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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삶을 위한 수학 - 인생의 거의 모든 문제를 푸는 네 가지 수학적 사고법
데이비드 섬프터 지음, 고현석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인생의 거의 모든 문제를 푸는 네 가지 수학적 사고법'이라는 소제목에 대한 궁금증으로 읽게 된 책이다. 우리가 흔히 수학이라고 하면 연상되는 단순한 계산이나 공식이 아니라, 수학이 실제 삶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알려주는 책인 듯 하여 더욱 기대가 생겼다. 이 책은 수학이 단순한 학문아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설계하는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통계적 사고, 상호작용적 사고, 카오스적 사고, 복잡계적 사고라는 네 가지 수학적 접근법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새롭고 논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이끈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어떤 선택이 더 나은지를 판단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며, 인간관계나 사회적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고자 할 때, 수학이 놀라운 정도로 실용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음을 이 책은 생생한 사례와 흥미로운 수학자의 이야기로 증명해 보이고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제일 처음 마주하는 '들여가며'에서는 이 책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 방향성과 수학적 사고의 실용적 가치를 분명히 제시한다. 저자는 수학이 이론적 학문을 넘어 삶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 도구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건강, 인간관계, 불확실한 미래, 복잡한 사회 시스템 등 다양한 문제를 끊임없이 마주하지만, 정작 이를 어떻게 사고하고 이해할지에 대한 성찰은 부족하다. 저자는 이러한 일상 속 고민에 수학이 어떤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는지를 네 가지 사고법인 통계적, 상호작용적, 카오스적, 복잡계적 사고를 통해 구체적으로 풀어간다.
* 통계적 사고는 숫자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건강 정보나 광고 속 통계를 올바르게 읽는 힘을 기른다.
* 상호작용적 사고는 사회적 관계와 집단 내 갈등, 행동 전파 등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여 인간관계를 더 건강하게 조율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카오스적 사고는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단계적으로 문제를 좁혀가는 추론과 전략적 질문의 기술을 설명한다.
* 복잡계적 사고는 다양한 요소가 얽힌 문제를 단순한 규칙으로 해석하고,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본질을 통찰하는 능력을 키운다.
이 네 가지 사고법은 단지 이론에 머무르지 않는다. 저자는 셀룰러 오토마타라는 수학 모델을 바탕으로, 일상의 문제를 재구성하고 구조화해 더 나은 해결로 이끄는 수단으로 수학을 활용한다. 특히 그는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렀던 스티븐 울프럼의 분류를 확장해, 우리가 현실을 사고하고 판단하는 방식에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다양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우리는 매일같이 수많은 숫자와 통계를 접한다. 건강을 위해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지, 시험공부를 어떻게 해야 효율적인지, 혹은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까지, 우리는 과학적 권고와 통계 수치를 근거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듯,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보다 그 숫자가 어디서, 어떻게, 왜 나왔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다. 책의 첫 번째 핵심 사고법인 통계적 사고는 바로 이 점을 짚는다. 저자는 단순히 숫자와 데이터를 믿기보다, 그 이면의 맥락을 파악하고 통계의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저지방'이나 '저탄수화물'이라는 마케팅 문구는 소비자에게 건강에 좋다는 인상을 주지만, 이 제품이 고도로 가공된 식품이라면 실질적인 이점은 없을 수 있다. 이런 잘못된 판단을 피하려면 통계적 사고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통계는 인과관계를 설명해주는 듯 보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단지 상관관계일 뿐이다. 우리가 평균에 기반한 데이터를 마치 개별 사례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진실처럼 받아들일 때, 오히려 잘못된 결정을 내릴 위험이 커진다. '통계는 진실을 말할 수 있지만, 항상 진실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통찰이 이 장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다. 저자는 이러한 개념을 딱딱한 이론이 아니라, 실생활의 구체적인 사례인 다이어트 광고, 건강 기사, 국가별 행복 점수를 통해 쉽고 현실감 있게 설명한다. 단지 수학적 지식이 아닌,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를 기르는 데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통계적 사고는 단순한 계산을 넘어 더 나은 삶을 위한 필수 도구로 자리 잡는다. 무분별한 정보가 넘치는 시대,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정보를 걸러내는 안목이다. 이 책의 통계적 사고법은 그런 안목을 기르기 위한 훌륭한 출발점이 되어준다.
통계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이 책에서 R.A. 피셔가 소개되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피셔는 현대 통계학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실험 설계와 무작위화 원리, 분산분석(ANOVA), 최대우도법, 그리고 가설 검정과 p-value 체계를 정립한 혁신적인 과학자였다. 그의 업적은 단순한 계산 기술을 넘어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엄격하고 체계적인 과학적 추론 방법론을 만들어냈으며, 이는 농업 실험부터 의학 임상시험, 진화 생물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유전학과 다윈의 진화론을 수학적으로 통합해 현대 집단유전학의 토대를 마련한 점은,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은 공로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피셔의 눈부신 과학적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그가 과학을 우생학적 신념과 사회 정책에 연결하려 했던 한계와 위험성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 데 있다. 책은 피셔가 20세기 초 영국 우생학 운동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으며, 사회 계층 간 출산율 차이를 두고 상류층의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던 점, 그리고 이를 정책화하기 위해 역진적 가족수당 제도를 제안한 사실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피셔는 『자연 선택의 유전적 이론』에서, 상류층의 출산율 저하가 문명의 쇠퇴를 가져온다고 보고, 부유한 계층일수록 더 많은 가족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과학적 데이터를 사회적 가치 판단에 연결시키는 대표적인 사례로, 통계와 유전학이라는 권위 있는 도구가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오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피셔는 우생학회의 창립 멤버로서, 유전적 결함이 있다고 간주된 이들에 대해 자발적 불임수술을 지지하는 등, 과학의 이름 아래 인권과 윤리를 침해할 수 있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책은 이러한 행보를 통해, 숫자와 데이터가 언제나 진실을 말하지 않으며, 과학적 추론조차도 윤리적 성찰 없이 사용될 때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결국 이 책은 피셔의 사례를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과학은 도구일 뿐이며, 그것을 어떻게, 누구를 위해 사용하는지가 진정한 책임의 문제임을 상기시킨다. 비판적 사고 없이 통계적 수치를 맹신하거나, 과학의 객관성에 기대어 사회적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통찰은 오늘날 더욱 유의미하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나머지 세 가지 수학적 사고법인 상호작용적, 카오스적, 복잡계적 사고법은 각각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인간관계,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인식 틀을 제공한다. 상호작용적 사고법은 집단 안에서 발생하는 동적 패턴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힘을 설명하고, 카오스적 사고법은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그리고 복잡계적 사고법은 이 모든 사고방식을 통합하면서도, 우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복잡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단순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통찰을 전한다.
그리고 책에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수학자들의 실제 이야기도 함께 소개된다. 로트카는 자연의 순환 속 상호작용을, 해밀턴은 복잡한 우주 프로그램을 단순한 논리로 해결했으며, 콜모고로프는 수학의 복잡도 속에서 삶의 가치를 통찰했다. 이들이 다뤘던 문제는 단순히 수학적이거나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커리어, 관계, 감정의 문제들과 다르지 않다.
이처럼 이 책은 수학이 단순한 계산을 넘어, 세상의 구조를 이해하고, 인간관계를 성찰하며, 자기 삶을 통찰하는 데까지 확장될 수 있는 따뜻한 사고의 도구임을 보여준다. 복잡한 문제 앞에서 명확한 해답을 구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수학이 단지 정답을 찾는 학문이 아닌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모든 문제를 수학으로 풀 수는 없지만,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안다면 그 어떤 문제도 더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