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의 이희영 작가의 신작이라서 서평단에 신청했는데, 운좋게 당첨되어 발간되기 전 가제본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역시나 이희영작가 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설정에서 이야기의 전개들은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이 책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고등학생 인시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설정이 신박하게 다가오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얼굴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하며 읽게 만든다.


이 책의 시작은 주인공 시울이 자신이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함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시울이 언제부터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여섯 살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시울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시울이 거울을 통해 볼 수 있는 건 눈, 코, 입을 가진 평범한 얼굴이 아니라 짙은 안개에 휩싸인 듯 뿌옇게 흐린 얼굴이거나 회색 구름이 소용돌이치는 모습이거나, 쇠라의 작품처럼 수많은 점이 찍혀있는 모습이거나, 젖소의 얼룩 무늬 등 온각 추상화적인 형상이다. 시울이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은 시력의 문제도 아니며,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에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사람은 오직 자신 뿐이라는 걸 깨달은 시울은 온갖 병원을 전전하며 다니다가 다른 이들에게는 자신이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기로 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매일 보고 평가하는 자신의 얼굴을 정작 시울을 보지 못하며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울은 그 상황에 나름 적응하며 무심하게 살아간다. 그렇게 펼쳐지는 시울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평소 얼굴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나 자신은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얼굴을 남들이 어떻게 보고 생각하는 지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많이 신경쓰고 의식하며 살고 있는 지를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시울을 통해 깨닫게 된다.


평범한 소녀 시울이는 그 누구보다 속깊은 면모가 있다. 암 수술 후 검진차 오신 할머니와 함께 시울이 보낸 데이트는 시울이 얼마나 속깊은 아이인지를 알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할머니와 함께 까페에 가서 생애 첫 카페라테를 마시고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파스타와 고르곤졸라 피자를 함께 먹는 시간을 통해 할머니의 소녀적인 호기심과 감성을 충족시켜준 시울의 행동과 늙어가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부분은 찡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러한 시울의 일상을 보다보면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게 시울의 말처럼 외모가 아닌 다른 부분을 더 깊게 바라보게 하고 속깊은 아이로 성장하게 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시울의 일상에 놀라운 변화가 찾아오게 되는 데 그것은 우연히 같은 반 아이 묵재가 던진 농구공에 맞아 새로 바꾼 교실 사물함에 부딪혀 얼굴에 상처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후 신기하게 그토록 보이지 않던 시울의 얼굴 중 새로 생긴 흉터만 거울을 통해 선명하게 보이게 된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시율의 흉터를 걱정하지만 정작 시울은 난생처음 맞이하게 된 자신의 얼굴의 일부가 놀랍고 신기하다. 과연 시울의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시울의 뒷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 흉터는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다는 상징'이라는 흉터를 대하는 시울의 태도와 말은 이 책 중 가장 인상적이며 가슴에 남는다. 흉터가 왜 생기게 되었는지, 흉터가 남딘 것 보다는 그저 다른 이의 시선으로만 보았기에 무조건 감추려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된다.


그리고 무언가를 진심으로 본다는 것은 마음을 연다는 의미와도 같고, 진심을 보기 위한 그 너그러운 시선은 제일 먼저 자기 자신에게 향해야 한다는 작가의 말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신박한 설정과 조금 다르지만 특별한 시울이와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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