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 순간 빛을 여행하고 - 그림 그리는 물리학자가 바라본 일상의 스펙트럼
서민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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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이라는 자체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나 또한 과학의 여러 분야 중 물리학이 가장 어렵고 거리를 두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물리학도 어려운데 '그림 그리는 물리학자'라니. 세상에 그림과 물리학을 같이 놓아 생각하기도 힘든데, 둘 다를 하는 분이 있다니. 저자의 특이한 이력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이 책은 '그림 그리는 물리학자'로 불리는 서민아 교수의 에세이다. 저자는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혹은 보이지 조차 않는 빛을 연구하는 과학자로 살아가는 여정과 결코 같은 모습인 적 없는 순간의 빛을 품은 풍경을 그리는 일상, 세상의 무수한 빛이 삶에 던져주는 메세지와 이에 담긴 내밀한 단상을 이 책에 담아내었다.


저자는 현대 미술의 대표적인 인상주의가 시작되는 시기와 현대 물리학이 시작되는 시기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예술은 '빛'이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즉, 물리학계오 미술계의 흐름을 바꾼 것은 모두 빛이었다는 뜻이다. 과학과 예술의 한 가운데에서 저자는 그간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빛이 매혹이 될 때>를 통해 아득히 멀기만 보였던 두 세계를 연결함으로써 저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빛'이라는 공통된 화두를 통해 과학과 예술에 투영되어진 메세지와 삶에 대한 고찰을 전하고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공감이 되며 마음 속에 담아 놓고 싶어진다. 


이 책의 이야기는 저자가 화가와 물리학자라는 두 가지 꿈을 꾸었던 저자의 어린 시절과 학생 때의 이야기들로 시작된다. 대학에 가서 '물라학도가 미대 수업에 왜 왔어요'란 교수님의 질문을 받았던 대학교 드로잉 첫 시간의 이야기는 꽤 인상적이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미술과 물리학 두 사이에서의 서성거림만은 저자만의 독특한 이력과 정체성을 만들었다. 그런 저자의 이야기는 지금도 두 갈래의 길에서 머뭇되는 모든 이들에게 위안을 준다. 지금의 서성거림이 미래의 또 어떤 자신의 모습과 연결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기에 말이다. 지금의 서성거림과 머뭇거림이 하나도 허투루 쓰이지 않고 자신만의 정체성의 밑바탕이 될 지를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이 책만이 가지는 특별한 매력은 바로 각각의 이야기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따뜻한 색채에 신비한 분위기에 그림들은 저자의 이야기에 더 빠져들게 만든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한번 그림만 봐도 참 좋다. 그림 속에 담긴 따뜻하고 포근한 시선은 그림을 보는 이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듯하다.


빛의 거울에 반사되어 눈으로 들어와 보여지는 실상은 엄밀히 진실이며, 내 모습이 거울에 보이는 형상 그대로 타인에게도 보여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마음의 눈'이 있어 이와 다르게 인지한다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다. 즉, 어느 날에는 실제 나는 고양이인데 호랑이로 착각해 보기도 하고, 실제 나는 호랑이이지만 고양이로 착각해 보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보다는 착각의 눈으로 보는 것은 아마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어느 누구도 늘 고양이로, 늘 호랑이로 머물러 있지는 않다는 거다. 우리는 매 순간 변하고 성장하기에 어떤 때는 고양이었다가, 어떤 때는 호랑이로 변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그리고 그 어떤 모습도 절대적이진 않다는 사실도 함께.


우리 주변에서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는 하늘과 바다는 파란색이지만 그건 눈에 파랑헥 보이는 것이지 파란색 자체가 아니다. 그렇기에 주변에 널려 있는 게 파란색이지만 파란색은 그리 흔한 색이 아닌 것이다. 화가 베르메르의 울트라마린처럼 파란색 물감도 귀하고, 또 그래서 그 어떤 색보다도 사연을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읽었을 <파랑새>라는 소설에서처럼 우리는 왜 행복을 빨간색도 노란색도 아닌 파란색이라고 하는 걸까. 그건 바로 파란색이 자연에는 거의 없는 색이기 때문이다. 색 중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너무나 귀한 색이라서 행복이라는 이름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 푸른 빛을 띠는 천연 색소는 자연계에서 매우 드물어 쉽게 '만질 수 없는' 파란색이지만,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주변에는 파란색이 널려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말한다. 쉽게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행복도 이미 우리 곁에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다만, 우리가 깨닫지 못할 뿐.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그림 그리는 물리학자'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과학이라는 분야 안에서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라는 예술의 영역을 융합하여 온 저자의 이야기들은 참 인상적이다. 그리고 2부에서는 저자와 함께 빛을 연구하는 동료들 및 삶 속에서 마주친 사람들과 함께 배우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아마 많은 이들이 공감하게 될 듯 싶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빛을 그린 화가들의 작품들, 일상 속 빛과 마주친 이야기, 나아가 빛과 연결된 세상에 던져지는 메세지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가 동경하는 빛 그 자체의 아름다운 묘사와 함께 빛으로 가득 찬 세상을 사랑하는 시선으로 읽은 세상의 이야기는 어느 새 우리를 위로하여준다. 이 책에 담긴 남들과 다른 독특한 이력 덕분에 바라보는 물리학과 미술을 통한 매력적인 '빛'의 이야기들은 아마 많은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어루만져주면서 아름다운 이 세상으로 그 시선을 확장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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