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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기억
티나 바예스 지음, 김정하 옮김 / 삐삐북스 / 2024년 8월
평점 :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할아버지와 손자간의 관계를 통해 세대간의 유대감과 기억을 아주 섬세하게 담아내었다. 주인공인 여덟살 소년 잔과 할아버지 조안과의 관계를 매일 함께하는 산책과 대화, 질문과 대답, 침묵, 그리고 나무를 통해 아주 아름답고도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라 더 따스하고 섬세한데 그래서 더욱 먹먹하게 만든다.
이 책의 시작은 주인공 잔이 느낀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잔은 늘 똑딱거리는 멀쩡한 옛날 시계처럼 언제나 소란스러웠던 할아버지의 침묵에 당황한다. 갑자기 입을 다문 할아버지를 위해 두 사람 몫까지 떠들게 되었다는 잔.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까지 침묵을 하면 자신은 숨을 쉴 수 없다는 잔의 이야기에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앞으로 함께 살게 되었다는 소식에 잔은 부모님이 웃을 때를 기다리지만 부모님은 웃지 않는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하게 된 것은 좋은 소식인데 웃지 않는 부모님. 그런 부모님에게 잔은 "좋아해도 되나요?"라고 묻는다. 그리고 왜 좋아하지 않냐고도 묻는다. 이러한 반응에 잔은 말로는 좋은 소식이라고 하나 이 소식이 기쁜 소식만은 아님을 느낀다. 과연 할아버지에겐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잔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되고, 이런 모든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이 책은 잔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잔의 집으로 이사오면서 겪게 되는 변화들에 대해 잔의 시선으로 아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생활의 변화와 할아버지와 나누게 되는 대화, 그리고 잔이 하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우리는 서서히 잔과 할아버지와의 관계에 빠져들게 된다.
할아버지는 잔을 데리러 오면서 배고픈 잔을 위해 할머니가 만드신 샌드위치를 가지고 오시는 데, 그걸 잊어버리셨다. 잔의 배고픈 눈빛을 보고서 할아버지의 눈은 멍해졌다. 어둡고 투명한 멍한 눈빛과 '아, 잔'이라는 말에 잔은 당황한다. 그렇다. 잔의 할아버지는 기억을 잃기 시작하였다.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는 조금씩 일상 생활이 힘들어져가고, 그런 할아버지의 변화를 지켜보는 잔의 모습들은 읽는 이의 마음도 먹먹하게 만든다.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의 변화는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 심해져 간다. 그런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잔은 슬픔을, 그리고 화를 느낀다. "먼저 기억을 잃어버릴 거야. 그 다음에는 나를."이라고 말한 할아버지의 말을 되뇌이며 왜 할아버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며 슬퍼하는 잔의 모습은 더욱 울컥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르고 다가오는 할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그 이후 잔은 자신의 세계에 스며든 할아버지와의 기억을 다시 나무를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렇게 잔에게 스며든 할아버지와의 기억들은 아마도 평생 그의 곁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앞서 말했듯이 여덟 살의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점점 더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의 시간들은 잔에게 많은 변화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소중한 기억을 남겼다. 그렇게 잔에게 스며든 할아버지와의 소중한 시간들은 이 책은 너무나 섬세하면서도 유쾌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먹먹하게 담아내었다. 보통 소설처럼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잔이 할아버지와의 기억들을 조금씩 이야기 하듯이 들려주는 짤막한 이야기들은 할아버지와 함께한 그 시간들을 통해 잔이 얼마나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둘이서 얼마나 깊이 소통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만든다. 그렇기에 잔의 이야기들이 날카롭도록 더욱 슬프고 아름다우며 오래 오래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