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의 근사치 오늘의 젊은 문학 6
김나현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나오는 SF소설들의 배경은 대부분 디스토피아적인 듯 싶다. 이를 배경으로 각각의 작품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곤 한다. 핑크빛 미래가 아닌 암울한 미래를 배경으로 던져지는 묵직한 질문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게 만들고, 성찰하게 만든다. 이 책도 그러하다. 이 책은 주인공 이소를 통해 우리에게 '인간만이 인간일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근미래, 이상기후로 더이상 생명체가 살아가기 힘들어진 지구에서 인간과 AI가 조건 없는 우정으로 서로를 지켜내어 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어 인공 지능도 진짜 사람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를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한다.


띠지 속 문구와 <휴먼의 근사치>라는 제목은 오직 인간만이 인간인가?라는 아주 근원적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의 이야기는 주인공 이소가 홀로 창고에 갇혀 그 곳에 있는 개미, 지렁이, 쥐며느리 등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소는 창고에서 갇힌 상태로 사흘을 보냈다. 이소는 왜 홀로 창고에 갇히게 된 것일까?


이 책은 기후 이변으로 70일 동안 비가 내리는 대재앙 이후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이 물로 잠겨 버린 탓에 위생과 치안은 유지되지 않았고, 살아 있는 것은 기적인 동시에 고통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끼리는 누군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까, 혹은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지 않을까하는 공포에 떨어야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구한 것은 바로 뜻밖의 존재, 단순 노동형 로봇들이었다. 쉬지 않고 일하는 로봇의 헌신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상실로부터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대재앙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는 잔잔한 희망은 계속 되어야만 했다. 주인공 이소가 일하는 태거 하우스 역시 사람들에게 희망을 만들어 내기 위해 설립된 엔터테인먼트 회사 중 하나다. 주로 하는 일은 물날리로 유실된 필름을 복원하는 것이다. 로봇과 일하느라 지친 사람들은 구호 시설로 돌아와 모여 복원된 영상을 봤고, 이를 통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희망을 다지곤 했다.

모든 것이 물에 잠겨버린 대재앙의 상황에서 먹을 것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죽기 시작했고, 생존을 위해 일각에서는 식인 행위까지 일어났다. 과일과 채소와 같은 원재료의 음식은 귀하디 귀해졌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의 식량 통제로 저장성이 뛰어난 통조림과 영양소를 응축시킨 바 형태의 영양바를 주식으로 삼았다.


대재앙으로 인해 갈 곳이 없어진 아이들은 보호소에 맡겨졌다. 이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호소에서 또래와 달리 성장을 멈춘 이소는 맨 첫 장면에 나온 것처럼 창고에 갇히거나 폭력을 당하는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하였다. 하지만, 열여덟살이 되는 해 이소는 보호소를 떠나 태거하우스에 입사하고 그곳에서의 생활은 보호소에서보다 훨씬 이소에게 잘 맞았다. 이소는 그곳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맞는 문구를 태깅하는 일을 맡은 이소.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태거라 불리며 빌딩의 최하층인 지하에서 작업했고, 이들의 사회적 지위 또한 최하위였다. 하지만 태거는 승급 시험을 통해 8등급 이상이 나오는 사람은 관리자가 되어 높은 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태거 중 전설적인 인물인 구현우 실장이 그러했고, 이소가 7등급을 받아 높은 층으로 갈 수 있는 유력한 후보였다.


그런데 어느날 이소는 구실장으로부터 뜻밖의 해고 통지를 받게 된다. 태거 하우스의 모든 자료를 검열하는 인공지능 '이드'가 오직 한이소의 자료에만 오류를 일으켜 멈추었고, 이는 영화에 입력된 한이소의 키워드가 이드의 진화를 촉발했기 때문이다. 인공 지능의 진화를 막으려는 태거 하우스가 한이소를 해고하게 된 것이다. 이소는 우연히 태거 하우스에서 이드를 만나게 되는데, 놀랍게도 이드는 어린 아이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드에게 인간들이 인공지능에 폭력을 학습 시키고 있으며, 모든 태거들은 사라지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드는 오로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한이소의 피신을 돕는다. 과연 이드의 도움으로 이소는 무사히 자신을 쫓는 태거 하우스의 관리자들로 부터 무사할까?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소의 존재이다. 당연히 인간이라고 믿었던 이소의 존재는 이야기 중반부로 가면서 인간이 아닌 인간에 가깝게 만들어진 인공 지능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급진전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놀라운 인물인 구실장의 정체와 이소의 절친 루다. 이소와 루다를 깔보는 사해까지. 다채로운 캐릭터의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정체는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동시에 이야기 자체에 완전 몰입하게 만든다. 이소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추천해본다.


이 책은 독자에게 누가 인간이고, 비인간인지와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리고 뒤로 가다보면 그것 자체의 경계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구현할 수 있게 되고, 인간이 로봇의 장기를 이식받게 되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모호한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던진다.


그리고 대재앙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부모를 잃고 홀로 남은 주인공 한이소가 고립되어 살아가다가 외부의 편견을 깨고 친구와 함께 하며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의 이야기에서 이소가 인간인지, 비인간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와 함께하여 자기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는 그 과정 속의 이야기는 우리가 왜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살아가는 지, '함께'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인간은 인간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간다'라는 소설 속 말이 오래 오래 남는다. 과연 우리는 스스로를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가치는 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할 때 더욱 높아질 수 있는게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