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정은영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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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로봇이라니. 제목에서부터 기발함이 마구 느껴진다. 이 책은 SF라는 프레임으로 우리 사회와 인간을 내면을 보는 즐거움을 전파하고 있는 소설가 정은영 작가의 소설집이다. 책의 두께 자체도 얇고 각각 분량도 짧은 소설이지만 이 책에 실린 두 작품 모두 SF의 프레임 하에 삶과 세계를 들여다 보는 아주 기발하면서도 임펙트 있는 작품들이다.


이 책에는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와 <소년과 소년>의 두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 소설들은 현재 작가가 집필 중인 부모 연작 시리즈 중 첫번째, 두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경기문화재단 주관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으로, 경기도에 거주하는 문인들에게 창작지원금을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을 시리즈로 출간하는 기획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올해 출간되는 시리즈는 9명의 소설가들이 참여한 소설집이 9권, 13명의 시인들의 신작시를 묶은 앤솔러지 시집 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표제작인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은 어린이날 시 낭송을 마친 임산부 로봇들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시작된다. 임산부 로봇 시스템이 구현된 것은 현재로부터 삼십년 전이다. 유례없는 학교 폭력 사건으로 출생아들의 전수 조사가 진행되고, 아동들의 공감 인지 능력 저하가 사회성 발달장애로 직결되었다는 보고가 나오면서 기존의 캡슐 인공 자궁은 폐기되었다. 그 대신 인구관리국은 태아의 두뇌, 감성 지수를 높이기 위해 예전에 엄마들이 했던 태교의 형태를 발달시킨 임산부 로봇을 출시하게 된다. 임산부 로봇은 요과에서부터 뜨개질까지 태아의 공감력과 두뇌력 발달을 위해 존재했고, 모든 일과에는 행복한 설렘이라는 명령어가 삽입되어 진행되었다. 

최첨단 과학기술이 실현된 인구관리국의 목표는 바로 혐오 없는 도시만들기의 일환으로 장애아 출산률 0%이다. 행복한 설렘이라는 명령어거 삽입된 주인공 임산부 로봇 헐스(HERS)는 갑작스레 태아보호센터로 호출되게 된다. 과연 헐스는 왜 태아보호센터로 호출되어 가는 걸까? 그리고 왜 헐스는 장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걸까?


로봇이라고 하나 헐스는 인간이 임신을 했을 때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인간들이 자주 하는 입덧마저도 모방했는데, 특히 헐스는 다른 로봇과는 달리 음식에서 나는 냄새 분자 때문에 트레시룸으로 자주 달려갔다. 그런데 16주째에 기형아 검사를 받은 헐스는 모든 게 주의 단계라는 것을 인지했다. 인간이 하는 임신도 아니고 임산부 로봇이 낳아주니 건강한 아이를 낳기를 바라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일것이다. 물론 임산부 로봇이 유산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임산부 로봇의 프로그램을 초기화시켜 유산에 대한 기억을 아예 제거해버린다. 그런데 여기서 버그가 생겨나게 되낟. 유산을 실행한 임산부 로봇에 유난히 버그가 많이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지만 인구관리국의 조치로 임산부 로봇은 유산과 유산의 기억제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이 책에서 인구관리국이 목표로 하는 '장애아 출산율 0%'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이거나 진실을 은폐하는 거짓임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드러나게 된다. 헐스는 기형아 검사를 위해 고물상이 관리하는 태아보호센터로 이동해 그곳에서 자신과 닮은 꼴로 전시된 로봇을 보고서 동료 임산부 로봇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헐스가 임신한 행복이가 안면장애를 지닌 것으로 판정되고, 헐스는 행복이를 제거하려는 고물상에게 묻는다. "장애라는 것은 밀리유공원의 새소리, 나뭇잎 소리, 바람 소리처럼 그렇게 공존할 수 없는 겁니까?"(p27)라고 말이다. 과연 헐스는 행복이를 무사히 지켜낼 수 있을까? 아니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행복이는 제거되고야만 말까?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뒷부분의 반전에 이태껏 우리가 생각했던 장애에 대한 편견 자체가 아무 의미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은 속도감 있는 전개로 이야기를 진행하며 이야기 자체도 아주 짧다. 임산부 로봇이라는 SF 프레임을 통해 이 작품은 장애에 대한 우리가 가진 편견에 대해 묻고 또 묻는다. 과연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는 누가 만든 것이며, 그것이 행복을 거스리는 큰 장벽이 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짧지만 아주 임팩트 있는 결말은 행복의 참 의미를 깨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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