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산문집
허지웅 지음 / 김영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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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 넘는 코로나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우리에게는 이웃에 대한 선의보다는 불신이 더 많이 자리잡히게 된 듯하다. 이러한 시대에 허지웅 작가는 <최소한의 이웃>을 통해 이웃을 향한 분노와 불신을 거두고 나 또한 최소한의 이웃이 되기 위한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책 띠지에 있는 '악의를 감싸 안으며 선의를 탐구하는 작가 허지웅이 전하는 함께 살기 위한 가치들'이라는 글이 자꾸 마음에 맴돈다. 이 책을 통해 더이상 '나'와 '당신'으로 거리두기가 아닌 우리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아가고 싶다.


저자는 이때껏 다섯 권의 책을 펴내면서 다각적인 문제를 제기해왔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아픔을 들여다보면 주변의 분노와 불신을 거두기 위해 애써왔다. 이번 책을 통해 그는 언젠가 반드시 말하고 싶었던 주제인 '이웃'에 관해 말한다. 이 책은 '코로나 19의 살풍경이 시작될 때'부터 거리두기를 중단한 현재까지 그가 만난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팬데믹의 시기에 우리는 몸과 마음의 평정을 잃어갔고, 사람 간의 벽은 높아졌고, 피해의식은 나날이 커져갔다. 그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그는 어떻게 함께 잘 살 수 잇을지를 다시금 고뇌하였고, 글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해냈다. 이 책은 저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고심하고 고심한 결과물이라 하겠다. 절망과 희망, 파괴와 회복, 혼돈가 질서가 공존하는 지금의 시대에 우리가 잊고 사는 소중한 가치들에 관해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이 책은 총 6부로 나눠져있는데, 각 부의 제목들은 6 가지의 가치로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가치들이기도 하다. '애정: 두 사람의 삶만큼 넓어지는 일', '상식: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공존: 이웃의 자격', '반추: 가야 할 길이 아니라 지나온 길에 지헤가' ,'성찰: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고단함', '사유: 주저앉았을 때는 생각을 합니다'. 그냥 제목만을 나열해 보는 것만으로도 겸허하게 나를 되돌아 보게 만든다.


한 남자가 어느 날 우연히 들린 편의점의 계산대 모니터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게 된다. 남자는 캠페인 이미지에 적혀있는 아동권리보장원의 연락처로 전화해 사진이 잘못 사용되고 있다고 알린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간 자신이 가족 없이 버려진 걸로 알고 살았는데, 실은 어렸을 때 길을 잃어 가족과 헤어진 실종아동이었던 것이다. 가족은 여태까지 자식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그 남자는 다시 가족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살다보면 놀라운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데 그 이면에는 우연과 확률이 아닌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누군가의 또렷한 의지가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는 저자의 말에 나는 과연 어떤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 책에는 저자 주변인들부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사랑은 두 사람의 삶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삶의 삶만큼 넓어지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 간다. 나만 내세워 결코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음을, 타인에게 너무나 쑥스럽고 평범한 말이라도 표현해야 함을, 나의 세상뿐만 아니라 타인의 세계에도 친숙해져야 함을 깨닫는다.


생명의 가치를 단지 숫자만으로 환산 가능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가 참 힘들고 고된 시기를 거치고 있다는 거다. 어쩜 다들 이토록 다른 생각들로 사람들을 할퀴는 것인지 참 안타깝고 부끄러운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가 성인으로 사회 일원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단지 개개인의 이익과 권리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부끄러움과 고마움을 느껴야 되지 않을까. 타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말처럼 '이웃을 향한 배려만이 환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불의한 죽음에 절대 무감각해져서는 안 될 것이며, 그것이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최후의 마지노선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2021년 4월 22일 새벽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 건물에 화재가 일어났다. 이를 본 새벽 배송 기사가 119에 신고하고 현장으로 달려가 초기 화재를 진압했다. 119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한 이후에도 자리를 지키다가 화재가 다 진화된 이후에야 그는 사라졌다고 한다. 그의 정체는 후에 '최보석 씨'로 밝혀졌고, 사내 포상이 주어졌다고 하다. 나 또한 저자와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마음이 최보석씨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웃을 돕는 일이 손해나 오해를 낳지 않는다는 걸 사회가 약속해 줄 수 있다면 아마 대다수가 마음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보여주지 않을까. 그리고 아무리 밉고 싫은 이웃이라 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결국 '서로를 지키는 최후의 파수꾼'임을 잊지 않아야 겠다.


우리가 서로의 안녕을 빌면서 살기 위해서 최소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선한 사마리인의 비유를 들어 선악을 구분 짓거나 이타적인 사람이 되라는 게 아니라 아픈 사람의 상처를 지나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며 이웃의 자격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남에게 무조건 베풀라는 강요가 아닌 서로가 최소한 지켜야 할 기본과 약속들을 다시금 들여다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최소한의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을 보면서 저자가 얼마나 우리 공동체를 들여다 보고 내면을 다듬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어떻게든 버티고 감싸안으며 평정을 회복하려 애를 쓴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기에 그가 내뱉은 말 한 마디, 문장 하나를 헛투로 넘기고 싶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 할 지라도 다시 생각해보고, 과연 나는 어떠한가.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등등 나에 관해, 우리에 관해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면, 최소한의 이웃으로 살아간다면 지금 우리 안에 쌓인 서로를 향한 불신과 분노가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우리에게 아직은 희망이 존재하고 있다고 나 또한 믿고 싶다. 우리는 반드시 함께, 같이 살아나갈 수 있을 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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