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창창 - 2024 상반기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우수선정도서
설재인 지음 / 밝은세상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으로 인상 깊었던 설재인 작가의 신간이라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무채색과 같은 삶을 살아온 스물아홉의 청년이 세상에 의해 규정된 무기력한 자기 모습을 지워내고 스스로 선택한 색으로 자신만의 세계에 물들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곽용호'라는 이름을 빼고 그 어떤 것도 내세울 것이 없던 청년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채워가는 모습들이 왠지 설레이게 만든다. '태몽'을 소재로 하여 태워나기도 전부터 정해지는 삶에 대한 규정에 맞선 주인공들의 모습들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주인공 곽용호는 태몽에 용과 호랑이가 등장하여서 '용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그는 이름 세 글자를 빼고 나면 특색이라고 전혀 없는 무채색에 가까운 사람이다. 스물 아홉 인생 내내 잘 나가는 작가인 엄마와 비교당하는 회백색 먼지가 가득한 내려앉은 캔버스 위의 엉성한 습작 스케치와 같은 사람이며 공부는 그냥저냥 해서 삼수 끝에 인 서울 4년제 대학에 가까스로 들어가긴 했으나 졸업 후 몇 년째 취업에 실패하고 있는 패배자이자 무기력 그 자체인 사람이었다.


곽용호는 어린 시절부터 세상에게도, 엄마에게도 늘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세상의 관심에서 빗겨나 있는 그가 유일하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순간은 바로 오직 드라마계의 스타 작가이자 자신의 엄마인 곽문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뿐이었다. 그렇게 무기력하고 무채색인 채로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던 어느 날 엄마, 곽문영이 사라지고야 만다. 한여름 아스팔트 도로에 내린 가랑비처럼 깨끗하게 증발해버린 엄마. 과연 엄마는 어디로 간 것일까? 엄마가 사라진 것도 기가 막히고 어안이 벙벙한 데 드라마 제작사 피디이지 곽문영의 수족인 오혜진 피디는 용호에게 한가지 제안을 해온다.


오혜진은 곽용호에게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만이라도 세븐믹스랑 하게 되는 엄마의 새드라마 '드림 런처스'를 대신 집필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곽용호의 마음 깊숙이 한 구석에 버려져 두었던 자신의 꿈이 떠오른다.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적으라고 할 때마다 썼던 '작가'의 꿈. 하지만 엄마의 글재주에 비하면 곽용호의 재능은 얄팍하기 그지 없었고, '작가'는 그에게 먼지 쌓인 꿈이 되고야 말았었다. 그런데 그런 곽용호에게 '작가'를 해달라니. 비록 곽문영이라는 엄마의 이름으로 쓰는 엄마의 드라마지만 곽용호는 솔깃해진다. 무엇보다도 이태껏 쓸모라곤 없던 자신에게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곽용호는 고등학교 문학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이자 옛 애인 함장현과 함께 엄마의 드라마 '드림 런처스' 대본 작업을 시작한다. 걱정과는 달리 그들의 첫 대본은 무사 통과된 이후 그들의 작업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신나게 집필 작업을 이어가던 중 오혜진 피디에게 사라진 엄마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제서야 곽용호는 자신이 이태껏 사라진 엄마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오혜진 피디는 곽용호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조문을 왔던 승복 입은 사람이 엄마가 사라진 것이랑 연관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태껏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부산의 외삼촌을 찾아가 승복 입은 사람이 거주하는 절이 '광혜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광혜암'을 검색하니 지도에 뜨지도 않는, 경기도 외곽 어느 산에 위치한 을씨년쓰러운 암자였다. 그리고 광혜암에는 온갖 파손된 성상들이 가득했다. 기독교, 천주교, 뭔지 모를 종교의 우상들, 목 없는 불상, 하반신 없는 성모상, 부서진 십자가 등등.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광혜암은 과연 어떤 곳일까?


그리고 함장현과 함께 광혜암을 찾아간 곽용호는 대체 몇 살인지 알 수 없고, 둥근 털모자를 쓰고 넙데데한 얼굴에는 잡티의 흔적이 가득하여 피부에 붉은 빛이 돌아 아주 못나고 커다란 품종의 딸기 같아 보이는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그 사람은 곽용호를 보자마자 "딸래미는 엄마를 똑 닮았네."라고 말한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이길래 곽용호의 엄마를 아는 것일까? 그리고 대체 왜 이런 이상한 곳에 엄마는 있는 것일까? 이들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이 책 속 주요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꿈을 잃은 채 버티듯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팍팍하고 가혹한 현실 앞에서 그들은 꿈이라는 것을 꿀 수조차 없었다. 잘나가는 엄마의 그늘에 가려 무채색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며 스물 아홉이 되도록 변변한 직장조차 찾지 못해 패배감에 휩싸였던 곽용호. 좋지 않는 집안 형편으로 가고 싶은 대학이 아닌 장학금을 받고 들어간 다른 대학에서 몇 년째 졸업을 유예하며 4학년으로 살아가는 함장현. 신인 작가를 발굴하겠다는 야심 찬 꿈을 가지고 피디가 되었지만 현실은 스타 작가의 매니져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오혜진. 이들은 제각각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 현실을 바꿔보려 하지만 쉽지 않았고, 이들에게는 좌절감만 가득했었다. 그러던 중 스타 작가 곽문영이 종적을 감추며 곽용호와 함장현은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곽문영의 땜빵이라 하지만 마음 속에서 꺼내보지도 못했던 꿈을 한 번에 이루고, 재능을 인정받고, 무엇보다도 일을 해서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렇게 곽용효와 함장현은 그 일들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오혜진 역시 이제서야 자신의 역할이 생긴 것 같아 기쁘다. 하지만 이 모든 기쁨과 행복도 잠시 이들은 불안감을 느낀다. 우리가 이렇게 일이 술술 풀릴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계속되는 실패들 앞에서 그들의 삶에는 성공의 경험은 부재하였고,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조차 못했던 것이다. 낯선 현실과 복잡한 감정들 속에서도 곽용호와 함장현은 끝까지 함께 나아간다. 세상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비록 무채색에 가깝고, 외롭고, 상처받고, 기쁨을 누리는 것 역시 익숙치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한 마음만큼은 늘 따뜻하고 다정한다. 이렇게 어떤 경우에도 함께 하는 이들읜 연대는 이 책의 모든 과정 속 이야기들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리고 꼬일 대로 꼬여버리고 뒤틀린 문영과 곽용호의 모녀 관계. 엄마 곽문영은 언제나 바빴고 그랬기에 곽용호는 늘 혼자였다. 아빠란 존재는 알지도 못했고 곽문영의 드라마가 대박이 나서 성공의 대로를 달리기 시작되자 곽용호는 더욱 방치된다. 그리고 곽용호는 잘나가는 엄마가, 미혼모라는 사실을 무기로 팔고 다니는 엄마가, 딸에게는 작은 관심조차도 없으면서도 휴머니즘 드라마를 뚝딱뚝딱 써내 시청자들의 눈물 콧물을 쏙 빼놓는 엄마가 너무나 가증스럽다. 그리고 세상 그 어떤 엄마도 곽문영보다 끔찍한 엄마는 없을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나가는 엄마를 둬 먹고 살 걱정 없는 곽용호를 부러워하기만 한다. 사실 그에게는 이게 제일 문제였다. 엄마 덕에 먹고 사는 삶. 곽용호는 엄마라는 존재가 늘 뛰어넘어야 하는 대상이지만 현실은 엄마를 따라가기 조차 힘들다. 그렇기에 곽용호는 엄마를 증오하면서도 그의 돈으로 먹고 살아가는 자신을 혐오하기까지 하였다. 그렇기에 엄마가 사라져도 곽용호는 별 타격을 받지 않았지만 세상의 시선이 무서워 엄마를 찾아 나섰던 것이다. 엄마가 남긴 자취를 따라가다가 하나씩 알게 된 인간 곽문영의 삶. 그렇게 이들 모녀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이 책은 꼬질꼬질한 삶과 창창한 꿈, 그 어디쯤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청년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패와 성공 사이, 상실과 사랑 사이, 혐오와 연민 사이에서 늘 자리를 잡지 못했던 스물 아홉의 청년들에게 삶이란 불안정하고 불명확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서로 연대하며 조금씩 자신만의 일을 하나씩 이루어 가며 자신만의 색깔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한 과정 속의 이야기가 왠지 뭉클하고 좀 더 응원하게 되면서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