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 과학으로 검증받은 경이로운 진실
파트리크 스발키에로 지음, 이재정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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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천주교 신앙 안에 있으면서 '기적'이라고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제가 듣게 된 기적은 란치아노에서 성체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화했다는 것입니다.

책에서 란치아노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겠습니다.

750년, 란치아노 (147-152페이지)

란치아노는 아드리아해에 접해 있는 이탈리아 아브루치 지방 외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8세기 중반까지는 사람들이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곳이다.

750년경 어느 날, 라틴 전례에 따라 미사를 거행하는 바실리오회 수사 신부가 란치아노의 작은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중에 성체와 성혈을 축성하는 기도문을 외우고 나서 불현듯 이런 의심을 품었다. '그리스도께서 성체 안에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것이 사실일까?'

그런 의심에 휩싸였을 때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신부의 눈앞에서 동그란 모양의 제병이 살아 있는 살로 변화하고, 성작에 담겨 있던 포도주가 피로 변하한 것이다!

이 신부는 너무 놀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하니 있었다. 이 기적을 감추어야 할까? 아니면 신자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까? 겁이 난 그는 주저주저하며 어쩔 줄 몰랐다. 그리고 몇 분이 흐른 뒤 그는 성작과 성반을 높이 들어 올려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변화된 살과 피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그것을 본 신자들은 이 사실을 널리 알렸다.

이 기적의 '몸과 피의 형상'은 13세기 중반에 건립된 란치아노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있는 은으로 만든 감실 안에 모셔져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1923년부터 이 감실 안에는 8세기에 사용하던 제병의 모습을 한 살 조각이 모셔져 있고, 또한 크리스털로 아름답게 제작된 성작에는 마르고 응고된 형태로 그 모양이 '불규칙한' 다섯 개의 핏덩이가 모셔져 있다. 이 살과 피는 그 전에는 네 개의 자물쇠가 채워진 나무 상자 속에 보관해 왔다.

란치아노의 기적과 관련하여 가장 큰 문제는 기적의 역사적 시간 순서다. 16세기가 되어서야 이 기적을 언급한 문헌들이 처음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1566년에 어떤 공증인이 작성한 증서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 당시 오스만 제국의 침공에 대비하여 성당 중앙 오른편 제대 위에 안치되어 있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란치아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숨겨 두었다.

1574년, 1586년, 1637년, 1770년과 1886년에 교회는 공식 문서들을 통해 이 기적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16세기 말까지 공식 문서들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미 중세 시대부터 란치아노에서 일어난 기적을 보기 위해 수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메디치 가문의 레오 10세 교황은 1515년에 란치아노를 교황청이 관리하는 교황령 직속 교구로 지정하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수많은 순례자들이 란치아노를 방문하고, 그곳이 교황령 직속 교구로 지정될 수 있었을까?

1636년에 엄청난 비용을 들여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새로운 제단을 제작하였다. 그 당시에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갖지 않는 장소에 이런 제단을 만들지는 않았다. 베네딕토 14세 교황은 1751년 10월 14일에 이곳에서 일어난 기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 새로운 제대를 '선택받은'장소라고 선언하였다.

1754년에 작성된 문서에서는 이 기적이 오래전에 일어났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이 문서를 작성한 사람은 양피지에 희랍어와 라틴어로 쓰인 8세기, 혹은 약간 후대의 것으로 보이는 수사본에 이 기적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두명의 바실리오회 수사들이 이 문서의 원본을 탈취하여 파기한 것으로 보인다.

란치아노의 교구장 페란토니 주교는 이 성유물(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요청하였다. 그래서 1970년 11월 18일에 처음으로 아레초 병원장이자 해부학과 조직학 교수인 오도아르도 라놀리가 시에나 대학교의 루게로 베르텔리 의학 교수와 공동으로 과학적 분석을 시도하였다.

1971년 3월 4일에 리놀리 교수는 분석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이 모습이 놀라웠다.

1) 살은 인간의 '심장 근육 조직'이다.

2) 불그스름한 '액체'를 일반적으로 오류가 거의 없는 크로마토그래피(색층 분석법) 테스트를 하였다. 그 결과 이 '액체'는 인간의 피였으며 혈액형은 AB형이었다.

또한 이 분석 보고서에는 아주 놀라운 사실이 덧붙어져 있다.

"이 살과 피에는 유해를 보존하기 위한 화학적 방부 처리 흔적이 없다. 성유물에서 채취한 피는 정상적인 사람의 피와 동일하였다."

리놀리 교수는 진실을 은폐하려는 어떤 사람이 저지른 행위일 것이라는 전제도 단호히 배격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살'에서 볼 수 있듯 나는 오직 인간의 몸 구조를 잘 아는 해부 전문가만이 속이 빈 장기에서 동일한 형태의 얇은 조각을 잘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73년에 세계 보건 기구 WHO는 리놀리 교수가 제출한 분석 결과를 검증하려 하였다. 새로 구성된 위원회는 이 살과 피를 15개월 동안 총 500번에 걸쳐 분석하였다. 이 검증 결과는 1976년에 미국과 스위스에서 동시에 발표되었다.

유해를 보존(살균, 방부, 건조 방지)하고 미라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단지 유리로 된 유물함에 담아 거의 12세기부터 지금까지 그것(살과 피)이 보존되었다는 것은 도저히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실제로 그것들을 담고 있는 용기는 공기와 빛의 침투를 막지 못할 뿐더러, 식물이나 동물에 기생하는 기생충의 침입도 막지 못한다.

란치아노의 성체는 유례없는 사례이며 과학적으로 설명 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 기적은 기적이 일어난 후부터 1300년간 과학자들에게는 완전히 신비로운 사건으로 남아 있고, 신앙인들에게는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으로 남아 있다.


책 '기적의'의 목차를 언급하며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끌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적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1장. 여러 현상이 나타나는 기적

1) 성유물, 토리노의 수의

2) 발현

3) 놀라운 현상들(성흔, 음식을 먹지 않고 사는 현상(벽곡), 우류 현상, 식량을 늘어나게 하는 기적, 시신이 부패하지 않는 현상)

4) 성인이 직접 체험한 하느님 나라

5) 성인의 무덤에서 일어난 기적

제2장. 예수님과 성체의 기적

1)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2) 성체성사의 기적

(750년 란치아노, 1263년 볼세나, 199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2008년 폴란드의 소쿠카)

제 3장. 우리에게 일어나는 기적

* 기적을 경험한 이들

기적을 행한 사도들

사막의 은수자

세례받을 때 기적을 겪은 클로비스 왕

파리의 성녀 제노베파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

헬프파의 제르트루다 성녀

스웨덴의 비르지타 성녀

잔 다르크

요안나 드 발루아 성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

블레즈 파스칼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성녀

알폰소 마리아 데 라구오리 성인

베니딕토 요셉 라브로 성인

안나 카타리나 에메릭 복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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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할 수 없는 성채
기 에마뉘엘 카리오 지음, 조연희 옮김, 이영제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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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악마는 끊임없이 유혹을 해옵니다.

대죄를 짓게 만들고 인간이 자포자기하게 하고 절망하게 하여서 구원을 못 받게 합니다.

'침략할 수 없는 성채'책은 악마의 유혹을 벗어나가 위한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2851항

악은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한 인격, 사탄, 악령, 하느님께 대항하는 천사를 가리킨다. '마귀'는 하느님의 계획과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된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가로 막는 자이다.

2852항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거짓말쟁이이며 거짓말의 아비"(요한 8,44)인 그는 '사탄이라고도 불리며 온 세상을 유혹하는 자"(묵시 12,9)인데, 그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의 결정적인 패배로 온 인류가 "죄와 죽음의 구렁에서 건져질"것이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1요한 5,18-19)

여러분의 죄를 없애 주시고 잘못을 용서해 주신 주님은 여러분과 싸우는 마귀의 계교에서 여러분을 보호하고 지켜 주시어, 악을 발생시키는 악습을 가진 원수가 여러분을 불시에 공격하지 못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악마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로마 8,31)

2853항

예수께서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자유로이 당신 몸을 죽음에 내맡기시던 그 '시간'에, "이 세상의 권력자"(요한 14,30)에 대한 승리가 단 한번 결정적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는 것이며, 이 세상으 통치자가 "쫓겨나는"것이다. 그는 "여자를 쫓아가지만"(묵시 12,13), 그 여자를 움켜잡지 못한다. 곧, 성령의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새 하와는 죄와 죽음의 부패에서 보호받는다.(평생 동정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천주의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와 승천). 그러자 "용은 그 여자에 대하여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의 남은 자손들과 싸우려고 떠나갔습니다."(묵시 12,17). 그렇기 때문에 성령과 교회는 "오소서, 주 예수님!"(묵시 22,17.20)하고 기도한다. 예수님의 내림은 우리를 악에서 구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Q. 마귀는 존재합니까?

마귀는 존재합니다. 악마는 단순히 무엇인가의 결핍이 아니라 효과적인 행위자이며 비뚤어지게 하는 살아있는 존재이다. 무서운 실재자이며 신비롭고 놀라운 실제자이다.

Q. 마귀는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를 죄악으로 유인합니까?

마귀가 우리를 죄악으로 유인하는 것은 마귀 본래의 흉측한 모습으로 하지 않고, 돈이나 명예나 쾌락이나 온갖 좋아 보이는 모습으로 하고 있습니다. (빛을 가장함, 진짜와 비슷한 무서운 가짜)

'침략할 수 없는 성채' 책은 악의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성채 만들기를 권유합니다.

또한 묵주기도의 힘이 크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추천의 말, 6-10페이지

수많은 사람이 어둠의 지배자인 사탄이나 악마의 공격을 받는다. 고난에 빠진 그들은 구마 사제를 찾아간다. 구마 사제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적 투쟁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악에 맞서 자유를 지키려면 내면의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는 악의 숙명에서 우리를 구해 주셨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이제 이 자유를 스스로 행사해야 한다. 특히 자신의 지나친 열정이나 그 시대 특유의 사상, 또는 눈과 마음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수많은 이미지에 끌려 다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례를 받은 사람이 악에서 자유롭다고 해도 어느 정도 악에 이끌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면의 자유를 단단한 성채로 둘러싸며 튼튼하게 할 필요가 있다. 영적 투쟁이란 선을 분별하고 우리의 의지로 선을 선택하면서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다. 내면의 자유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내면의 자유를 얻기 위해 날마다 투쟁해야 한다.

악은 선을 행하게끔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매력적이고 호소력 있는 모습으로 위장한 채 인간에게 접근한다. 유혹과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인간은 나약해지고 방어 수단은 순식간에 정복당하며 결국 악에 굴복하게 된다. 그러나 사탄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며 자유를 잘못 행사한 적이 많음을 시인해야 한다. 인간의 의지가 사탄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사탄은 절대로 인간의 의지 위에 군림할 수 없다.그러나 인간의 의지가 유혹에 굴복하면 할수록 사탄은 인간의 의지를 점령하게 된다. 죄를 저지르는 습관, 특히 죽을죄를 저지르는 습관은 사탄이 인간에게 힘을 행사하게 만든다.

결국 사탄은 우리를 굳어 버리게 만들 정도의두려움과 유혹을 뻗치며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행동한다. 거짓 선이나 두려움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분별력을 길러야 한다. 적이 활개를 치거나 공포감을 조성하며 접근했을 때는 재빨리 달아날 줄 알아야 한다.

프랑스 퐁투아즈 교구 구마 사제 기 에마뉘엘 카리오 신부는 이 책에서 적의 공격에 저항하여 자유를 지키거나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기 위한 방법을 제안한다. 그러면서 신앙의 힘을 단련하라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격하는 무언가가 오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을 익히라고 권한다. 또한 악에 끌리지 말고 곧바로 하느님을 향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갖추라고 말한다. 인간의 지성을 어둡게 만들고 의지를 약화시키는 죄에 자유가 구속된다고 하더라도 자유는 절대로 완전히 봉쇄되지 않는다.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하기에 인간의 자유는 승리를 이끌 핵심 도구다.

그리스도인에 비유할 수 있는 요새 도시를 침략에서 지켜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적에 저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적이 도시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적을 격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카리오 신부는 요새 도시를 묘사하면서 하느님이 살고 계시는 난공불략의 성이 도시 한복판에 있다고 알려 준다. 적은 피조물에 불과하므로 절대 하느님께 대적할 수 없다.

하느님이 당신의 피조물 인간 한 사람 하나 사람 안에 계시다는 점, 특히 세례받은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계시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전능하신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 투쟁에 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확신을 이유로 오만해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 자유를 책임지지 않는다면 하느님도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이 많은 사람을 일깨우고 영적 투쟁을 위한 용기를 북돋아주기를 바란다.

(기 드 케리멜 / 그로노블-비엔 주교 / 전례와 성사에 관한 사목 주교 위원장/ 국립 구마 사제 사무소장)

들어가면서, 12-13페이지

성채이론은 악마의 특징적인 공격을 받고 있거나,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이론이 아니다. 일상 안에서 유혹을 마주친 적이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이론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자신의 영성 생활을 진지하게 여기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먼저 영적 투쟁의 중추가 되는 장소를 설명하고 이어서 그 주변을 묘사할 것이다. 그리고 성채이론을 자세히 소개할 것이다. 성채 이론은 기도이자 수련이다. 더 적합한 기도로 이끌어 주고 해방으로 안내해 주는 수련인 것이다.

나는 우리를 괴롭히는 대상을 묘사하고 그것을 '적'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적'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우리에게 불행을 일으키는 모든 것을 일컫는다. 적은 과거의 상처와 뿌리 깊은 악덕일 수도 있지만 영적이거나 악마와 관련된 것일 수도 있다. 결연하게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이 주시는 생명의 샘을 마시려면 적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 우리에게 이롭다는 점을 이 방법을 통해 입증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마치면서, 138-142페이지

성채 이론을 적용하면 악마에게 직접 고통받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유혹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 이론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구마 예식에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완전히 박탈당했다고 느낄 수도 있는 우리의 의지와 자유를 되찾아주기 때문이다. 영적인 관계는 대단히 강력할 수 있다. 하지만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도된 인간에게 자유의 부분은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다. 자유가 없다면 사람이 하느님을 향하게 만들 수단은 없다. 성채 이론이 전혀 효과가 없고, 적에게 지나친 두려움을 느끼거나 강하게 매혹되어 하느님의 성 안을 향해 돌아가는 단계를 완수하기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다. 이때는 적의 존재를 나타내는 중요한 징표를 식별해야 하며, 이 일을 맡은 사람은 이 상황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적이 존재한다면 구마 예식을 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강한 유혹이 거듭되는 경우에는 자신의 고유한 도시를 탈환하기 위하여, 다시 말해 도시의 모든 요소 속에서 삶의 회심을 이루기 위하여 성채 이론을 선행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를 주님 앞에 진실되게 하는 것은 삶의 일치다. 건물 하나하나마다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의 자유가 협력하고 있음을 인식할 것이다. 정상에 다다라 조국의 국기를 꽃는 등반가처럼 우리도 건물 하나하나에 우리의 국기를 꽃아야 할 것이다. 인내와 겸손이 필요하겠지만 우리의 영역을 되찾는데 성공한다면 큰 기쁨을 누릴 것이다. 성채 이론은 영적 투쟁보다 선행되는 것으로, 영적 투쟁의 핵심이다. 적에 맞서 정신을 차려야 하며 적에게 등을 돌리는 겸허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1베드 5,8)

사악한 유혹에 휩싸이는 경우에도 자유와 하느님을 향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하면서 기쁨을 되찾을 것이다. 비록 삶은 여전히 '지옥 같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 은수자인 실루안이 남긴 아름다운 문장을 자주 떠올린다. 수도 생활을 하던 아토스 산에서 실루안은 영적으로 심오한 밤을 보냈다. 어느 날, 기도를 드리는데 악마가 그와 그리스도 이콘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이던 실루안은 주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정결한 영으로 당신께 기도드리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당신은 아십니다. 그런데 악마가 방해를 합니다. 악마가 훼방을 그만 두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는 영혼 속에서 대답을 감지했다. "교만한 자는 악마 때문에 늘 고통스러워한다." 그가 물었다. "주님, 제 영혼이 겸손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다시 한번 그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대답이 들렸다. "네 정신이 지옥에 있다고 여기되 절망하지 마라."

우리의 잘못 때문이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지옥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성채 이론은 지옥 같은 상황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둠의 한복판에서도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해 준다. 그분은 우리를 절대로 저버리지 않으신다.

누구나 시편 작가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길 바란다.

"나의 힘, 내 산성 내 성채, 나를 구하시는 분, 내 방패, 내가 피신하는 분, 민족들을 내 밑에 굴복시키시는 분"(시 144,2)

적에게 승리를 거둘 때마다 지극한 감사를 드리게 될 것이며 하느님을 향한 겸허함과 신뢰 속에 강해질 것이다. 사실 이것은 하느님의 투쟁이므로 승리를 거두신 분은 하느님이시다.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은 말했다."수호천사는 우리의 승리를 기록하기 위해 손에 펜을 들고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겸허함은 바로 이것이다. 하느님은 싸우시고 십자가 위에서 승리를 쟁취하셨지만 마치 우리의 승리인 듯 당신의 승리를 맛보게 하신다. "하느님과 함께 우리가 큰일을 이루리라. 그분께서 우리 원수들을 짓밟으시리라."(시편 108,14)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님께서는 몸소 우리의 승리를 축하해 주십니다."라고 썼다.

이 책의 끝에 다다르면서 분명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침략할 수 없는 성채는 하느님 당신이시라는 점이다. 적과 맞대결하면 우리는 모두 잃지만 침약할 수 없는 성채는 예외다. 우리 존재가 결연히 성벽 내부를 향하게 하면서 이 성채에 영원히 시선을 고정하자. 그러면 적에게 저항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성당, 성모님을 바라보자, 110-113페이지

먼저 주술이나 점쟁이를 찾아갔던 사람들은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길을 배워야 한다. 가능한 때에 고해성사, 참회, 미사 참례, 기도, 묵주 기도, 순례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며, 마술, 미신과 연관된 행위와 멀어지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교회는 우리가 하느님과 관게를 맺게 해 주는 '수직적'신비이지만 어느 면에서는 '수평적'신비다. 교회는 형제 공동체이기 때문에다. 악마의공격은 사람들을 얼마나 단절시키는가! 겸허하게 '형제의 길'로 다시 걸어가는 것은 구마 예식의 일종이다. 이 길이 정말로 가진 것 없는 형제들에게 이어지고 애덕으로 무르익는다면 우리는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여기서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를 알려 주겠다. 우리는 교회의 영적 전통이 묵주 기도를 얼마나 구너장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피에트렐치나의 비오 성인은 묵주 기도를 '영적 무기'라고 불렀다. 사실 성모님은 악마가 싫어하는 모든 것을 대변한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던 겸손한 젊은 여인은 천상의 모후가 되셨다. 성모님과 겸손함은 악마의 교만에 승리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하느님을 바라보시지만 악마는 이 지복직관(하느님을 직접 보는 것, 이것이 천국의 행복한 상태-역자 주)을 영원히 저버렸다.

우리는 묵주 기도를 하면서 성모송을 바칠 때마다 가브리엘 대천사의 말을 반복한다. 이 말은 루카 복음사가가 전하는 '주님 탄생 예고'에 나온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대천사는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한' 이 젊은 여인을 찬양한다. 우리가 묵주 기도에서 이 구절을 수없이 반복하는 소리를 들으면 악마는 견딜 수 없어 한다. 악마의 공격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묵주 기도가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굳이 입증하지 않아도 된다. 성채 이론에서 성모님의 집은 하느님의 궁전과 인접해 있다. 하느님께 기도드릴 때 흠숭 기도를 바친 다음, 천주의 성모님을 바라보는 것도 가능하다. 베르나르도 성인이 성모님께 드린 아름다운 기도문 중 '성채 이론'을 적용한 구절에 주목하자 베르나르도 성인은 기도하는 이에게 외부의 위험에 맞서 성모님을 바라보라고 권유한다.

당신 안에 유혹의 바람이 일고,

당신이 시련의 암초 속을 항해한다면

이 별을 바라보십시오.

마리아를 부르십시오.

.........

당신지 저지른 터무니없는 죄악 때문에 불안하고

당신의 추한 양심 때문에 혼란스럽고

심판의 두려움으로 몸서리 치져

슬픔의 심연으로,

절망의 나락으로 빠지기 시작한다면

마리아를 생각하십시오.

위험, 불안, 불확실함 속에서

마리아를 생각하십시오.

마리아를 부르십시오.

한 눈에 보는 성채 이론 9단계, 144-145페이지

1단계

상상해 보세요.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광활한 평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평야 한복판에 도시(또는 마을)가 보입니다. 까마득히 높은 성벽이 도시를 둘러쌌습니다. 도시 가운데 작은 언덕이 있고 그 언덕 꼭대기에 견고한 성 한 채가 우뚝 서 있습니다.

2단계

상상해 보세요. 당신은 성벽 위에서 지평선을 바라봅니다. 당신은 감시인, 파수꾼, 도시를 수호하는 병사입니다.

3단계

이 도시를 바라보세요. 이곳이 당신의 삶입니다!

4단계

하느님의 성을 관상하세요. 성벽 안 가운데 살아 있는 생명의 샘에 있습니다. 성모님의 집과 우리의 영적 영혼이 여기 있습니다.

5단계

적이 당신을 공격합니다. 저 멀리서 위협적으로 다가옵니다.

6단계

승리하려면 곧장 적에게 등을 돌리세요! 그리고 하느님의 성을 향해 당장 돌아가세요

7단계

기도하세요! 하느님의 성을 향하고 주님께 기도를 바치세요. 흠숭 기도를 바치고 하느님께 청을 드리세요.

"저의 하느님, 적이 저를 공격하고 있음을 저는 느끼고 있나이다. 주님, 저는 더이 상 견딜 수 없으니, 저를 도와주러 오소서. 저를 구해 주소서. 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 주시고 적을 밀쳐 주소서!"

8단계

적이 벌어진 틈 사이로 들어왔다면 다시 기도하세요.

"저의 하느님, 적이 들어오는 것이 보입니다. 당신께 애원하오니, 적을 멀리 쫓아 주소서"

9단계

하느님께 온 마음을 다해 감사드리세요!

보호 기도, 148-150페이지

하루 일과 중에 영적 투쟁을 지속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믿음을 갖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사랑으로 흘리신 피의 보호 아래 우리 자신, 가족, 재산을 두자. 이는 일종의 방패와 같다.

아버지, 비천한 죄인이 제가 여기 당신 앞에 왔나이다.

세례로 저는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나이다.

아버지와 형제를 사랑하고

적이 제게 놓은 함정에 빠지고

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제게 필요한 성령의 모든 선물을

아버지께 청하나이다.

오늘 낮(오늘 밤)의 영적 투쟁에서

당신 아드님 예수님의 피로 저를 보호하소서.

제 자신, 저희 가족(식구들 이름을 말한다),

저의 재산, 저의 일(저의 회사)을

예수님이 저희를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귀중한 피의 보호 아래 두나이다.

아버지, 이렇게 저를 보호해 주심에 감사하나이다.

아멘.

거룩하신 하느님, 강인하신 하느님,

불멸의 하느님,

저희의 나약함을 바라보소서.

저희를 보호하기 위하여

전능하신 당신의 손을 저희에게 뻗어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주님, 당신께 애원하니

이 집에 와 주시고,

적의 모든 계략을 이 집에서 멀리 물리치소서

주님의 거룩한 천사들이

평화롭게 저희를 지킬 수 있도록

이 집에 와서 살게 하소서.

주님의 축복이 저희에게 영원히 머물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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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마음을 치유하는 법
홍성남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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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면서 사람들로 인해 상처가 생겼다면 치유할 수 있는 방법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나온 '혼자서 마음을 치유하는 법'을 읽으신다면 치유하는 방법에 대해서 나와 있습니다.

내 안의 어린아이에게 손 내밀기(96p)

우리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아이가 받았던 상처와 기억이 성인이 된 지금도 자꾸 발목을 붙잡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떨쳐 버리고 과거의 불우한 기억과 마주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상처 부위에 흙을 문질러 더 악화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내재아는 회피할수록 더욱 집요하게 따라 붙는다.

"그때 많이 힘들었지? 괜찮아. 이제 더 이상 너를 위협하는 건 없어. 너는 행복해질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과거의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보자. 내 마음의 연약함을 수용하고 받아들인다면, 이 내재아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러면서 천천히 마음의 상처도 아물기 시작하나.

불행에 맞서는 힘을 기르세요(100p)

이처럼 삶에서도 많은 풍파를 겪은 사람이 자기 인생을 잘 개척해 나간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삶에서 참담한 결과를 얻었을 때 자기 자신을 심하게 질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반응은 실패나 불행에서 비롯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스스로 우울의 늪에 점점 더 빠져드는 것은 물론이고 타인의 동정을 얻고자 하는 경향에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삶의 긍정적인 측면을 모두 동원해서 부정적인 사건 하나가 내 감정을 물들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비관적인 생각에 저항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더 긍정적인 눈으로 이 상황을 바라볼 수 없는지 숙고해 보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

기대는 사람을 춤추게 하지요.(110p)

기대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기대를 가져줄수록 그에 알맞은 몸과 마음가짐을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대는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원천이라 할 수 있다. 관심과 칭찬을 동반한 기대는 더욱더 효과가 좋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주는 칭찬을 먹고 자란다. 간혹 아이에게 칭찬을 해 주면 버릇이 나빠질 거라 생각하여 칭찬에 인색한 부모들이 있다. 그러나 성장 중인 아이들에게 사소한 부분이라도 잘한 것을 찾아내어 "잘했어!", "엄마아빠는 네가 자랑스러워.'같은 말을 건네면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 바로 그런 부분들이 쌓이면 부모와의 관계뿐 아니라 정서 발달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아이들은 긍정적이고 활달하며 자기표현에도 능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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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는 한 줄 가톨릭 : YOUCAT 달력 (스프링)
YOUCAT 재단 지음, 김선태 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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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출판사에서 기존의 YOUCAT를 바탕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한 줄 가톨릭(YOUCAT 교리 달력)을 출간했습니다.


YOUCAT책은 천주교 신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가질만한 궁금증을 답한 책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한 줄 가톨릭(YOUCAT 교리달력)달력은 365일의 질문에 365개의 대답을 해줍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궁금했던 점이나,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가 있어서 가톨릭에 대한 궁금한 점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

YOUCAT교리달력을 책상 위에 두고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면서 하루를 비추일만한 지혜와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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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에게 하늘 나라를 묻다 - 예수님의 비유에서 삶의 답을 찾다
전원 지음 / 생활성서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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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나라를 소개할 때 어떤 곳이라고 정확하게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대신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에게 하늘 나라를 묻다'책에서는 15개의 예수님의 비유 말씀과 전원 신부님의 글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천국으로, 천국에서는 하느님을 직접 볼 수 있다고 하죠.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 13,12)

하늘나라는 믿는 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곳이 아닐까요? 지옥에 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테니까 말이에요.


"만일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실 때 왜 '비유'로 말씀하셨느냐고 묻는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정답 없는 우리 인생의 답을 주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대답하실 것 같습니다. 우리 삶의 깊은 곳, 그 진리의 세계에 가닿을 수 있는 것은 어떤 논리나 신학적인 정의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쉽게 이해되고 자유로운 상상력과 깨달음으로만 가까이 가닿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이렇게 우리가 항상 마주하며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것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매 순간이 소중한 하늘 나라의 신비로 충만해 있다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비유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씀이지만, 묵상을 하면 할수록 마치 금맥을 캐 나가듯 그 속에 숨겨진 보물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곧 우리가 매일 부딪히며 살아가는 '삶의 자리'가 하늘나라이 축복과 은총이 숨겨져 있는 소중한 장소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책 4-7페이지)


루카 10장 29-37절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놓고 가 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들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난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유다인에게 도저히 이웃이 될 수 없는 사마리아인의 착한 행동을 내세워 진정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을 통해 인종, 국경, 종교, 성별 등 어떤 신분상의 이유로도 배제될 수 없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곧 우리의 이웃이라는 대답을 이끌어 내십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분의 삶을 기억합니다. 그분들에게는 국경도, 인종도, 종교도, 그리고 어떤 처지의 사람도 그들을 막는 벽이 될 수 없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처럼 오로지 사랑만이 모든 벽과 경계를 허물고 이웃이 되게 한다는 예수님 비유의 가르침을 그분들은 온전히 보여 주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이웃에게 눈을 감으면 하느님도 볼 수 없습니다."라고 했지요. 여러 사교 모임에 참석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도 단 한 사람의 이웃도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 몇 사람을 만나며 살아도 모두에게 이웃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유 속의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단 한 사람에게 바친 사랑일지라도, 참된 사랑은 모든이에게 이웃이 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모든 벽과 경계를 허물고 이웃이 되게 하는 그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이미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은 우리 안에 그런 이웃이 되어 주는 사랑이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57-58p)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자비이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았기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능력을 닮았습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사람이 자비를 베푼 것이 중요하지 그가 사제인지 레위인인지 사마리아인인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는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닮아서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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