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말리
에르베 르 텔리에 지음, 이세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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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의 띠지에 나와 있다시피 이 책은 프랑스에서 굉장히 인기를 많이 받은 책이다. 프랑스에서만 110만 부 이상이 팔렸고, 전 세계 45개국에 번역 출판되었으며, 2020년 공쿠르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과연 어떤 내용이길래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끌었을까? 우선 표지의 그림에 왠지 이 책에 관한 힌트가 있을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제목인 '아노말리'는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아노말리는 '이상', '변칙', '모순' 이라는 뜻으로, 주로 기상학이나 데이터 과학에서 '이상 현상', '차이 값'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과연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길래 '아노말리'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걸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동일한 승객들을 태운 동일한 비행기가 두 번 착륙했다고요?"

(p187)

 

 이 책은 파리-뉴욕 간 여객기가 석달이라는 시간 차를 두고 도플갱어처럼 똑같은 사람들을 싣고 동일 지점에서 난기류를 겪은 전대 미문의 사건을 담고 있다. 2021년 3월 10일, 파리에서 출발하여 뉴욕으로 향하는 에어프랑스 여객기가 예고에 없던 난기류를 만나 위기를 겪은 후 무사히 착륙한다. 승객들은 공포로 가득했던 기억들을 뒤로 하고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단 한 사람, 프랑스 소설가인 빅토르 미젤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는 파리로 돌아가 [아노말리]라는 소설의 원고를 탈고한 후 편집자에게 보내고 발코니에 투신해서 죽는다. 그리고 세 달 뒤인 6월 24일, 동일한 여객기가 동일한 지점에서 난기류를 만나고, 동일한 착륙 지점을 향해 간다. 그런데, 여기서 기가 막힌 것은 이 두 비행기에 도플갱어처럼 똑같은 기장과 승무원, 승객들을 싣고 있다는 거다.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인지한 미국 정부는 여객기를 뉴저지 공군 기지로 비상착륙 시키고 극비리에 과학자들을 소집한다. 911 테러 사건 이후 국가 비상 사태를 위해 개발한 수많은 프로토콜 중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고, 영영 실행 될 것 같지 않았던 '프로토콜 42'가 발효되게 된다. 과연 이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3월의 여객기와 6월의 여객기의 사람들은 모두 두 명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란 말인가?


 이 책은 문제의 비행이 있기 전 각각의 등장인물의 삶을 담은 1부 '하늘처럼 검은(2021년 3월 ~ 6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난 후 미국 정부가 과학계, 종교계 및 세계 주요 정상들과 대책을 강구하고 미 공군 기지 격납고에 역류된 승객들이 겪는 사흘을 담은 2부 '삶은 한낱 꿈이라고들 하네(2021년 6월 24일 ~ 6월 26일), 그리고 그 이후의 변하게 된 등장인물들의 삶과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상을 담은 3부 '무의 노래(2021년 6월 26일 이후)로 이루어져 있다. 각 부의 제목은 울리포 작가 레몽 크노의 시에서 따온 구절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제일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성실한 가장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청부 살인 업자 블레이크다. 블레이크가 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살인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지, 그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 지,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어떻게 처리하는 지 등등 그가 청부 살인 업자가 되기까지의 이야기에서 청부 살인업자로서의 일상을 너무나 세밀하고도 생생하게 담고 있어 읽자마자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등장인물은 바로 빅토르 미젤. 그는 작가로서 두 편의 소설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명성을 얻지 못하고 번역으로 먹고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주미 프랑스 대사관 문화 센터의 재정 후원을 받는 미국의 프랑스 관련 협회에서 번역 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어 3월의 비행기를 타게 도고 끔찍한 난기류를 만나게 된다. 두 번의 난기류를 겪으면서 그는 자신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나중엔 발버둥 치지도 않고 죽음을 기다리는 실험용 쥐처럼 모든 것을 포기한 체 몸을 받긴다. 그 후 파리로 돌아와 글쓰기에 몰입한 그는 작품을 마치자 마자 발코니 너머로 자신의 몸을 던져 자살한다.

 여객기에 탄 주요 인물들은 참 다양하다. 각 인물별로 생생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청부살인 업자, 소설가, 나이지리아 뮤지션, 어린 미국인 소녀, 비행기 기장, 미국인 변호사, 노년으로 접어든 건축 설계사와 그의 연인인 젊은 영화 편집인 등. 접점이 아예 없는 각각의 인물들의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펼쳐지며 이야기 속으로 몰입시킨다.

 석 달이라는 차를 두고서 3월의 여객기의 사람들과 6월의 여객기의 사람들은 자신의 '분신'을 대면하게 되는데, 과연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분신을 받아들일까?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시길 추천해본다. 속도감 있는 전개는 이야기 자체에 완전 몰입시키며, 다양한 등장 인물들의 자신의 분신에 대한 반응들은 깊은 공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시공간에 생긴 오류로 똑같은 사람들이 탄 똑같은 비행기가 착륙한다는 다소 황당하고 SF적인 이 이야기의 설정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과의 대면'이다. 그렇기에 정말 다양한 인종, 나이, 성별, 직업 등 모든 것들이 다른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분신을 대면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늙음에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이제 자신 혼자만의 것이 아니게 된 비밀에 자기 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스스로 부인했던 정체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또 다른 자기 자신을 받아들인다. 석 달이라는 시간 동안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깊은 여운을 남기며 고민하게 만든다. 어느 날 갑자기 나와 똑같은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 나라고 말한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나와 모든 것을 공유하는 나라는 존재가 나타난다는 것만으로도 나 뿐만이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듯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 자신과의 대면은 나를 성찰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를 바꾸는 하나의 분기점이 될 듯 싶다. 이 책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독특한 결말은 정말 인상적이다. 이 소셜의 결말은 무슨 뜻인지 불확실한 글자들의 캘리그램으로 끝이 난다. 저자는 원래의 텍스트를 비밀에 부친 채 각국의 번역가들에게 알아서 텍스트를 창조하고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떨어지는 모양으로 글자를 지우고 해체한 후 '끝'이라는 글자만을 남겨 줄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이에 너무나 충실한 결말은 정말 독특하다. 우리의 삶이 이토록 불확실성에 가득 차있음을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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