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수선
최은영 지음, 모예진 그림 / 창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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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제목과 표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을 수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따스한 느낌의 그림은 책을 읽기 전부터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듯 하다. 이 책은 아픈 마음을 고장 난 사물에 비유하여 이야기를 전하는 그림책이다. 이 책은 옴니비스식으로 구성되어 시계, 전등, 침대, 텔레비젼, 문 손잡이,수도꼭지 등등 일상의 물건이 망가져서 벌어지게 되는 일을 기묘하게 펼쳐보이고 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의 진행은 왠지 따스하게 마음을 감싸안아주며 위로를 전하는 듯 하다.


이 책의 이야기는 어느 퇴근 길, 무표정한 한 사람이 '마음 수선' 가게 앞에 놓여진 고장 난 시계를 가져가면서 시작된다. 시계 속 버꾸기는 울지 않고 좋용하기만 하고, 한 사람은 고장난 시계를 껴안고 정리되지 않은 캄캄한 집안으로 들어선다. 집 안의 전등은 고장이 났고,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캄캄한 집 안에 홀로 웅크린 사람의 모습이 위태롭고 외로워 보인다.


그리고 삐걱거리는 침대 때문일까. 도무지 잠을 잘 수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텔레비전. 텔레비전도 고장이 난 것일까. 리모콘 버튼을 아무리 눌러 보아도 화면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망가진 문 손잡이. 망가진 손잡이 때문에 들어갈 수 없어서 일까. 그 안에는 시들어 버린 잎사귀만이 가득하다. 고장난 수도꼭지는 물이 끝임없이 쏟아지게 만들어 욕실을 물바다로 만들어버렸다. ... 이렇게 고장나고 망가진 물건들은 사람들의 일상도 망가뜨리고야 만다.


고장난 사물로 인해 망가져 버린 일상들은 결국 누군가를 우울과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만든다. 이 각각의 이야기들에 깊은 우울증에 빠진 상황이나 너무나 지치고 힘든 상황, 혹은 트라우마에 갇힌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입하여 보게 된다면 더 많은 공감을 하게 될 듯 하다.


하지만 그렇게 우울과 절망에 빠져 비가 내리는 장면들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우산이 망가져서 온 몸에 비를 맞게 된 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라는 질문을 품게 되고 마치 그 질문에 대한 답처럼 책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가진 가방을 끄집어 내어 그 사람이 가방 속에서 비를 잠시 피하고 쉬어갈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 책은 망가져버린 일상과 절망, 우울에 빠진 이들에게 다시 말을 걸어온다. 반대편으로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펼쳐지는 앞서 보인 절망의 상황들이 밝고 넓게 변하는 장면들. 펑펑 흘린 눈물이 만든 수영장과 망가져버린 식물들 속에서 다시 피어난 꽃들,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달리던 기차는 오히려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멋진 여행을 하게 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반대편으로 돌린 시선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수선할 수 있다.


앞부분의 아주 어둡고 절망적인 장면들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밝고 따뜻한 장면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힘들고 지치는 상황이나 절망과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려 누군가와 연대하여 있는 것으로 그 상황을 다르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이 책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상황을 스스로 인지하고 타인과 공감하며 우리가 함께 그 상황에서 벗어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때로는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수선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 책은 기묘하지만 따뜻하고, 무언가를 노력하고 애를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상황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말해주어 더 큰 위안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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