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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NA의 역사 - 노벨상 수상자가 밝히는 생명의 촉매, RNA의 비밀
토머스 R. 체크 지음, 김아림 옮김, 조정남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25년 5월
평점 :
코로나19를 계기로 mRNA 백신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RNA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백신 개발의 핵심 기술로 RNA가 부각되면서, 그동안 DNA 중심으로 이해되었던 생명과학의 구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기존에는 DNA가 생명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 여겨졌고, RNA는 그 보조적 역할에 머무는 것으로 인식되었다고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 RNA가 단순한 유전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생명 조율자이자 변혁의 주체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RNA는 생물학, 의학, 생명공학의 혁신을 이끄는 핵심 요소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변화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고 RNA에 대한 높아진 관심으로 인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1989년 RNA의 촉매 작용(리보자임)을 발견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분자생물학자 토머스 체크가 집필한 책으로, RNA에 대한 깊은 과학적 통찰과 애정을 담고 있다. 책은 RNA의 과학적 발견부터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mRNA 백신 개발, 텔로미어를 활용한 노화 연구 등 21세기 생명공학 기술 전반을 아우른다. 또한 전축, 스파게티, 워드 프로세서의 ‘복사 붙여넣기’ 기능 등 일상적 사물과 개념에 빗대어 복잡한 RNA 작용 원리를 쉽게 설명하여 생명과학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떠오른 RNA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은 RNA가 어떻게 과학계에서 점차 핵심적 연구 대상으로 떠오르게 되었는지를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DNA가 생명의 열쇠로 여겨졌고, RNA는 보조적 역할에 머무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RNA 역시 정보를 저장할 수 있으며, 세포 내에서 능동적으로 작용해 단백질 합성, 유전자 조절, 노화 방지 등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RNA 연구는 급격히 부상했다. 책은 종이접기에 비유될 만큼 유연한 RNA의 특성과, 이를 통해 생명의 기원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을 다양한 비유와 함께 쉽게 설명한다.
2000년대 이후 RNA 관련 연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수많은 노벨상 수상과 함께 RNA 기반 의약품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코로나19는 RNA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SARS-CoV-2가 RNA 바이러스라는 사실과 이를 겨냥해 개발된 mRNA 백신은 RNA 기술이 오랜 시간 축적한 성과임을 증명했다. 팬데믹 속에서 저자는 RNA 연구자에서 RNA 대중 해설자로 역할을 확장하며, 대중에게 RNA의 작동 원리와 의미를 알리려 노력했다.
책은 또한 RNA의 양면성에 주목한다. RNA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인류를 구하는 치료 기술의 핵심이 되기도 한다. RNA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이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질병과의 싸움뿐만 아니라 생명과학과 의학의 미래를 여는 열쇠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생생하고 일관되게 추적하며, RNA가 과거의 조연에서 생명과학의 주연으로 올라서는 전환점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RNA 구조를 밝히는 과정에서 집단지성을 활용한 혁신적인 시도였다. RNA 접힘 구조를 예측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느리고 불확실했지만, 저자와 동료 연구자들은 수천 명의 일반인이 참여하는 게임형 프로젝트 ‘eteRNA’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RNA에 대해 전문 지식이 없는 참가자들도 퍼즐을 풀듯 RNA 구조를 설계하고, 가장 가능성 높은 해답을 실험으로 검증하는 방식이었다.
놀랍게도, 이 과정에서 3만 7,000명의 참가자가 수백만 개의 RNA 구조 퍼즐을 해결했으며, 이들의 아이디어는 실제 연구 논문에 공동 저자로 등재될 정도로 뛰어난 결과를 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는 안정성이 뛰어난 mRNA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슈퍼 접힘 구조’를 설계하는 데도 대중의 힘이 활용되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RNA 설계 문제를 게임 참가자들이 해결해낸 결과, 기존보다 월등히 높은 온도 안정성을 가진 mRNA 백신 후보가 탄생했다. 이는 향후 저개발국에서도 보다 쉽게 백신을 공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중요한 진전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RNA 연구가 더 이상 소수의 과학자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집단지성과 대중 참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해나가는 분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이 책은 단순한 과학 연구 기록을 넘어, 과학이 사회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RNA가 생명의 놀라운 촉매제로서 처음 주목 받게 된 과정을 다룬다. 저자와 연구팀은 RNA가 단백질 없이도 효소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 즉 리보자임의 존재를 발견함으로써 기존의 생명과학 패러다임을 뒤흔들었고, 이 연구로 1989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이를 통해 RNA는 단순한 유전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생명 활동의 주체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2부에서는 RNA가 자연의 한계를 넘어 생명 자체를 개조하고 연장하는 방법을 탐구한다. RNA는 생명의 기원 문제에 깊숙이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크리스퍼 기술을 통한 유전자 편집, 노화와 암을 결정짓는 텔로미어 연구, mRNA 백신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고 있다. 이 책은 RNA가 어떻게 생명을 조율하고 변화시키며, 과학과 의학의 미래를 다시 쓰는 주요 동력으로 부상했는지를 심도 있게 보여준다.
이 책은 단순히 RNA의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자연적인 원천과 인공적인 원천 모두에서 RNA가 어떻게 새롭게 진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확장될 가능성을 지녔음을 강조한다. 특히, RNA는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분자이자, 미래 생명공학의 핵심 도구로서 동시에 역할하고 있다는 점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저자의 개인적인 연구 여정 또한 서사에 녹아 있어, RNA라는 경이로운 분자가 과학자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실감나게 전달한다.
그리고 이 책은 생물학과 의학의 현재를 넘어 미래를 조망하는 데 필수적인 책이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RNA의 복잡한 원리들을 다양한 비유와 설명을 통해 풀어내, 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RNA를 기반으로 한 유전자 치료, 맞춤형 의약품, 혁신적 신약 개발 등 최첨단 생명과학 연구의 최전선을 함께 체험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과학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