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평생을 수치심과 싸워온 우리의 이야기
로라 베이츠 지음, 황가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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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불편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야만 하는 책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여성들이 오랜 시간 동안 겪어야 했던 성차별에 대한 고백과 그 반복적인 일들이 사회제도적인 시스템의 의한 것이라는 고발을 담은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시작은 저자가 이태껏 당해온 성차별과 성추행에 관련된 목록을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저자가 목록들을 나열했던 것처럼 여성이라면 스스로 이런 목록을 적어보라고 추천하고 있다. 왜냐하면 목록에 제일 먼저 적게 되는 명백한 사건들, 즉 머리속에 바로 떠오르는 사건들을 겪으면서 당사자는 너무나 힘겨웠지만 다른 사람들이 유난 떨지 말라고, 오해하지 말라고 했던 일들, 사소한 일들, 상대방에게 악의가 없었음을 자신도 아는 일들, 자신 있게 판단을 내릴 수 없었던 일들이 과연 정말 유난을 떠는 거라고 확실할 수 있냐고 저자는 묻는다. 이런 질문을 하다 보면 스스로 나의 잘못인가? 아니면 내가 그 일을 초래할 만한 행동을 했는가? 내가 상대방을 오해하게 만들었는가?를 스스로 되묻게 되지만 실은 그것은 여성의 잘못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전 세계적으로 매일, 지금도 여성들이 남성들에 의해 살해를 당하고 있다. 하지만 대개 우리는 그 여성들의 이름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뉴스나 언론에 기사화 되는 경우는 아주 극소수이고,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사회는 이를 '극히 드문' 혹은 '물 흐리는 미꾸라지가 저지른 비극적인' 일로 치부하고 사건들의 상호 연결성을 배제시켜버린다. 이렇다 보니 이 모든 사건들에 대한 시스템 차원의 해결책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건의 원인과 예방과 해결책은 또다시 여자의 몫이 되어버리고야 만다고 말하고 있다. 곰곰히 이 책에 나오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읽기에도 힘든 사건들을 하나씩 살펴보다보면 이 사건 모두가 연결되어 있지만 이태껏 우리는 각각의 사건으로 여겨왔고, 저자의 말처럼 그 모든 사건들의 원인과 예방, 해결책을 여자들의 책임으로 돌려졌음을 깨닫게 된다.


페미니스트 활동가, 작가, 강연가, 방송에서 남자 패널과 피 튀기며 토론을 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여러 권의 페미니즘 책을 쓴 저자 역시 성차별을 겪은 순간들이 있었다. 아마 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그러한 순간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정확하게 '있었다'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을 만큼의 목록들이 우리 뒤를 따르고 있고, 지금도 어쩌면 생겨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다 비슷한 사건들을 연속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점과 점을 연결'하여 이 사건들이 우연히 벌어진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간 일상에서 흔하게 겪었지만 무시하려 애썼던 목록을 떠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이 겪었던 공포, 학대, 괴롭힘, 차별들은 과연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가진 저자는 다른 여성들에게도 목록에 대해 물어보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런 질문 조차 받은 적이 없었고, 아무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해 본 적조차 없다고 말하였다. 왜냐, 그것이 여성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제 더이상 목록의 일들이 일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침묵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야기들이 모일 수록 다양한 억압의 형태간에 겹치는 부분이 있음은 명백해졌다. 여자들은 스스로를 믿지 않도록, 목록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도록 그동안 체계적으로 훈련받아왔다. 이것이 바로 아주 오랫동안 가부장으로 대표되는 권력을 가진 이들이 사회 시스템을 통해 구축해온 억압인 것이다.


그렇기에 문제는 여자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시스템에 있음을 여성 뿐만 아니라 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깨달다아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기는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서도 그 사람이 짧은 치마를 입어서, 혹은 잘못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등과 같은 말로 안되는 원인을 더이상 찾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 책의 이야기 속 사건들은 대한민국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스토킹 범죄로 인한 살인 사건,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무차별 폭력 등등.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한 폭력은 살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참혹하고 처참 그 자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우리에게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시급한 저항의 행동은 우선 목록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차별은 없다고 말하는 누군가의 세계를 부수기 위해서, 연대하고 한 목소리를 내가 위해서 목록이 필요한 것이다. 떠올리기 힘들겠지만 나도 여러분도 한번 만들어 보시길, 생각보다 그 목록이 길고 생각보다 많은 사건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어서 가슴 아프고 처참해진다. 이 책은 부디 보다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빨리 이 사회가 바뀔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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