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아 I-II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1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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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욘표세의 대표작이라 하여 읽게 된 책이다. <멜랑콜리아 1-2>는 실존 인물인 노르웨이의 대표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비극적인 일생을 그려낸 작품이다. 1995년 작품이지만 국내에는 지난달 민음사가 출시한 아주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이 책의 욘 포세의 작품 중 실존 인물의 삶을 바탕으로 한 유일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누구라도 바로 느끼게 되는 것은 바로 단어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리듬이다. 이는 정신병을 가진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욘 포세만의 독특한 문체는 1부에서는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어 라스의 불안과 우울, 편집증적 망상을 이해하게 만들고, 2부에서는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누이이자 치매로 고통받는 허구적 인물인 올리네 시점으로 서술되어 치매에 걸린 사람의 정신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의 시작은 1853년 늦가을 오후, 라스가 보라색 코듀로이 양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라스는 오늘 한스 구데가 오는 아틀리에에 가지 않기로 한다. 한스 구데가 아틀리에에서 라스가 그리는 그림을 보고서 라스에게 안 좋은 말을 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스는 한스 구데의 비평이 두려워 침대에 누워 오늘은 아틀리에에 가지 않을 것이며 한스 구데도 만나지 않을꺼라고 하고 있다. 이 책의 시작에서부터 바로 느낄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욘 포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문장의 반복이 아주 많다. 번역가 의 말을 잠시 빌려 보자면, 처음에 'A-B-C'라고 쓴 문장을 'A-B-C-D'로 변주하다가 'A-B-C-D-E'로 한 번 더 바꿔 등장 인물들의 정보를 조금씩 흘린다. 이러한 문장의 표현 방식은 라스의 내면 세계를 이해하는 아주 적합한 표현 방식으로 라스가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를 제대로 이해하게 만든다.


다시 라스의 이야기로 돌아와 라스는 자신의 운명을 결단해 줄 구데 선생을 기다리다 책의 처음에서부터 느낄 수 있듯이 그는 돌연 착란에 사로잡히게 된다. 자신에게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예술적 재능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인간'이라고 말할 까봐 두려워하다가 자신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고, 오직 자신만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불안과 우울, 편집적인 망상 속에 사로잡혀 있던 라스는 자신이 하숙하고 있는 빙켈만 집안의 딸, 헬레네에게 완전히 반하게 된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불안과 헬레네에 대한 사랑은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착란 속에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그런 그를 헬레네의 삼촌과 엄마는 내쫓기로 하면서 그의 불안은 더욱 극대화되어 간다.


그러다 <멜랑콜리아 1>의 이야기는 돌연 가우스타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며 라스의 정신 세계를 더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착란의 증상을 겪으면서도 라스가 꺾지 않은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단하나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다'를 반복하여 말하면서 라스를 평생 괴롭혔던 불안, 우울, 착란, 기억의 편린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리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멜랑콜리아 2>는 라스의 누이 올리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리네는 이미 대부분의 가족을 저 세상으로 떠내보내고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으로, 갑자가 자신을 찾아온 시그네를 통해 동생 쉬버트가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을 알게 된다. 2부의 이야기는 올리네가 쉬버트의 죽음을 앞두고서 치매 증상과 겹쳐서 죽은 라스의 모습, 음성, 흔적을 쫓는 모습과 기억을 깜박깜박하는 모습, 혹시라도 자신의 옷에 실례를 하게 될까 두려워하는 모습 등등을 통해 치매로 고통받고 있는 올리네의 내면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상영되고 있는 현대 희곡 작가이자 실험적이고 정교한 시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산문 작가의 욘 포세는 노르웨이와 북유럽을 뛰어넘어 전 세계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책은 그러한 욘 포세의 대표적인 문체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욘 포세만의 반복적인 문체는 라스와 올리네의 내면 세계에 깊숙이 빠져 있는 듯이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동시에 번역가 손화수님의 말처럼 편집증이나 치매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내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문체는 어려운 단어들이 없고 반복되다 보니 정말 쉽게 그리고 빠르게 그의 작품에 빠져들게 한다. 기승전결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읽을 때마다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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