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윤성희 외 지음, 강미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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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라인업만 봐도 기대가 되는 책이다. 이 책은 '시작'을 테마로 한 소설집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윤성희, 장류진, 조경란, 김화진, 정소현, 박형서, 백수린의 7명의 작가님들이 시작을 앞둔 우리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 10대의 청소년의 성장과 우정의 시작부터 20대의 첫 출근, 70대에 비로소 시작한 사랑까지 살면서 마주하는 시작의 장면을 연령대별로 수록하여 더 다채롭고 더 감동적이며 더 좋다. 


이 책에 담긴 7편의 소설 모두가 좋았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인 <흑설탕 캔디>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흑설탕 캔디>는 할머니의 네번째 기일을 맞아 온 가족이 모여 성묘를 갔던 날 주인공 나가 남동생 상우로부터 듣게 된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뜬금없이 동생 상우는 주인공 나에게 가족이 함께 프랑스에 살 때 할머니가 아파트 일층에 살던 할아버지와 사귀었다고 말했다. 그날 밤 나는 모두와 헤어진 후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할머니의 유품 속에서 할머니의 일기장 노트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시절 프랑스에서의 할머니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읽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주인공 나가 다섯 살, 동생 상우가 세 살 때 엄마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고 난 뒤로 함께 살기 시작했다. 백육십 센티미터의 키에 사십구 킬로그램 내외의 체중을 수십년째 유지하고 가지런한 백발의 단발머리를 고수하던 할머니는 동년배의 다른 할머니와는 너무나 달랐고, 이를 주인공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햇다. 게다가 할머니는 일본어에 능숙했고, 계란말이와 계란찜을 일본 식으로 달짝지근하게 만들었으며, '에델바이스'를 영어로 부를 줄 알았고, 다른 할머니와 달리 교육 수준도 높았으며 피아노도 잘 치셨다. 그런 할머니었기에 나는 엄마의 부재를 상대적으로 덜 느끼며 자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프랑스 파리의 주재원으로 가게 되며 할머니 역시 함께 프랑스 파리로 가게 된다.


처음 파리에 갔을 때는 주인공 나도 동생도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오로지 할머니가 계신 집 만이 안전한 곳이었다. 그렇게 할머니와 남매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며 파리에서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아이들은 프랑스어에 능숙해지고 파리에서의 생활에 적응해 가지만 프랑스어가 늘지 않은 할머니는 혼자만의 시간이 갈수록 길어지게 된다. 그 수많은 혼자만의 시간을 할머니는 어떻게 보냈을까?


그 시절 자신의 삶에 바쁘고 집중했었던 터라 할머니와 고독과 외로움, 타지에서의 당황스러움을 알지 못했던 주인공 나는 할머니의 일기장을 통해 그 마음들을 알아가고, 이를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담아낸 문장들이 왠지 더 슬프게 다가왔다. 여하튼 그 시절 할머니는 브뤼니에 씨를 알게 된다. 아파트 일층에 살아 여러번 마주쳤을 테이지만 할머니의 눈에 브뤼니에 씨가 들어오게 된 것은 바로 브뤼니에 씨 집에서 흘러나온 피아노 선율 때문이었다. <사랑의 꿈> 3번 A 플랫 장조를 듣게 되자 할머니는 그렇게 그 자리에서 연주가 끝날 때까지 서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후 시작된 할머니와 브뤼니에 씨의 이야기.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시절에 비로소 시작된 사랑이라고 감히 젊은 이들의 그것과는 다를 꺼라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을까. 할머니가 난생처음 맛보았던 그 황홀하도록 달콤했던 흑설탕 캔디처럼 브뤼니에 씨와의 시간도 그러했을 것이다. 비록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그게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그 사랑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 것은 이별의 순간을 할머니나 브뤼니에 씨가 결정한 것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시작'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저마다 연령도, 각자 위치도, 내용도 다를 지라도 시작의 순간이 우리에게 주는 긴장감과 설레임은 우리를 한 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기에 이 책에 등장하는 7명의 주인공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응원하게 만들면서 그 응원의 힘이 우리에게로 향하게 하여 또 힘을 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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