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페파민트>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백온유 작가의 신작이라 하여 가제본 서평단을 신청했는데, 운좋게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 백온유 작가 답게 이번 작품 역시나 흡입력이 대단하다. <유원>에서 비극적인 사건의 생존자 유원이 겪는 윤리적 딜레마와 갈등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페퍼민트>에서는 돌봄과 죽음, 용서와 화해에 대하여 깊이있게 담아낸 저자는 이번 <경우 없는 세계>에서는 가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고 세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의 이야기는 주인공 인수가 옥탑방에서 보내는 세번째 겨울 어느날, 한 소년, 이호와 함께 살게 되는장면으로 시작된다. 혼자 살던 인수는 어느 날 옥탑방에서 이호가 차에 일부러 치이는 장면을 보게 되고, 엄살과 협박이 넘나드는 아이의 말재주에 운전자는 아이에게 돈을 건네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 장면들을 보고 나서 주인공 인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추위에 괴로운 밤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일주일 후 똑같은 장면을 목격하고 그는 아이가 운전자로부터 돈을 못 받도록 한 뒤 자기 집으로 아이를 거둔다. 그 후 함께 살게 된 이호와 인수. 개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이호의 팔에 든 멍을 보면서 인수는 A의 얼굴을 떠올린다. 이호처럼 일부러 차에 뛰어들어 돈을 벌던 A. 과연 A는 어떤 아이였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인수의 열일곱살 이야기들. 인수는 엄마에게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참지 못해 집을 나왔다. PC방에서 성연을 만나고 인수는 성연과 함께 어울리며 빌딩 화장실에서 잠을 자고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얻어 먹거나, 훔친 지갑이나 물건으로 먹을 것을 떼우며 가출한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게 된다.

틈만 나면 엄마를 폭행하는 아버지를 도저히 견딜 수 없던 인수는 어느 날 이러다 엄마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버지에게 맞서게 된다. 그동안 두렵기만 했던 아버지는 생각보다 맞설만 했고 인수와 몸싸움을 하던 아버지는 코뼈가 골절되어 119에 실려가게 된다. 그 후 인수와 아버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되고, 틈만 나면 인수의 방문을 부술 듯 벌컥 열고 들어와 뺨을 인정사정없이 후려치곤 하는 아버지와 폭행을 당하고도 그 다음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유지하는 엄마를 도저히 견딜 수 없던 인수는 집을 나오게 된다. 이 책 속 인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풍족한 가정환경을 인수에게 제공했을지 몰라도 인수에게 인간적인 정이나 안정을 느끼게는 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인수는 늘 주눅 들어 있었고, 그 누구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상처를 안고서 살았던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성연과 함께 무료급식소를 다니다가 인수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경우는 인수가 흔들리고 위태로웠던 지난 날 인수를 지탱해 준 친구이다. 경우는 여느 가출 청소년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그 날을 연명하기 빠쁜 가출 청소년과 달리 경우는 자신들이 자는 곳을 청소하고 빨래를 했으며, 다른 아이들을 돌보기까지 했다. 그리고 경우는 예의발랐기 때문에 식당에서도 가출 청소년이 아닌 보통의 학생으로 취급받으며 일을 했다. 과연 경우에는 어떤 사연이 있기에 가출 청소년을 살면서도 바른 면을 가질 수 있었던 걸까?


이에 반해 성연은 경우와는 달리 모든 게 충동적이며 여느 가출 청소년들의 리더처럼 물건을 훔치는 일이나 지갑을 소매치기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성연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기에 성연은 이토록 대담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걸까?


성연과 인수는 호프집에서 알바를 하며 사장 형을 알게 된다. 사장 형은 성연과 인수가 가출청소년이기 때문에 '위험부담'을 안고가야 해서 시급의 반만 쳐주겠다고 한다. 대신 저녁 식사를 직접 챙겨줄 것이고 이 곳은 안전하게 가족적인 분위기로 일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후 그들의 관계는 참 씁쓸하다. 가출청소년이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일만 시켜먹고 제대로 돈을 지불하지 않는 사장의 모습은 바로 지금 우리 어른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외에 가출 청소년들에게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아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정말 현실적인 모습이라 읽는 내내 씁쓸하다.


인수가 극한의 상황에 몰릴 때마다 나타났던 경우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보육원에서 자랐음에도 구김살 없고, 늘 바르게 살았던 경우. 자신만 챙기는 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챙겼던 경우.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수가 지금 사는 세계는 '경우 없는 세계'다. 과연 인수와 경우, 성연에게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들은 결국 다 틀어지게 되었을까?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가출한 청소년들이 모여 사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눈에는 어둡고 위험하게 보일 듯 싶다. 하지만 이들이 왜 집을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주목하다 보면 이 아이들을 길로 내몬 것은 바로 우리 어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위험 속으로 모는 것도 욕심에 찌든 어른들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는 어른이 된 인수는 가출팸 시절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한다. 하지만 이호라는 아이를 돌보며 자신의 과거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고, 그렇게 아르바이트와 소매치기를 거듭하며 길에서 떠돌던 시간들을 들여다보며 그 시절의 상처와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고, 경우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호를 돌보며 인수는 조금씩 자신이 어른과 비슷한 존재가 되어가는 걸 느끼게 된다. 

그렇게 이호에게 경우가 자신에게 해줬던 것처럼 지탱할 곳이 되어주는 인수는 지난 날의 상처와 잘못으로 괴롭던 추위에서 벗어나 조금씩 온기를 느끼게 된다. 부끄러운 어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어른으로 서기로 한 인수를 응원해본다. 그렇게 따스한 온기들에 익숙해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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