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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1월
평점 :
[서평]<여행 준비의 기술>_박세영 지음_글항아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추천 보증심사지침' 개정안에 따라 명확하게 경제적 이해관계를 밝힙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특이하다. 여행책도 아닌 것이 여행 준비의 기술이라니. 사진도 한 장 없다. 그런데 기발하고 재미있다. 글을 정갈하면서도 친근하게 잘 쓰셨다. 요즘 핫하게 쓰이는 키워드 <플렉스>를 얘기하질 않나. 마치 친한 형이 얘기해 주는 듯한 느낌의 젊음이 느껴진다. '과연 여행 준비가 취미인 사람이 지구상에 있을까' 싶은데 앞으로는 작가님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생겨날 것 같다. 나는 사실 여행을 많이 다니질 못했다. 해외라고는 예전에 다니던 외국계 회사에서 패키지여행으로 필리핀 마닐라를 2박 4일간 다녀온 것이 끝이었다. 뭐랄까. 나는 해외여행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내 실천력과 의지력의 문제라고 해두자. 그리고 일단 영어울렁증에 대한 두려움인데 외국인 친구들을 꽤나 많이 만나왔음에도 영어는 늘지 않았다. 안 해서. 그리고 해외 자유여행에 대한 두려움과 패키지여행 비용에 대한 부담감도 포함이 된다. 일본은 방사능 오염 문제로 기피했다. 이러다 늙어 죽을 때까지 못 나갈 것 같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판데믹 코로나19>로 여행은 꿈만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이 책의 내용에도 코로나19로 인한 여행 제한에 대해 얘기를 한다. 짧게.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이 더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여행 준비에 관한 책이니까. '어디까지나 <플렉스>겠지.' 싶었다. 여행을 다녀오면 누구나 경험하는 아쉬움과 후유증이 있는데 이걸 조금 틀어서 여행 준비만 하면 그런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실 뭔가를 성취하고 나서는 금방 허무해지는데 그 과정은 정말 설레지 않던가. 그런 기분이다. 작가님은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보다도 더 사실에 근접하게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핫플레이스가 아니라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은밀하고도 매력적인 장소들을 알 고 있다. 그 방법이 궁금했는데 책을 찬찬히 읽어가며 보니 구글맵이란 것을 이용해 별을 찍어 놓는다고 했다. 거기에는 찾아갔던 사람들의 후기도 적혀 있나 보다. 그리고 음식점이나 카페들도 별을 찍을 수 있다고 했다. 사실 나는 직접 해본 적도 없고 구글맵에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지만 이번에 책을 읽고 시도해볼 생각이다. 여행을 못 가는 현시점에서 재미있는 게임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여러 개 찍어 놓고 저장해 놓은 걸 해외 출장을 간다거나 아내를 따라 외국을 갔을 때 참고하면 훨씬 다양한 추억들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사람마다 여행에 관한 성향은 다르지만 기존의 것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마음가짐이 나랑 비슷했다. 뻔한 건 지겹기도 했고 보다 더 특별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작가님은 사람들은 보통 해외여행을 갈 때 도보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지만 가능하다면 차량을 이용해서 다녀보라고 한다. 방법은 렌터카를 대여받는 것이었다. 장단점이 있긴 한데 장점이 더 많다고 했다. 마치 자유여행과 패키지여행의 차이처럼 느껴졌다. 여행의 속도를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특히 자유롭고 행동반경이 그만큼 더 넓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잘 모르는 근사한 곳을 갈 수 있다. 일반적인 대중교통으로는 제약이 있는 곳도 차량이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현재 장롱 면허라 불가능하지만 나중에 꼭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위험성도 있었다. 일단 초행길을 헤쳐나가야 하는 부담감이 있는데, 아무리 미리 시뮬레이션을 하고 모의 운전을 해보며 공부를 해도 위험성이 없다는 걸 보장할 수 없다. 거기다 일본같이 운전자석이 바뀐 경우는 거의 대부분 사고가 날 수 있다고 했다. 신중에 신중이라지만. 사실 내 동생이 일본과 이탈리아 여행을 가서 차량 운전을 했는데 다행히 사고는 없었다. 새삼 대단했다. 부러웠고.
이 책에는 여행 준비의 기술 위주로 수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님이 어릴 적부터 걸어온 인생을 군더더기 없이 얘기하면서 여행을 좋아하게 된 계기와 지금은 유명 감독이 된 대학 동기들에 관한 얘기 그리고 첫 해외여행을 가기까지의 쉽지 않았던 삶의 경험들을 쿨하게 얘기해 주신다. 놀라운 건 작가님의 직업이 의사이자 저널리스트셨고 요리까지 섭렵한 분이라는 것. 의사가 되는 것도 어려운데 요리로 책을 내어 유명세를 치르셨고 거기에 힘입어 티브이 방송 출연 섭외도 받으셨다고 했다. 만약 그 길로 나갔다면 티브이 방송인으로서 국민 모두가 아는 분이 되셨을 것 같은데. 자기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거절하셨다고 했다. 한 프로그램은 신동엽 씨가 MC를 했던 것이었는데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법한 유명한 프로였다. 결국 자본주의 원리를 따르지 않고 소신껏 자기 인생을 살아간 작가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튜브 방송은 하신다. 재미있는 일이지만 사람 인생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오늘의 내가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미슐랭 이란 것이 어떤 기관으로 부티 별 평가를 받고 유명한 식당을 지칭하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작가님은 미슐랭으로부터 상위 평가를 받은 레스토랑을 가기 위해 컴퓨터 앞에서 예약을 성공하기까지 치열한 경쟁을 했다고 했다. 사실 그 정도로 인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노마'라는 레스토랑이 그중 하나였는데 찰나의 판단 착오로 실패를 해버렸고 나중에 대기자 메일을 받았지만 이미 다른 이들이 신청을 해버려서 또 실패를 하셨다. 그래서 비슷한 인기의 다른 레스토랑을 신청했는데 그곳도 경쟁이 치열하긴 마찬가지였다. 메이저리그 시즌 오프 야구표를 끊는 것만큼 이랬던가. 그런데 놀라운 건 1인당 수십만 원의 식비를 감당하고서라도 가는 사람들의 그 열정이 대단했다. 그런 레스토랑이 일반적인 곳들과 달랐던 건 식사 손님에게 셰프가 직접 찾아와서 음식에 대해 친절히 설명을 하며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재료들은 어떻게 준비가 되는지 알려주었고 손님들 모두에게 조리실을 직접 구경시켜 준다. 와인 보관소, 치즈 저장소 등을 안내해 주었다. 한 끼를 해결하는 단순함에서 끝나지 않고, 식사 속에 정겨움과 여유로움 프로페셔널함이 있기에 마음적으로도 풍성하면서 오감을 자극하는 매력. 그리고 추억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훌륭했다. 이 정도라면 나를 위한 위대한 사치라고 해도 될 것 같았다.
작가님은 여행 속에 독서의 시간도 꾸준히 갖고 계셨다. 비단 여행책뿐만 아니라 경제, 경영, 예술을 아우르고 미스티리 스릴러 소설책도 좋아하셨다. 덕분에 훌륭한 작가도 알게 되었고 읽고 싶은 소설책들이 또 생겼다. 재미있는 건 작가님이 특히 주목하셨던 것이 소설 속에 생생히 묘사되는 여행지의 모습들이었다는 것이었다. 일본 오키나와의 어느 섬에는 미스티리한 해저 해구가 있고, 해외 어디 지역은 어떤 것이 특색 있고 등 그것들을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여행 계획 후보에 올려놓았다. 사실 나는 유럽은 고사하고 일본도 안 가봐서 소설 속에 나오는 지역을 공감을 할 순 없었지만 검색을 통해서 어떤 곳인지 알아보는 습관이 있었다. 아쉬운 건 당연히 간접 체험의 한계였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이것이 곳 여행 준비의 기술인 것이고, 아름다운 장소를 알았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의 뇌가 만들어 낸 환상적인 묘사는 기억될 수 있었다.
마음 한편이 짠했던 부분은 작가님의 부모님에 대한 언급이셨다. 결론은 엄마, 아빠 살아계실 때 잘하라는 것인데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효도 관광을 보내드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보내드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라는 것이었다. 자기 몸 가누기도 힘든 부모님 그렇게 패키지여행을 보낸들 관광은 고사하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벅차서 지치실 것이다. 거기다 자식 돈 그렇게 쓰게 하는 부모님은 그리 좋아하시지도 않을 것 같다. 말은 차라리 현금이 낫다고 하겠지만. 솔직히 점점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이랑 살갑게 지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함께 간다면 부모님이 겉으론 싫어하실지 몰라도 속마음은 아닐 것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부모님도 점점 기운이 없어지시고 예전의 강골이던 모습이 쇠약해져가는 건 마음 아프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슬픔이 밀려온다. 작가님은 그렇게 부모님과 여수로 여행을 다녀온 뒤 몇 개월 뒤에 아버지는 영원의 여행을 떠나셨다고 했다.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 계시는 부모님께 잘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은 더 작은 분량이었는데 작가님은 특별 서비스 편을 썼다고 했다. 추천 여행지를 소개해 줬는데 흔한 장소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여행지가 아니다 보니 몸은 좀 피곤할 수 있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장소를 알려준다. 여전히 나는 상상만으로만 생각해야 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시도를 해볼 것이다.
<여행 준비의 기술> 은 내가 정말 유익했고 재미있게 읽은 책이 되었다. 작가님이 글을 참 잘 쓰셨다. 지루함도 없었고 일반적인 여행책이 아니어서 특색 있었고.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책이 잘 팔렸으면 했다. 그만큼 가치가 있기에. 사진 없는 책이지만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력의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p5
여행이 취미인 사람은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부터 우울해지지만, 여행 준비가 취미인 사람은 하나의 여행이 끝나면 그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p27
지금은 '해외여행 자유화'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게 들리지만, 우리 국민이 자유롭게 외국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1989년 1월 1일 이후다. 시행은 1989년부터이지만 결정은 그 전해, 서울 올림픽 무렵에 내려졌다.
p34
이탈리아 <아말피>는 007 영화의 촬영지로 사용된 적은 없지만, 1999년에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죽기 직전에 꼭 가봐야 할 곳' 목록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던, 세계적인 명소다.(초보 운전자를 제외한 모든 분께 강추다.)
p36
여행 준비의 가장 큰 장점은 여행이 풍성해지는 게 아니라 추억이 풍성해지는 거다. 여행을 앞두고 그 나라말을 조금만 공부하면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메뉴판을 읽고 원하는 걸 주문하는데 필요한 단어들을 익히는 일은 특히 중요하다.
p37
힘들어도 운동을 하고 등산을 하는 것처럼, 여행을 준비하며 그 나라말을 공부하는 것은 여행에 필요한 근력을 키우는 좋은 운동이다.
p58
인생에서 확실한 한 가지, 언젠가는 아주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늦기 전에 부모님과'함께' 가는 여행을 한 번이라도 더 다녀오시길.
p59
하지만 적어도 내 생각으론, 여행 준비는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있는 행위이며, 여러 장점이 있다.
그중 하나는'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있게 해준다.'는 것.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뭘 잘하고 못하는지,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인지, 어떤 순간에 가장 큰 행복을 느끼고 어떤 순간에 가장 좌절하는지, 결국 나의 가치관은 무엇이며 인생관은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파악하는 건 인생을 좀 더 알차게 보내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의 본모습을 잘 알지 못한다.
p63
그러니까 여행 준비란 자신에게 딱 맞는, 자신이 가장 만족할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아내는 작업인 동시에 자신에게 별다른 기쁨을 주지 못할 여행지를 걸러내는 작업이다.
p64
우선 시그널 뮤직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뛰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가 있다. 작곡가이자 오카리나 연주자인 한태주 님의 <물놀이>라는 곡인데, 나는 우울할 때면 이 음악을 듣는다. 그러면 풀밭을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어린 시절의 나로 되돌아가는 듯한 느낌도 받고, 과거 즐거웠던 여행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며, 다음번 여행 날짜가 돌아올 때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p65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최대 장점은 매우 유명한 여행지부터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까지, 선진국의 대도시부터 개발도상국의 시골 마을까지, 화려한 대규모 축제부터 소박한 동네잔치까지, 다뤄지는 내용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것이다. 여행지의 성격이나 PD의 개성에 따라 여행 스타일도 천차만별이다. 전부는 아닌 듯하지만 꽤 많은 회차가 KBS 홈페이지나 유튜브에 올라 있기 때문에 다시 보기도 쉽다. 워낙 편수가 많다 보니 웬만한 장소는 다 있다. 내가 모르고 있던 '좋은 곳' 이 없는지 찾고 싶을 때나 내가 관심이 가는 장소가 정말 내 취향인지를 확인하고 싶을 때, '걸세' 보다 더 유용한 정보원은 흔하지 않다.
p79
여행 준비에 있어서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과 지겨운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에 더 큰 비중을 둘 것인가다. 또한 이와 함께 고려해야 할 사항이'여행을 평소에 얼마나 다르게 꾸밀 것인가' 하는 점이다.
p92
욕심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지만, 희망은 최대한 많이 품어야 할 덕목이다. 가장 무서운 것이 희망을 잃어버리는 일이라 하지 않았던가. 나이를 먹어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나를 더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서 스스로 행하는 것은 아직 청춘이라는 증거다.
p167
독서는 여행 준비를 자극하고, 여행 준비는 독서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독서는 여행을 더 즐겁게 만들고, 여행은 독서를 더 즐겁게 만든다. 이런 게 바로 '선순환'의 좋은 예가 아닐까.
p203
유명한 관광지라고 해서 꼭 가야 한다는 법이 있나. 게다가 갈까 말까 망설여지는 그 유명 관광지는 알고 보면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곳도 아니다. 평소에는 존재도 몰랐다가 가이드북에서 처음 발견한 장소에 집착할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가이드북에 별표 다섯 개 붙어 있는 곳이라고 다 가는 것도 아니지 않나. 어디 가서 자랑할 수도 없고 사진 말고는 남는 것도 없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유명 관광지보다는 내 마음이 왠지 끌리는 곳, 그곳을 선택했을 때 기억에 훨씬 더 오래 남는다. 좋은 곳이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곳이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