유의 거만함이 느껴지지 않아 인상적이었다. 또한 경제라는 전체적인 흐름 아래서 사회학, 인문학적인 이야기들을 함께 바라보고 있어 그의 주장이 더욱 현실감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부와 권력의 불평등이 초래할 문명의 파괴를 논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헨리 조지의 이와 같은 사상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는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쉽게 적용되기 힘든 사례다. 그렇기에 헨리 조지는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등 기존의 고전경제학의 대가들과는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재야의 경제학자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근데 재미난 것은 최근 정부의 헌법개정안에서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이 들어있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정부의 헌법개정안은 투표 불성립으로 사실상 폐기가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이념 싸움으로 변질 될 수 있는 뜨거운 감자로서의 사안이었다. (하지만 헨리 조지의 사상을 꺼내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로 몰리는 이 나라가 씁쓸한 건 사실이다)

사회가 물질적 진보를 가져오는 여러 조건들 속으로 발전해감에 따라 그 사회에는 가난과 그 부작용이 등장한다. 우리로서는 인정하기가 불쾌한 사실이지만, 19세기의 특징인 엄청난 생산력 증가 - 이 생산력은 놀라운 비율로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 는 가난을 근절하거나 노동자들의 부담을 덜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부사와 나사로 (가난한 자)의 빈부차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생존을 위한 발버둥을 더욱 힘든 것으로 만들고 있다. (28p)

무서운 점은, 그 때 당시에 헨리 조지가 문제점으로 여기고 예측했던 부분들이 한결같이 지금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는 점. 소득 불평등에서부터 오는 빈부 격차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고 나아질 기미가 안보인다.

대안으로서의 헨리 조지가 아니라, 더 나은 고민을 위함으로서의 헨리 조지는 분명히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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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책 54 -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서 에크하르트 톨레까지 내면의 성장을 위한 영성 고전 읽기
제임스 M. 러셀 지음, 이정아 옮김 / 판미동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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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임스 M 러셀이 지은 《영혼의 책 54》란 책이다. 기독교 고전부터 시작해서 불교까지, 다양한 종교에서 영성에 관해 탐구했던 책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신앙의 원류를 탐색하는 소제목을 가진 '초기 크리스트교 고전'부터, 현대 그리스도교 저작, 기도 입문서, 명상과 고독이라는 카테고리에 이르고, 그 이후 '비종교 도서', 마지막으로 '그 밖의 다른 선택들' 이라는 부제로 노자의 도덕경, 헤르만 헤세의 싯타르타, 스즈키 다이세쓰의 선에서 화엄으로 등을 읽어나간다. 문학과 철학, 종교를 넘나드는 영성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쉽게 다루는데 그 주제의 무거움과 비교했을 때 생각보다 페이지가 쉽게 넘어갔다.


여하튼 《영혼의 책 54》는 책의 내용을 소개한다는 것에 포커스를 두기보단, 그 책이 써 내려져갔던 배경이나 저자에 관해 폭넓게 다루고 있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얻을 게 많았다.

책을 읽어가면서 물음표가 계속 생기고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 그렇다고 잘못된 방향으로의 '의구심'이 아니라 말 그대로의 알지 못했던 사실들에 대한 궁금증과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책이었다. 사실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알고 싶은 것들이 참 많지만 그 누구도 떠먹여주지 않는다. 신앙도 곧 신학이라고, 오직 믿음에 기초하여 더 많은 걸 알아간다면 더욱 신앙이 풍성해 질 수 있다.

사실 평소에 교회에서 진행되는 제자 훈련이라고 해봐도 기본적인 교리와 성경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터라 내가 직접 발품을 팔고 이 책 저 책을 들여다보고, 질문하지 않으면 더욱 더 폭넓은 신앙을 가지기 힘들 다는걸 여실히 느끼는 요즘, 다양한 초기 고전들을 통해 그 시대와 지금을 비교하며 영성- 신앙에 대한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책이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이며, 성 프란치스코의 작은 꽃들, 길들여진 냉소주의자의 노트를 알 수 있었겠는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 그리고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영혼을 풍성하게 하는 폭넓은 사고를 안겨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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