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현장에 서 있습니다 - 안전유도원의 꾸깃꾸깃 일기
가시와 고이치 지음, 김현화 옮김 / 로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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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전유도원에 대해서는 이 책의 제목과 표지는 궁금증을 줄러 일으키게 한다. 이 책은 전직 영화감독, 사장, 철강 브로커 등 고령의 나이에 현장을 뛰는 안전유도원들의 현실과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담아내고 있다.


안전유도원은 공사현장이나 축제와 같이 안전 지도가 필요한 현장에서 보행자나 작업자, 혹은 운전자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다. 이 안전 유도원은 일본의 전국에 대략 55만 명이 넘게 있는 경비원 가운데 약 40퍼센트를 이룩고 있다. 이토록 도로안전유도원은 많지만 그 실태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출판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약 40년을 출판업자로 일한 저자는 파산 지경에 이른 회사를 정리하고 당장의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안전유도원을 하며 투잡을 뛴다. 그의 나이 이미 70이 넘은 때였다. 저자는 자신의 본업을 십분 발휘하여 직접 겪은 안전유도원의 실태를 비롯하여 스스로의 현실을 정말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안전유도원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밑바닥 직업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그 저변에는 어떤 직업이든 업무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는 애로사항을 별반 다르지 않으며 이 책의 배경은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차이가 거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 우리의 가장 큰 화두는 바로 '안전'이다. 우리는 이태껏 안타까운 목숨들을 생각치도 못한 사고로 너무 많이 잃었다.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는 안전을 가장 가까이에서 책임져 주는 존재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미 50년 전부터 '교통유도 경비업무'를 도입했다고 한다. 이를 기반으로 경비업체를 통해 공사 현장이나 행사장 등 안전이 필요한 곳에는 안전유도원을 체계적으로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안전유도원을 전기, 가스, 수도, 도로 정비 등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가장 말단에서 공헌하는 존재라고 소개한다. 그만큼 일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고, 안전에 가장 근접한 곳에서 일하는 존재라 하겠다. 그렇지만 그 말단에서 일하는 이에 대한 존중은 심각하게 배려되지 않는 듯 싶다. 운전자와 보행자들의 불만을 고스란히 받는 존재가 바로 도로안전유도원으로 불만부터 욕까지 별의별 말을 다 듣고 근무를 해도 감독마져 그런 모든 수난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무심함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도로안전을 책임지고 안전유도를 하는 이들에게 가장 많은 불만을 쏟아 붓는 게 바로 가혹한 현실이 아닐까.


정말 안전유도원으로 일하는 게 부끄러운 일일까. 어느날 저자의 아내가 "당신은 대학씩이나 나와서 안전유도원 일을 하는게 부끄럽지도 않아?"라고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질문에 "부끄럽다든가 부끄럽지 않다든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라고 답하자 아내는 "그럴 줄 알았어. 요컨대 당신은 자존심이라는 게 없다는 소리네"라고 더한 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정말 자존심이 없는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다만 자존심을 다 세우고선 안전유도원 일을 잘 해내기가 힘들기 때문에 저자가 자신의 자존심은 젖혀놓고 일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도로 안전유도일을 하면서 저자세로 "죄송합니다"나 "실례했습니다"라고 말을 하는게 훨씬 더 빨리 상황을 종결시킬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은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사로 인한 우회에 대한 불만은 대부분 안전유도원에게로 쏟아지고, 안전유도원은 묵묵히 듣고 있거나 사과를 하는 게 가장 빠른 상황 해결 방안이니까 말이다. 이 얼마나 씁쓸한 현실인가.


이 책에서는 초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의 한 사회인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잘 나가는 출판업자였지만 일흔이 넘은 지금은 출판편집 겸 작가 본업을 뒤로 하고 안전유도원으로 투잡을 하고 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작업자들의 반말과 고함을 유연하게 넘기고, 공사 현장 주변의 주민들 혹은 도로 위 운전자들의 불평을 좋은 말로 설득해야 한다. 이런 일에 있어 자신이 젊은 사람에 비해 능력 면에서는 뒤떨어지는 일이 많지만 커뮤니케이션 면에서는 고령자라서 더더욱 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보다 어린 상사를 대하는 노하우와 진상 고객을 대처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바로 고참 사회인이기 때문에 발휘되는 고령자들의 능력인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일본만큼 고령화 사회가 될 것이고,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고령의 사회인들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안전유도원의 일상을 생생하게 봄으로써 인력 부족이나 업무 방식의 개선, 처우 개선 등의 문제 제기와 개선방안을 담아냄으로써 안전유도원이라는 존재에 대해 자세히 인지하게 되는데, 이렇게 사회 가장 밑바닥의 직업을 가진 이들에 대한 인식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시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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