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국 부모를 떠나보낸다 - 부모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깨달은 삶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진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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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읽어도 마음이 서늘해진다. 하지만 삶의 과정 속에서 부모든 가족이든 떠나보내는 일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인 만큼, 그 이별에 대한 준비는 오히려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 책은 그런 현실 앞에 선 우리에게 담담하지만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미움받을 용기>로 잘 알려진 아들러 심리학자의 권위자 기시미 이치로는 오랜 시간 부모를 간병하며 겪은 돌봄와 상실의 경험을 통해 이 책을 썼다. 단순한 감상이나 추억의 회상이 아니라, 실제로 부모의 마지막을 함께한 이로서 마주한 감정의 파도, 일상의 무게, 죽음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철학적 통찰과 함께 풀어낸다. 부모도, 나도, 나이 들어가는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오늘날,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이 여정을 준비하고 함께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지를 깨닫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아직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머물며 부모님의 노화를 실감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곤 한다. 그러나 어영부영하는 사이 부모님은 조금씩 늙어가고, 기억은 희미해지며,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저자는 그 순간을 준비하지 못하면 부모님의 현실을 외면하게 되고, 결국은 후회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준비에 대한 이야기다. 부모님이 아직 젊고 건강할 때, ‘부모님이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아니 나를 알아보지 못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미리 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단지 간병의 기술이나 제도적인 문제를 넘어서, 부모와의 관계를 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다. 특히 부모에게 사랑을 받으며 자라온 이들이라면, 이별의 순간까지 그 사랑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본인이 직접 겪은 간병의 시간과 수많은 감정의 파동을 숨김없이 털어놓으며, 자식으로서 무력함이나 슬픔을 받아들이는 용기에 대해 말한다. 때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도 사랑의 한 방식이며, 그 인정에서부터 진짜 돌봄이 시작된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용기’이다. 저자는 부모를 돌보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섬세하게 짚어내며, 무력감과 죄책감 속에서도 따뜻한 사랑으로 그 시간을 받아들이는 법을 이야기한다. 간병 과정에서 겪은 갈등과 후회, 그리고 회복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저자의 고백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부모와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오랜 시간 마음에 품고 살아오다 꿈속에서 아버지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상실을 치유하는 인간적인 과정 그 자체다. 그리고 꽃이 피지 않더라도 물을 주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돌봤다는 일화는, 부모의 질병이나 노쇠함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불어 저자는 부모와의 관계 회복에 있어서도 중요한 통찰을 전한다. 과거에 갈등이 있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간병을 통해 다시 쌓아가는 모습은, 돌봄이 단지 ‘의무’가 아닌 ‘관계의 재형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 개념인 ‘존경’의 의미를 되새긴다. 부모를 이상화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부모님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존재 자체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일깨운다. 그렇게 이 책은 우리가 부모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전해준다. 간병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위로이자 용기, 그리고 실천적인 지혜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은 실용적인 조언과 함께 따뜻한 위로도 함께 건넨다. 부모님이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고, 자주 “고맙습니다”라고 말해주어야 한다는 부분은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부모님이 자신이 가족의 일원으로 의미 있는 존재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존경이자 사랑이라는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준다.


저자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기쁨은 반드시 존재하며,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소중한 삶의 일부라고 말한다. 부모님을 더 잘 돌보고 싶은 마음이 크겠지만, 완벽한 돌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기는 한 문장, “부모님 곁에 있는 것, 그 자체로 의미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는, 그 어떤 말보다도 진한 위로로 다가온다.


결국 부모를 떠나보내는 여정은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치유하고, 인생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결국 부모를 떠나보낸다》는 그 여정에 따뜻한 등불이 되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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