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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무인도
박해수 지음, 영서 그림 / 토닥스토리 / 2025년 7월
평점 :
제목과 표지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나의 완벽한 무인도>라는 제목과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홀로 앉아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담은 표지를 보니 왠지 마음이 일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띠지 속 문장 "나로 살고 싶어서, 홀로 그곳으로 향했다"라는 문장은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과연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는 자발적인 고립, 사회의 소음에서 벗어나 '나'라는 존재에만 집중하는 삶, 그런 상상 속 세계를 현실로 가져와 진정성 있는 서사로 담고 있다. 그렇게 이 책은 단순한 힐링 소설을 넘어 매일 마주하는 하루의 압박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선사한다. 주인공 차지안은 일상의 소모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다가 불쑥 무임도를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바닷가 마을에서의 조력자들과 만남, 스스로의 손으로 이루어낸 자급자족의 삶과 계절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여정의 이야기가 매우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삼시세끼>의 따뜻한 식탁을 떠올리게 하는 요리 장면과 <리틀 포레스트>처럼 사계절의 변화를 온전하게 느끼게 하는 풍경의 묘사는 이 책 자체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게 만들며 다정한 쉼표의 시간을 선사한다.
책의 시작은 주인공 차지안이 저녁거리를 찾아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집 앞에 묻어둔 항아리에서 김치를 꺼내 돌아가던 길,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 지안은 노을에 이끌려 섬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그곳에서 마주한 주홍빛 하늘과 갈매기들의 날갯짓, 파도의 움직임은 자연이 주는 위안과 경이로움을 고스란히 전한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지안은 수첩을 펼쳐 하루를 정리하며 그동안의 삶을 돌아본다. 무인도에 정착하게 된 계기와, 생선과 해초, 나무 등을 채취해 스스로 자립해온 기록들이 담겨 있다. 과거 도시에선 당연했던 휴대폰, 이어폰, 태블릿 같은 문명의 기기들은 이제 가방 속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바다를 오가며 유리 거울로 안부를 전하는 도문항의 ‘현주 언니’일 뿐이다. 혼자 살아가는 무인도 생활은 고독하지만 그 고요 속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때때로 찾아오는 깊은 행복은 이곳 삶의 진정한 가치이다. 도시의 소음은 더 이상 기억 속에 머무르지 않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어느덧 주인공에게 가장 잘 맞는 옷처럼 다가온다. 지안이 홀로 무인도에서 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인도의 삶에 대한 충만한 그녀의 행복들이 문득 지난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처음 무인도에 방치된 집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지안은 현주 언니의 도움으로 혼자 무인도에서 살게 된다. 도시에서 상처와 피로를 안고 온 그녀는 섬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립의 삶을 시작한다. 가장 먼저 지안은 바다에 들어가 물질을 배우며 해산물을 채취한다. 특히 문어와의 첫 만남과 교감하는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 깊다. 무릎에서 피가 나는 지안을 바라보던 문어가 자신의 다리로 지안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장면은 이 책을 더욱 따스하게 만든다. 그리고 밤이 되면 지안은 바닷가를 거닐며 꼬마물떼새의 울음, 파도 소리, 모래의 감촉에 귀를 기울인다. 고요한 자연의 소리는 도시의 소음과 달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하는 위로가 된다.
지안은 점차 섬에 익숙해지며 텃밭을 일구고 제철 식재료로 요리하며 사계절의 흐름에 맞춰 살아간다. 계절의 변화는 배경을 넘어 지안의 감정과 연결되어 봄의 따스함, 여름의 흔들림, 가을의 고요, 겨울의 냉기 속에서 내면의 힘과 평온을 쌓아간다. 처음에는 불안에 휩싸였던 지안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과 교감하며 점차 내면의 힘을 되찾고,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게 된다.
책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지안이 스스로 마련해 먹는 음식의 과정이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깊은 감정의 울림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도시에서는 대충 때우기 바빴던 끼니가 무인도에서는 하루의 중심이자 가장 진지한 일이 된다.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손질하고, 요리하는 모든 과정은 오롯이 자신을 위해 시간을 들이는 행위이며 그것이 곧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치유의 시간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 나오는 지안이 음식을 장만하는 모든 장면들은 시선을 잡아 끈다. 특히 기억에 남은 지안이 우연히 낚은 송어를 훈제 요리로 완성해가는 장면은 그 상징적인 순간이라고 본다. 지안은 짙은 연기와 힘겨운 불 조절 속에서도 몇 시간을 들여 송어를 정성껏 요리한다. 그리고 그날 밤, 가족이 등장하는 따뜻한 꿈을 꾼다. 먹는다는 행위가 기억과 감정, 회복을 불러오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읽는 내내 가장 공감되었던 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나 역시 음식에 아주 많은 공을 들이는 사람이라 지안의 그 마음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누군가를 위한 식사가 아니라 지안의 자신만을 위해 공을 들이는 식사는 지안의 힘들었던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본다. 그렇게 이 책은 자급자족의 삶을 담담히 그려내면서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의 층위와 자기 회복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 중심이 되는 지안의 따뜻한 식사들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도 함께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듯하다.
이 책은 자발적인 고립을 통해 진짜 ‘나’와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고 있다. 주인공 지안은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나 무인도에 홀로 정착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을 시작한다. 낯선 섬에서의 생활은 단순한 생존이 아닌 삶의 리듬을 다시 세우고 자신을 돌보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텃밭을 가꾸고 바다에 나가 해산물을 채취하고, 계절에 따라 식탁을 차리며 지안은 자연과 교감하는 고요한 일상 속에서 점차 단단해진다. 이 책의 핵심은 고독이 단절이 아니라 회복과 치유, 성장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스스로를 위한 하루를 묵묵히 쌓아가며, 지안은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경험에서 깊은 자긍심을 느낀다. 그리고 지안은 처음으로 자신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다정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에 결국, 이 책은 나로 살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만든다. 계절의 빛과 소리, 혼자 차리는 식사, 손끝에서 다시 세워지는 삶의 감각들이 독자에게도 삶의 속도를 다시 정리할 용기와 스스로를 돌보는 방식을 조용히 생각하게 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