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도둑 - 삶의 궤도를 넓혀준 글, 고독, 연결의 기록
유지혜 지음 / 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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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도둑'이는 제목이 다소 어울리지 않은 단어의 조합인 듯 한데 왠지 끌렸다. 아마도 도둑이라는 단어가 가진 부정적인 개념이 더더욱 그러하게 느끼게 하는 듯 했다. 왜 제목을 '우정 도둑'이라 했을까를 생각하며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나의 궁금증은 프롤로그의 글에서 바로 풀렸다. 


이 책에서 우정은 단순히 친구간의 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여름, 시, 과거, 거리, 고독 등등 그 모든 것이 친구라 저자는 말한다. 그러니 이 책에서 우정이란 사람에만 해당되는 감정이 아니라 넓은 세계와의 연결을 뜻한다. 그리고 저자는 책을 쓰는 것은 도둑질에 가깝다고 말한다. 작가들은 자신들이 훔친 것들을 뻔뻔하고 근사하게 공개하는 부류라고 말이다. 그리고 독자는 훔친 이야기를 팔아넘기는 작가의 공범이다 .그렇게 작가와 독자는 책을 통해 만나게 된다. 그러니 이 책에서 말하는 우정 도둑이란 세계와 연결된 모든 것들과의 대화를 쓴 글을 읽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발견하고 몰래 훔치며, 자신에게 없는 것으로 인해 완벽해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서 나에게 없는 것들에 대한 빈칸을 채워가는 나, 그리고 독자 역시 우정 도둑이다.


이 책은 <쉬운 천국>, <미워하는 미워한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로 베스트셀러 유지혜 작가의 신작이다. 그리고 결핍을 간절히 채우고 싶었던 끝에 그 답을 우정에서 찾은 과정을 이 책에 담아내었다. 이 책에서 우정은 비단 사람뿐 아니라 넓은 세계와의 연결을 뜻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기 자신을 배우고 이를 토대로 더 넒은 세상으로 나아가려 애쓰는 저자가 우리에게 서로 연결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하고 있다.


이 책의 1장 '고독과 산책'은 작가가 보낸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자신과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엔 돈을 모아 옷을 하나씩 사보고 실패하면서 그렇게 자신을 표현해 갔다. 책과 글쓰기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내면을 충만하게 하였다. 자기 삶에 대한 가능성에만 관심을 두었을 뿐 타인에 대해 진정으로 궁금해하던 방법을 모르던 저자는 자신의 삶이 수백 년전 낯선 언어로 쓰인 소설에 그대로 나타나 있음에 놀라워 한다. 제각각의 인생은 이렇게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하고 연결되었다는 믿음이 있기에 우린 이렇게 서로에게 공감을하게 되는 듯하다.


이 책에는 꽤 많은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책에 대한 이야기들은 많은 공감을 하게 한다. 특히 '책과 책 사이의 이미 연결되어 있는 고리들을 탐함하며 현실을 성실히 지나친다'라는 문장은 딱 나의 경험들과 연결되어 있다. 책을 통해 또 다른 책을 만나고, 그리고 그 연결을 통해 세상과 다른 사람들과의 만나 연결된 나만의 책 거미줄은 자꾸만 거대해진다. 나의 거미줄이 거대해지고 복잡해질 수록 나 또한 겸손해진다. 나란 존재가 얼마나 미약하며, 불완전하며, 나에게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거대한 책의 생태계에서 깨닫게 된다. 


의식주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삼요소이다. 그리고 자신의 취향을 가장 나타내기 쉬운 것이 바로 의가 아닐까 싶다. 사십이 넘어가고 나서 나에게 옷이라는 것은 유행에 따르기 보다는 내 스타일대로 편하게 입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도 굉징히 편해졌다. 그렇다고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은 나또한 지양한다. 때와 장소에 어울리되 나만의 스타일이 있는 그런 옷. 그게 바로 내가 지향하는 스타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저자의 말처럼 적어도 옷에 지배되어 살지는 않는 듯 하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가보다.


그리고 2장 '대화와 새벽'에서는 세상을 향해 건너가게끔 연결고리가 되어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하여 말한다. 마지막 3장 '네가 되는 꿈'에서는 자기 자신을 알만큼 알게 되고 균형을 찾은 삼십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독일에서 만난 또래 P와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는데, 이는 여성으로 30년 남짓 살아오며 그린 궤적이 비슷했던 덕분이다. 친하지 않아도, 심지어 서로 잘 알지 못해도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베를린에서 그 연대를 매일 목격했다고 말한다.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채식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난민을 자기 집에 재워줄 수 있다는 문구를 써서 기차역으로 마중 나가는 베를린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연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들의 모습에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 책에는 한 사람이 소중한 것들의 범위를 넓혀가며 같이 연결되어 있음의 소중함과 공존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과정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들을 우리는 바깥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저자를 그럴 때마다 어떤 것을 열렬히 흠모했다. 그리고 나면 자신이 훌쩍 자라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를 '대충 좋아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칭하는 저자는 마음이 가는 곳으로 몸을 옮기며 살아왔다. 사람들은 그런 저자를 보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했다. 비행기를 타고 열네 시간을 날아가 유럽에서 친구에게만 귀 기울이고, 다시 만나지 않을 이와의 대화에서 강렬한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 속의 이야기들 속에는 단순히 밝고 좋은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네 삶 또한 그러하듯 그 안에는 우울, 고독, 외로움 등등 부정적인 감정들도 자리잡혀 있다 .그렇다보니 다소 어두운 글들도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러한 과정 속의 글을 읽으며 나에게 없는 저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다 보니 저자가 맨 마지막 말하는 그 모든 비틀거림과 뒷걸음질도 춤으로 보인다는 말에 아주 많은 공감이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비틀거림과 뒷걸음질을 통해 세상과의 연결의 소중함을 다시 깨달아본다. 세상과의 모든 연결, 그 우정들을 통해 우리는 아주 조금이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갈길은 멀지만 그럼에도 서로에게 애틋하게 연결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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