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여행 - 모두가 낯설고 유일한 세계에서
양주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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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곳에서 비로소 내가 된다. 

책 띠지 속 문구가 가슴에 콕 와 닿는다. 일상의 순간 속이 아닌 여행의 순간에서 발견하게 되는 나의 모습은 이제까지의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의 모습이 될 것 같아서 더 설레이게 다가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창작집단 unlock에서 활동 중인 양주안 작가의 첫 산문집으로 저자가 십여 년간 여행의 순간에서 만나온 사람들과 여행의 기록을 담은 여행 에세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파리의 에펠탑의 풍경이라던지, 밀라노 두오모 성당과 같은 명소에 대한 이야기는 실려 있지 않다. 대신 파리에서 만난 사랑을 찾는 청년들, 밀라노 게스트하우스의 가난한 여행자들, 멕시코시티에서 만난 거리의 선주민, 이스탄불 공항에 갇혀버린 시리아 남자, 어린 시절 일본에 정착한 한국인 가이드, 푸에르토 모렐로스에서 사랑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 등, 저자가 여행의 순간에서 만난 다양하고 다채로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똑같은 세상은 그 어디에도 없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들은 게작각 다르지만 그럼에도 각각의 이야기들은 서로 맞닿아 있으며 얼마나 소중한 지를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달아 본다. 그렇기에 이 책에 담긴 십여 년간 만나온 저자만의 고유한 여행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제목 그대로 '아주 사적인 여행'이며, 나는 가보지도 못한 장소이고,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오랜 여운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될 듯 싶다.


이 책에 담긴 여러 나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중 유독 인상적인 이야기는 바로 프랑스 몽페리에에서 D와의 이야기다. 수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D와의 대화를 미루고 있던 저자는 광장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D와 이야기를 나누고, 저자가 걱정했던 수어를 알고 모르고는 이 들 사이의 대화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꼭 필요한 이야기만을 할 수 있어 더 좋은 거라는 D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주말이면 멕시코시티 국립 인류학 박물관 앞 광장에서 열리는 전통 공연에서 전사의 춤을 보고서 느낀 저자의 글이 마음에 남는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꿈이 아니라 밥이며, 몸을 누일 방 한칸이며, 내 주위의 공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비록 위대한 위인은 아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작아지는 몸으로 꿋꿋이 살아내는 사람이라는 게 왠지 뭉클하게 만든다. 삶을 연속하여 이어가는 것은 거창한 것들이 아니라 우리를 살게 하는 아주 사소하고도 평범한 것들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평범하게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이어가는 우리는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칭찬 받아 마땅하다.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향한다는 것만으로도 설레이게 하며 특별한 순간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여행의 순간이 더 특별할 수 있는 것은 다시 돌아와 맞이할 일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 속 담긴 저자가 만난 다양하고 다채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우리와 다르지만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는 모습과 그 안에 담긴 마음은 통하는 부분이 있기에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저자가 만난 많은 이들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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