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 - 새로운 세상을 꿈꾼 25명의 20세기 한국사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목숨을 걸고 홀로 맞설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이 책 속의 25명의 인물들은 격동의 20세기 한국사 한 가운데를 통과하며 삶의 원칙을 끝까지 지킨 인물들이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삶의 원칙은 제각기 다르지만 그들에게 투옥이나 죽음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그들은 자신이 세운 삶의 원칙으로 세운 가치들을 실천하기 위해 평생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기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인물들인데, 안타깝게도 그들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역사에 맞서 불꽃과 같았던 25명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격동의 20세기 대한민국에는 시대를 이끈 '선도자'와 '지도자'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별종으로 취급받아도 시대에 맞서 자신만의 규칙과 리듬, 삶의 태도로 새로운 세상을 꿈꾼 '모험가'와 '소동꾼'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과 맞서 싸우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고, 험난한 도전과 변화를 멈추지 않았으며, 열정과 분노를 무기삼아 시대와 불화하는 데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덕분에 세상은 조금씩 바뀌었고 역사의 물줄기도 방향을 틀었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진보와 성숙은 이들의 '무대뽀; 정신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25명의 모험가와 소동꾼은 그렇게 역사에 불꽃처럼 맞섰다. 그들은 비록 쉽게 잊혔졌지만 누구보다 어려운 길을 걸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기지 않았다거나, 혹은 대한민국의 체제와 자본주의 질서를 비판했다거나, 때로는 위험하고 불온한 세계관을 지닌 인물이라고 해서 이들을 더 이상 모른 체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제 이들의 이야기를 20세기 한국사의 빈칸에 채워 넣을 시간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세상을 한바탕 휘젓고 활개 친 이들의 드라마틱한 삶의 이야기를 보고 나니 왠지 용기와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된다. 그렇게 이 책은 힘차게 도전하고 세상에 맞서 싸운 25명에게 마치는 헌사이기도 하지만 '잊힌 존재'들이 '보통의 존재'인 우리에게 보내는 일종의 응원과 격려이기도 하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세상에 맞서 싸운 여자들을 소개한다. 한국 최초 고공투쟁 노동운동을 한 강주룡을 시작으로 하여 조선 독립운동가들의 숨겨진 리더이자 세 손가락의 여장군, 남자현, 위안부의 참상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김학순 등의 이야기가 여기에 실려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최초의 도전을 감행한 자들의 이야기다. 우리나라 최초 여의사 김정동, 최초의 비행사 서왈보,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을 비롯해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 했던 박열의 이름이 눈에 띈다. 마지막 3부의 경우, 시대와 불화한 이들이 주를 이룬다. 한국 영화의 개척자 나윤규, 1960년 문학소녀 대명사 전혜린,한국 문학의 찬란한 별 김승옥 등 이름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이들이 이에 속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실린 인물은 우리나라 최초 고공투쟁 노동자, 강주룡이다. 박서련 작가의 소설 <체공녀 강주룡>을 통해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소개되는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과 투쟁의 역사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의 힘든 투쟁의 시간들 덕분에 인간취급조차 받지 못했던 여공도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각인 시켰음을 보다 많은 이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최초로 위안부의 참상을 공개 증언한 여성이자 일본군 전쟁 범죄 피해자인 김학순님의 삶을 많은 이가 기억해주길 소망해 본다. <허스토리>라는 영화를 통해 그녀의 삶이 재현되고, 김학순 이우 세상과 맞서 싸울 힘을 얻은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다룬 <낮은 목소리>도 더 많은 이들이 보았음 좋겠다. 2017년 김학순님이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을 기념하여 8월 14일을 '위안부 기림의 날'로 지정하였다. 죽기 전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과거 위안부 경험을 증언하고 기록하였던 20세기 가장 아픈 역사이기도 한 그녀의 삶과 피해에 대한 일본의 제대로된 사과와 배상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바래본다.


이 외에도 이 책의 23명의 삶에 대한 이야기 속에는 무엇이 그들을 싸우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자신이 만든 원칙을 지키는 삶을 살았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 삶속에 담긴 열정과 분노들, 그들이 끝까지 지키고자 한 원칙은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역사가 그들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 당당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후손인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많은 이들이 25명의 이름과 존재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저자가 이 책을 시작하며 '역사란 우리 삶을 성찰하게 하는 거울이자 함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힘을 얻게 하는 공감 장치이'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 오래 남는다. 그리고 불꽃같은 삶을 살아간 그들의 삶을 통해 보통의 존재인 우리는 또 하루를 살아갈 용기와 위안을 얻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